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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4주일>(1.28) -해외원조주일-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해외원조주일'입니다.


<연중 제4주일>(1.28) -해외원조주일-

"이게 어찌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마르1,27)

'예수님의 권위!'

오늘 복음(마르1,21-28)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정확하게 알아보는 더러운 영을, '말씀으로' 쫓아내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1,25)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의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에 모두 놀랍니다.

'예수님 권위!'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예수님의 권위는 어떤 권위였을까?'

첫째,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권위'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은 하느님의 권위'였습니다.

둘째, '행동하는 권위'였습니다.
말과 행위가 일치됨으로부터 나온 권위였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 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셋째, '능가하는 권위'였습니다.
율법 그 자체에만 얽매였던 율법 학자들의 형식을 능가하는 권위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새로운 권위 앞에서 몹시 놀랐습니다.

'1월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해외원조주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의 나눔'은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신적행위'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들은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권위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어봅시다!

(~ 사도9,43)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1.30)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5,34)

'참믿음!'

오늘 복음(마르5,21-43)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 발 앞에 엎드려 간곡히 청합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5,23)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길을 나서십니다. 그리고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군중 가운데에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자가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대어 낫게 됩니다. 그 여자는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르5,28) 하고 생각했고, 그 믿음이 그 여자를 구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던 도중에 그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5,36)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딸을 다시 살리십니다.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마르5,41) 

'믿음의 기적'입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고 있었던 여인의 믿음과, 야이로의 한 회당장의 믿음이 만들어 낸 기적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이고, 참믿음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복음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이 복음 안에서 '신앙생활과 잘 믿는다는 참믿음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례 때의 첫믿음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겸손하게 나의 나약함(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로 돌아가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다시 세례 때의 첫믿음으로 돌아가는 것(부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 믿는다는 참믿음의 모습'이고,
'신앙생활인 믿음의 삶은 이것의 계속된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리타 쿰!"

(~ 사도11,1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1.31)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4)

'단순한 믿음!'

오늘 복음(마르6,1-6)은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6,2-3)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아무런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제 복음이 '믿음의 기적'을 전했다면, 오늘 복음은 '불신의 모습'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함께 믿는 '단순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단순한 믿음이 있는 곳에서 '크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성 안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하느님, 복된 요한 사제를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똑같은 사랑의 불로 타올라, 오직 주님을 섬기며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본기도)😂

(~ 사도16,40)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4주간 목요일>(2.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6,7) 

'복음화!'

오늘 복음(마르6,7-13)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 곧 그 영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고 그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이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께만 의탁하라.'는 명령으로 다가옵니다.

열두 제자들은 그렇게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요즘 저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정을 필사 중에 있습니다. 어제는 바오로 사도의 3차 선교 여정의 시작인 '사도행전 19장까지' 필사했습니다.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을 만나 완전히 회개한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기쁜소식(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몸소 보여준 복음선포의 삶을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이는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삶입니다.

'지금 나는 복음 선포의 삶을 기쁘게 살아내고 있는지?'

만약 믿는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과 삶인 복음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무요 허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복음 때문에 기뻐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화의 첫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세상 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하느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 사도19,40)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주님 봉헌 축일>(2.2) -축성 생활의 날-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루카2,23)

봉헌의 삶!

오늘 복음(루카2,22-40)은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시는 말씀과 그 모습을 목격한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입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봉헌축일'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수도자들과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봉헌의 삶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삶 전체는 '봉헌의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육화의 신비인 탄생과 땀의 신비인 공생활에 계시되어 있고, 봉헌의 삶의 꼭대기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봉헌의 삶이셨으니, 우리의 삶도 봉헌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아내야 할 봉헌의 삶은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삶'입니다. 예수님처럼 '너를 위해 내 것이 내어지는 삶'입니다.

시작에서 마침까지 봉헌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의 삶도 봉헌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봉헌의 삶을 '보다 더(Radical)' 살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수도자들입니다. 수도자들은 '예수님 봉헌의 삶인 복음삼덕의 삶', 곧 '순종과 가난과 정결의 삶'을 서약한 분들입니다. 신자들보다 더 봉헌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많은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침체되어 있는 수도 성소의 활성화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느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비오니, 사람이 되신 외아드님께서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셨듯이, 저희도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저희 자신을 봉헌하게 하소서."(본기도)

오늘도 화이팅~

(~ 사도23,23)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4주간 토요일>(2.3)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6,34)

'임금의 덕목!'

오늘 복음(마르6,30-34)은 '예수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군중을 향한, 또 하나의 군중인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가엾은 마음인 측은지심'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마음은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향해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로 향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전해지는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과 독서(1열왕3,4-13)를 통해 전해지는 '솔로몬의 지혜'를 함께 묵상하면서, 오늘날 이 세상에 필요한 '임금의 덕목'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이 묵상을 통해 이 땅에 '예수님과 솔로몬을 닮은 지도자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사울과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3대 임금으로 뽑힌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러 기드온에 갔을 때, 그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1열왕3,5) 

솔로몬이 대답합니다.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3,7.9) 

솔로몬의 이 청원은 하느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1열왕3,10-13 참조)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1열왕3,12-13) 

예수님을 닮은 지도자.
솔로몬의 지혜를 청하는 지도자.
백성을 갈라치기하지 말고 하나로 모으는 지도자.
지금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지도자.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로 마음이 향해 있는 지도자.

이런 지도자가 이 땅에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런 지도자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사도27,3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