<연중 제32주일>(11.10) -평신도 주일-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12,43ㄴ) '온 정성을 담자!' 오늘 복음(마르12,38-44)은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라는 말씀'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으면서 성당에 다니는 이유'는 '복(福) 받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부활하기 위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것도 '이제와 영원히!' 오늘 복음은 이 목적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온전하게 하느님께로 향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12,44) 예수님께서는 봉헌금의 액수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은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은 그러한 것에 관심을 두었지만, 예수님은 봉헌하는 이들의 '마음(정성)'을 보셨습니다. 마음이 하느님께로 온전하게 가 있지 않으면, 하느님께 봉헌금(교무금.주일헌금 등등)을 바칠 때, '얼마를 봉헌할까?'를 고민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마음 안에 가득차 있는 것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히브9,28ㄱ)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봉헌하셨습니다.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께로 향해 있는 나의 마음에 온 정성을 담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은총)을 많이 받고, 받은 그 복(은총)을 또 다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합시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평신도,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평신도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느헤9,37)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11.11)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17,5) '메타노이아!' 오늘 복음(루카17,1-6)은 '남을 죄짓게 하지 마라'와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고 용서하여라'와 '믿음의 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큰 맷돌)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루카17,2) 이 말씀은 미천한 이들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강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17,3ㄴ-4) 이 말씀은,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먼저 그를 꾸짖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죄를 지었든 회개하면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한번 원수지간이 되면, 만남 자체가 거부되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서 못한다"고 말하는 우리가 아닌가? 그리고 또한 작은 이들, 곧 미천하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업신여기는 우리가 아닌가? 남을 죄짓게 하지 않는 것과 회개하는 이들을 조건없이 용서하는 일은 결코 내가 할수 없는 일,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힘, 성령의 힘, 믿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17,6)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청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며,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드러내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참된 믿음을 청합시다! 이 믿음의 힘으로 내가 먼저 '메타노이아(회개.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 합시다! (~ 느헤11,21)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10) '겸손한 종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7,7-10)은 '겸손하게 섬겨라'는 '종의 처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보시면서,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종처럼 처신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품꾼은 일을 하고 당연히 보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종은 주인의 분부대로 일을 다 마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며, 여전히 "쓸모없는 종"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들,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행해지는 우리의 모든 활동들은 하느님을 위한, 하느님께 드리는 신적(神的) 행위입니다. 죽음 저 너머인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에서 보상받기 위한 신적 행위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신적 행위들에 대표적인 것들에 대한 말씀이 바로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한 말씀'(마태6,1-8.16-18 참조)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할 때에는 그것을 드러내지 말고 감추라고 하십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으로려고 하지말고,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티토2,14) 지금 여기에서 너로부터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냉담 교우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며, 하느님 소유의 백성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며, 주인이신 하느님의 종입니다. 이 신원을 망각하지 않는 겸손한 종이 됩시다! (~ 느헤 12,26)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수요일>(11.13)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17,17) '구원의 완성인 감사!' 오늘 복음(루카17,11-19)은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마주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17,13)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루카17,14ㄴ) 하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동안에 나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17ㄴ-18) 이어서 그에게 이르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ㄴ) 나병은 불결할 뿐 아니라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못하게 하였던 병입니다.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무서운 '소외 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만이 자신들을 이 무서운 소외 병로부터 구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쳤고, 그래서 나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구원의 완성인 감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은혜를 입고 배은망덕한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감사드려야 할 일이 천지(多)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 토빗1,22)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목요일>(11.14)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1ㄴ) '하느님의 나라!' 오늘 복음(루카17,20-25)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0ㄴ-21)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첫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나라'로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의 나라'이며, '지금 우리 가운데에 와 있는 나라'(Hic et Nunc/여기와 지금)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죽음 저 너머에 있고,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산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큰 은총'입니다. 우리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회개하는 이들과 회개하지 않는 이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이들과 교만을 드러내는 이들!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매사에 불평불만을 드러내는 이들! ...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단순하게 믿는 이들', '회개하는 이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이들',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아들의 날'인 '그리스도의 재림(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종말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에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지금 여기에 충실합시다! (~ 토빗 3,17)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금요일>(11.15)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루카17,30) '그리스도의 재림!' 오늘 복음(루카17,26-37)은 '사람의 아들의 날인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인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이 노아 때와 같고, 롯 때와 같다고 하십니다. 노아와 롯 때 일어난 일은 죄악의 결과인 멸망입니다. 그 멸망에서 의로운 노아와 롯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 구체적인 모습을 마태오 복음 25장 31절에서 46절의 말씀인 '최후의 심판'이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것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25,45-46) '두 사람과 두 여자 가운데에서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라는 말씀은, '심판은 각자의 심판'이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멸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종말의 의미인 그리스도의 재림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세간(소유물)과 그것에 대한 욕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고, 준비하려고 지금 애쓰고 있는가? "이러한 일이 일어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21,28)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너와 싸울 때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할 때입니다. 너와 용서할 때입니다. 너와 화해할 때입니다. 마지막 때에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어리석음을 내려놓읍시다! (~ 토빗5,11)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11.16)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루카18,1) '올바른 청원!' 오늘 복음(18,1-8)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과부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루카18,3ㄴ) 하고 졸랐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합니다.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루카18,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시고 다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18,6-8) 우리의 대부분의 기도는 아마도 '청원기도'일 것입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청원기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올바른 청원'에 대한 묵상을 해 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청원의 모습일까? 첫째, '믿음이 바탕이 된 청원'이어야 한다. 둘째, '올바르게' 청해야 한다.(주님의 기도 참조) 셋째, '청원을 들어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넷째, '끊임없이' 청해야 한다. '끊임없이 청하게 하는 힘'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청원을 들어주시는 분께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끊임없이 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을 '자판기 하느님'으로 만들어버리지 맙시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 토빗8,9)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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