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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11.24) -성서 주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11.24) -성서 주간-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18,33) 

'그리스도의 왕직!'

오늘 복음(요한18,33ㄴ-37)은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교회 달력인 전례력으로 '한 해(나해)의 마지막 주일'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다음 주일은 새해(다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이번 한 주간은 '성서 주간'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위에는 'I.N.R.I'라는 명패가 있습니다.
이는 '유다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뜻으로, 유다인들이 붙여놓은 '예수님의 죄목'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왕이셨는가?'

예수님은 낮은 이들과 함께하신 '가난한 이들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겸손하게 하느님 아버지 뜻에 순종하신 '순종의 왕', '겸손의 왕'이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10,45)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군림하는 왕이 아닌 너를 섬기는 '섬김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중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신 것처럼, 참된 봉사와 사랑 실천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신 '모범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바보의 왕'이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왕의 모습을 지닌 예수님을 닮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느님과 약속한 것을 잘 지키며 살아왔는지, 말씀 안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 첫 주일인 '대림 제1주일'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온 누리의 임금이신 예수님을 닮은 지도자들, 왕들, 대통령들이 많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 에스8,17)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4주간 월요일>(11.25) -성서 주간-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루카21,3ㄴ)

'봉헌행위에 온 정성을 담자!'

오늘 복음(루카21,1-4)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이르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21,3-4)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는가?'

예수님은 봉헌의 액수를 보시지 않고, 봉헌하는 이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모든 신앙행위, 곧 미사와 기도와 말씀 안에 머무는 '영적인 행위들'이나, 교무금과 주일헌금과 같은 예물봉헌과 전례봉사, 시설관리봉사, 성당청소, 사랑실천 등과 같은 '육적인 행위들'은 모두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 봉헌 행위에 우리의 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봉헌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고, 봉사를 많이하고 적게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모든 봉헌행위에 온 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정성을 담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마음 안에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봉헌행위에 온 정성을 담게 되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봉헌행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12,28ㄱ.30)

나의 모든 봉헌행위에 온 정성과 사랑을 담아봅시다!

이것이 바로 은총 받는 길!

(~ 1마카1,28)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4주간 화요일>(11.26) -성서 주간-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루카21,8ㄱ) 

'돌아오라!'

오늘 복음(루카21,5-11)은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는 말씀'과 '재난의 시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몇몇 사람에게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무서운 재난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때에 나타나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고 하십니다.

성경 전체는 순종과 불순종의 역사요, 부활과 죽음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탈출20,3.5ㄴ)

이는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내리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이루셨던 인간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데, 이방인의 신을 섬기면서 하느님께 불순종 한 때는 여지 없이 멸망과 죽음이 찾아왔고,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는 쓴 맛을 경험했습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는 지금, 우리는 독서로 '저 세상인 천상 예루살렘의 모습을 전하는 요한 묵시록의 말씀'을 듣고 있고, '복음으로 종말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섬찍한 표현들도 많고, 멸망과 죽음의 표현들도 많지만, 말씀의 요지는 '희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면 다시 살게 된다는, 아니 영원히 살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마디로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묵시2,10)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날이 다가왔다.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의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요엘2,1.12-13) 

지금은 주 우리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입니다.

(~ 1마카1,64)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4주간 수요일>(11.27) -성서 주간-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2.19)

'성령의 열매인 인내!'

오늘 복음(루카21,12-19)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재난의 시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박해와 인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21,12-13)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7-19)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열두 사도들은 박해를 받았고, 박해와 죽음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세상에 증언했습니다. 이어 교회의 첫 순교자이신 스테파노와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와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힘듦과 고통 앞에서 쉽게 믿음과 신앙이 흔들리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작은 불편함 앞에서' 나의 믿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듣기 싫은 말 한마디에서, 잘못된 것에 대한 지적 앞에서, 그리고 크고 작은 고통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박해와 인내의 원조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카22,42 참조)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힘으로', 우리도 박해의 상황 속에서 인내하고, 그 너머에 있는 '참생명'을 얻도록 합시다!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르13,13)

(~ 1마카3,60)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