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6.2)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14,22.23)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오늘 복음(마르14,12-16.22-26)은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은총이요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의 육화(성탄)와 땀(공생활)과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요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인 목요일 저녁에 열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성체성사(미사)를 제정하셨습니다. "받아 먹어라.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렇게 제정된 성체성사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직자들의 손을 통해서' 계속 거행되고 있고, 이 성체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모두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쏟아지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믿겠다고 약속한 사람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충만히 받고, 나도 너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약속의 실현'이 바로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복음화 사명의 본질'입니다. 6월은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고, 예수 성심과 하나가 되기 위한 달'입니다. '예수 성심'은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성체와 성혈'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쏟아지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많이 받기 위해서 미사에 자주 참석합시다! 미사를 잘 준비하고, 미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합시다! '이것이 바로 오늘 강론의 핵심'입니다. (~ 민수26,65)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6.3)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자."(마르12,7) 하느님의 분노! 오늘 복음(마르12,1-12)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의 '불순종'을 지적하십니다. 오늘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에서 '주인'은 '하느님'이고, 포도밭 소출을 받아오라고 보내어진 '종들'은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들'입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은 '유다인들'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소작인들인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결국 당신이 가장 아끼시는 아들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하느님의 분노!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안에 있는 '하느님의 분노',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유다인들을 향해 서 있는 하느님의 분노를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 분노는 지금 여기에 있는 또 다른 소작인들인 우리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는 하느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도 향해 있는 분노라고 묵상했습니다. 하느님의 분노를 하느님의 기쁨으로 바꾸어 드립시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나아가는 회개입니다. 우리 인간은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회개를 위해 끝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하느님의 인내'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하느님 은총'이며, 이 은총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며 자비'입니다. 회개하기를,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돌아갑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루카15,11-32 '되찾은 아들의 비유' 참조) (~ 민수27,11)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6.4)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12,17) '하느님의 것!' 오늘 복음(마르12,13-17)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올무를 씌우려고, 곧 예수님을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뜨리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질문을 합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12,14) '세금을 바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로마의 통치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바쳐야 한다.'고 말하면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속임수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고 하시면서, '동전의 초상과 글자가 황제의 것'인 것을 확인하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 드려라."(마르12,17)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들은 매우 감탄합니다. 예수님의 이 명확한 답변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위선, 곧 세속적인 일에는 충실하면서도 하느님의 일에는 충실하지 않은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국가와 하느님 사이에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설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느님의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으로도 다가옵니다. 오늘 독서는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인데, 베드로 사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2베드3,14-15) 하느님의 것을 선택하려고 애쓰는 자녀들이 됩시다! (~ 민수27,23) |
제목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6.5)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12,27) '부활의 삶!' 오늘 복음(마르12,18-27)은 '부활 논쟁'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는 율법 규정에 따라,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12,25.26ㄴ.27ㄱ) 계속해서 예수님을 흔들어 댑니다. 모세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근거로 예수님이 자신들이 희망해 온 메시아이신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부활 논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과의 부활 논쟁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부활 신앙'이며, 때문에 '우리의 하느님은 부활하는 이들의 하느님,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선포가 '하느님은 우리를 부활로 이끄시는 하느님'이시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선포로 다가옵니다. '부활의 삶!'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서 지금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지요?' 우리는 이제와 영원한 부활을 희망하면서 이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와 영원한 나의 부활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다시 불태웁시다! ----------------------------------------불타는 열정으로 닮으며 사랑합시다 예수님!!!!!!아멘 (~ 민수28,10)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6.6)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31ㄷ) '가장 큰 계명!' 오늘 복음(마르12,28ㄱㄷ-34)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12,28ㄷ)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29-31) 율법 학자 한 사람이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 하나가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대답의 의미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랑'이고, '하느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 하고, 이웃 사랑의 힘은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로 묵상되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성령의 힘'입니다. 믿는 이들의 모든 신앙 행위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표지입니다. 이 표지들인 미사와 기도와 말씀 안에 머무는 신앙 행위를 할 때, 나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담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졌습니다. 그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사랑하는 제자 티모테오에게 이 사랑을 기억하라고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2티모2,8)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 민수28,18)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6.7) -사제 성화의 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19,34) '예수 성심!' 오늘 복음(요한19,31-37)은 '군사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군사 하나(론지노)가 창으로 심장이 있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성체성사와 세례성사'를 상징하며,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聖心)'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억하고, 그 마음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인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사제들이 이런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과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예수 성심!' 예수 성심(聖心)은 가엾은 이들에게로 향해 있는 '연민의 마음'입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향해 흐르듯이, 늘 낮은 곳에 있는 가엾은 이들에게로 향해 있는 '측은지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것을 내어놓으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당신의 전부를 내어놓으신 '사랑의 마음'이며 '겸손의 마음'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과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닮은 사제들이 이 땅에 많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요즘 우리네 세상이 점점 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고, 그래서 하느님의 피조물들과 공동의 집인 지구가 힘들어 합니다. 그 원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세기 가장 큰 병폐로 지적하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런 병폐들을 몰아내고,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채우도록 합시다! 오늘도 '예수 성심'과 함께 화이팅 합시다! (~ 민수 30,3)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군사 하나(론지노)가 창으로 심장이 있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성체성사와 세례성사'를 상징하며,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聖心)'을 상징합니다. '예수 성심!' '예수 성심!' '예수 성심!'--포옥 잠기고 싶어요 - ''나는 한 가지 책임만 아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 Albert Camus (프랑스 작가) |
제목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6.8)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2,51) '하나의 마음!' 오늘 복음(루카2,41-51)은 '예수님의 소년 시절의 모습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2,51-52) 어제는 '예수 성심'을 기억하고, 오늘은 '성모 성심'을 기억합니다. 어제는 '아들의 마음'을, 오늘은 '엄마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교회가 '예수 성심'에 이어서 곧바로 성모 성심을 기억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성모님의 마음은 하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성모님께서 아들의 마음에 온전하게 합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년 전 이정숙 사비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는 어머님의 유품 중에서 영정사진과 어머님 일기장과 성경 필사노트만 갖고 내려왔습니다. 어머님 일기장은 이 죄인(사비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와 함께 자녀들에 대한 간절한 기도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루카 사제가 사제의 길을 잘 걸어가게 해 달라는 것과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게 해달라는 간절하고도 단순한 기도였습니다. 이것이 어머님의 모든 일기의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엄마의 마음은 늘 아들(자녀)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엄마들의 보편 마음'입니다. '성모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톨릭 성가 248번'의 가사처럼, '성모 엄마'는 한생을 아들 예수님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이 가신 길을 함께 걸으셨고, 항상 아들 예수님 마음 안에 있었고, 예수님 계신 곳에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모 엄마의 마음은 아들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였습니다.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은 하나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모 성심을 닮아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시다! (~ 민수 31,15)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10주일>(6. <연중 제10주일>(6.9)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5) '참 신앙공동체 만들자!' 오늘 복음(마르3,20-35)은 '예수님과 베엘제불에 대한 말씀'과 '예수님의 참가족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 공생활의 주된 활동은 세 분야입니다.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드러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엾은 군중이 예수님께 모여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그분을 붙잡으러 옵니다.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두고,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하면서 '성령을 모독'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메이게 된다."(마르3,23ㄴ.28-29)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두고,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냐?"(마르3,33)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4-35) 생각과 말과 행위로 하느님을 믿고 따라가는 이들은 지연, 혈연, 학연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것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참 신앙공동체'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 하나의 '친목공동체' 안에 머물게 됩니다. 참되게 믿고 희망하고 사랑함으로써, 아름다운 참 신앙공동체를 만듭시다! (~ 민수32,42)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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