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연중 제3주일>(1.2 <연중 제3주일>(1.26)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4,21ㄴ) '희년을 향하여!' '연중 제3주일'인 오늘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입니다. 그리고 '1월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해외원조주일'입니다. 오늘 복음(루카4,1-4;4,14-21)은 '머리글과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기쁨과 자유와 해방의 삶인 희년과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믿는 이들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자주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멀어진 삶을 살곤 합니다. 그리고 종종 서로에게 불편함과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나약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이들의 큰 기쁨'입니다. 오늘은 질병과 기아, 전쟁과 기후 재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는 '해외원조주일'입니다. 오늘 실시하는 '2차헌금'은 '세계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지는 우리의 나눔이요 사랑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6,37ㄱ) 당신을 따르는 굶주린 군중을 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우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나눔의 참의미'는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필요한 이웃에게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넉넉해서, 그리고 쓰고 남아서 나누는 것은 참나눔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12,27) 우리 모두는 하나이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나의 작은 사랑의 나눔이 하느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 작은 나눔들이 모여 너를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 안에서, 말씀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나눔의 참의미'는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필요한 이웃에게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넉넉해서, 그리고 쓰고 남아서 나누는 것은 참나눔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12,27) 우리 모두는 하나이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예수님 안에서, 말씀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
제목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연중 제3주간 월요일>(1.27)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마르3,26) '성령의 역할!' 오늘 복음(마르3,22-30)은 '예수님과 베엘제불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권한을 갖고, 하느님의 모습으로 이 세상과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반면 '베엘제불은 마귀의 우두머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음식을 드실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오고, 그 안에서 많은 치유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이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악담을 하면서 나쁜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런 악담을 합니다.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르3,22)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마르3.30)라고 말하는 율법 학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3,23ㄴ-24.28-29) '성령의 역할!'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을 향해 있는 이들의 모든 움직임들'은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행하시는 움직임들'입니다. '성령은 통합의 영'입니다. '공정과 정의의 영'입니다. '기도하면, 예수님 안에 깊이 머물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악령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을 따라갑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1.28)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5) '예수님의 참가족!' 오늘 복음(마르3,31-35)은 '예수님의 참가족'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와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부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마르3,32)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3,33)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4-35) 요즘 우리가 듣고 있는 독서 말씀은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대사제이신 예수님,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히브10,1-10)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10,7)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10,10)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실행해야 할 하느님의 뜻이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났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 모두의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 속죄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신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예수님의 생각을' 따라가고, '예수님의 말을' 따라가고, '예수님의 행위를' 따라갑시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너를 위해 죽읍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12,40) '행복한 설명절!' 오늘 복음(루카12,35-40)은 '깨어있어라.'는 말씀입니다. 민족의 큰명절인 설명절입니다. 먼저 아론의 축복(민수6,24-26/제1독서)으로 새해 인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복(은혜와 평화) 많이 받으시고, 영육의 건강이 함께하는 을사년 새해가 되시길 빕니다." 뉴스를 통해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들 때문에 설명절이 편안하지 않아!" 참으로 우리나라가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설명절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만큼은 조상님들과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기억하면서, 서로 싸우지 말고, 시끄러운 마음들 잠시 다 내려놓고, 가족 친지들과 형제자매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설명절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설명절에 들려오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크게 일깨웁니다. 오늘 제2독서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까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4,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늘 복음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12,36-37ㄱ)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12,39-40) 모든 사람은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또 하나의 결정적인 때인, 그리스도의 재림(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코 알 수 없는 때입니다. 함께 깨어 있도록 합시다! 사람답게, 그리고 그리스도인답게.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주간 목요일>(1.30)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마르4,21) '등불의 의미!' 오늘 복음(마르4,21-25)은 '등불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는다는 것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서의 등불이 될 수 없습니다. 등불의 비유에서 등불은 말씀을 의미하고, 복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 등불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복음과 복음이신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양식을 또한 너에게도 나누어 주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4,24-25) '가진 자의 의미'가 '이웃에게 잘 나누는 사람의 의미'로, 그리고 '가진 것이 없는 자의 의미'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지 않는 사람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베풀고 나누면 그것도 넉넉하게 베풀고 나누면, 그 이상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되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으면서 기쁘게 잘 나누면 하느님께서 그 이상으로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삶의 자리에서 종종 체험하곤 합니다. 이 체험을 한 사람들이 더 잘 베푸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총의 은총을 입게 되는 것이지요. '인색'은 죄의 뿌리이면서, 그 자체로 죄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겼습니다."(히브10,22) 등불이 됩시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등불이 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1.31)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마르4,26ㄱ) '하늘의 손길!' 오늘 복음(마르4,26-32)은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손길이 결코 작은 손길이 아니며, 처음에는 비록 미미하고 작아보이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결과를 낸다.'는 메시지, 그렇게 '하느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메시지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농부의 땀과 노력이 없으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의 손길'입니다. 하늘이 먹이시고 살리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햇빛을 내려주지 않고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이러한 진리와 이치를 복음에서는 '저절러 자라난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저절로 이지만, 그것은 '하늘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소중한 진리와 이치를 잊고 삽니다. 마치 나의 땀과 노력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씨가 땅에 뿌려져 결실을 맺는 과정은 '신비'입니다. '하늘의 신비'입니다. 겨자씨는 어느 씨앗보다도 작지만, 그것이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 건설에 필요한 작은 것들이 결코 작지 않고,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 작음으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작은 것에 충실합시다! 쉽게 잊기 쉬운 '하늘의 손길'을 늘 인식하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행위에 충실합시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선물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시다!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이신 성 요한 보스코여, 불쌍한 저희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2.1 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 '참제자이신 어머니!' 오늘 복음(마태12,46-50)은 마태오 복음 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참가족'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두고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바로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월의 첫 토요일인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가 거행되는 날'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기리며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성모님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기 위함입니다. 성모님의 이 따름은 '성령으로 인해 이루어진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 따름'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모든 움직임과 말씀에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과 아픔에 온전히 함께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위대함'이며, '성모님을 공경하면서 성모님의 성덕을 따라가려는 이유'입니다. 성모 엄마의 이 온전한 따름의 결과가 '부활이고 승천'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성모 엄마를 공경하면서 따라가고 있는 우리의 목적 또한 '부활이고 승천'입니다.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부활하는 것이 신앙인의 목적'이고, 마침내는 '하늘에 마련된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으로 승천하는 것이 또한 신앙인의 목적'입니다. 날마다 성모 엄마의 전구의 힘으로 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하느님의 참제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 생각으로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모 엄마처럼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제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 떠들지 말고 성모 엄마처럼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곰곰이 되새겨보는 참제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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