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1.19) -일치 주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 '기적은?' 오늘 복음(요한2,1-11)은 '카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에서 행하신 첫 표징(기적)'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큰 낭패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구나."(2,3)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 예수님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2,7) 하시자,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기적을 바라보면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는 말씀 안에 담겨져 있는 '예수님 말씀에 대한 성모님의 전폭적인 신뢰(믿음)'을 묵상해봅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믿음)가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메시지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회 신부님이신 '앤서니 드 멜로' 신부님이 쓰신 '일분 지혜'라는 소책자가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글이 '기적'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기적 어떤 사람이 스승의 뛰어난 명성을 직접 확인하려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 "당신의 스승께서 어떤 기적들을 행하셨습니까?" 그가 한 제자에게 물었다. "글쎄요, 기적 천지지요. 당신 나라에서는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시면 그걸 기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면 그걸 기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짤막한 글이 우리를 묵상하게 합니다. '기적이 무엇인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기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묵상입니다. 기적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기를 바라시는 기적은,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
<연중 제2주간 월요일>(1.20) -일치 주간-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마르2,19ㄷ) '단식의 참의미!' 오늘 복음(마르2,18-22)은 '단식 논쟁과 새것과 헌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르2,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르2,19) 그리고 이어서 '새 천 조각은 새 옷에 대고 깁어야 하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식의 참의미를 묵상해 봅니다. 단식은 '구원행위'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 새것과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구원행위'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이신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한 '영과 육의 쇄신행위인 회개행위이며, 기도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인 잔치라는 구원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하느님 나라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곧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빼앗긴 때'입니다. 때문에 '지금은 단식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 안에 들어가려고 애써야 하는 '단식의 때'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새옷과 어울리게 새것이 되려고, 그리고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담는 새 부대가 되려고,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히브5,8-10) 우리도 함께 노력해 봅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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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1.21) -일치 주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2,27) '본질을 살자!' 오늘 복음(마르2,23-28)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띁어먹었습니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2,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함께 먹은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2,27-28)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종교 지도자들과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율법 논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율법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본질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십계명과 모세오경(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이 근간을 이루고 있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세부 규정들(613개 정도)이 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법'입니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준 하느님의 법으로서, '생명 법'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아무리 복잡하고 엄격한 율법 규정이 많이 있어도 율법의 본질은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본질을 가리키는 손가락(율법의 세부 규정들)만 바라보지 말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본질을 바라보고, 본질인 사랑을 살려고 노력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2주간 수요일>(1.22) -일치 주간-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3,4ㄷ) '안식일의 참의미!' 오늘 복음(마르3,1-6)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 곁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봅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마르3,3) 하시고,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노기를 띠시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집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살리려 오셨고, 사람들을 다시 살리고 계시는데, 기뻐하며 감사드리기는커녕,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다고 예수님께 불만을 드러내며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엿새동안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신 날'인 '하느님의 창조 말씀에서 유래된 날'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일에 해당되는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의 날인 안식일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다시 성해진 것처럼 '다시 부활하는 날'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안식일, 곧 주님의 날인 주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주일에 나는 다시 부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처럼 나도 너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지? 한번 성찰해 봅시다! 주님의 날인 안식일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다시 성해진 것처럼 '다시 부활하는 날'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안식일, 곧 주님의 날인 주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주일에 나는 다시 부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처럼 나도 너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지? ![]() |
<연중 제2주간 목요일>(1.23) -일치 주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마르3,8ㄴ) '우리도...!' 오늘 복음(마르3,7-12)은 '군중이 호숫가로 모여들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시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방인 지역을 포함한 사방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예수님께로 몰려옵니다. 그들은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더러운 영들도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먼저 모두에게 열려져 있는 예수님의 마음인 '구원의 보편성'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얼마나 모두의 구원자이신 예수님, 대사제이신 예수님,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께로 향해 있는지에 대한 '나의 믿음'도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오는 큰 무리들을 다 받아주시고, 그들의 병고를 없애주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희생과 구원 사랑인 '예수님의 땀'과 '나의 땀'을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과 구원 사랑의 표지인 기적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예수님의 '함구령'을 묵상해 봅니다. 왜? 이유는 '마지막 희생과 구원 사랑인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마지막 하느님의 기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함구령을 내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모두에게 열려져 있는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주저하지 말고 예수님께로 더 다가가는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처럼 땀 흘리는 제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축일>(1.24) -일치 주간-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마르3,13) '열두 사도!' 오늘 복음(마르3,13-19)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 열둘을 부르셔서 사도로 세우십니다. 열두 사도를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뽑힌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마르3,16ㄴ-19) 열두 사도는 '예수님께서 원하신 이들'입니다. 열두 사도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입니다. 열두 사도는 '부족함이 많았던 이들'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분의 십자가도 지지 않았고, 결정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모두 도망갔던 이들입니다. 그랬던 사도들이 완전히 뒤바뀌어 '참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담대하게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처럼 순교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뒤바뀌게 했을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분의 발현(나타나심)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 안에서 또 하나의 제자와 사도로 살아가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신 이들,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 뽑힌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도 성령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사도가 됩시다!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1.25) -일치 주간-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더 나은 삶으로의 응답!' 오늘 복음(마르16,15-18)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방인의 사도인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박해자였던 사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의 대변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회개하기 이전에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며 살았던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교를 모질게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박해를 피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가던 그가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사도22,6-10 참조)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하나니아스를 도구로 쓰시어 그를 회개하도록, 이방인의 사도가 되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니아스는 자신을 찾아온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사도22,14-16)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부르시고,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미사)를 통해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성직자의 말과 너를 통해서도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귀 기울이고, 날마다 더 나은 삶으로 응답하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더 나은 삶으로의 '응답과 애씀'이 바로 '회개요 복음 선포'입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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