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6주일>(2.11) -세계 병자의 날-"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b)


<연중 제6주일>(2.11) -세계 병자의 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b) 

'나의 나병!'

오늘 복음(마르1,40-45)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레위기의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나병과 같은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져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었던 '소외병 환자'입니다. 하지만 가엾은 마음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병 환자를 고쳐주십니다.

나병(한센병)은 몸의 지체가 문드러지는 문둥병입니다.
특히 눈과 코와 입과 두 손과 두 발과 같은 말초신경계에 두드러진 증세가 나타나는 병입니다.

육체의 나병과 예수님의 치유기적을 바라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도 나병 환자는 아닐까?
마음이 문드러진 그런 나병환자, 그래서 종종 헛소리를 하고, 헛것을 보고 듣고, 헛된 행동을 하는 나병 환자는 아닐까?

'2월11일'인 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2월11일'은 1858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께서 가난한 시골 소녀였던 베르나데트(벨라뎃다)에게 첫 발현하신 날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 발현하셨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2월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제정하셨습니다.

많은 병자들과 병자들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천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2024년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2독서(1코린10,31-11,1)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10,31-32) 

주님의 도우심이신 성령의 힘이 더해져서 병자들이 치유되고, 나의 나병도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코린2,17)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6주간 월요일>(2.12)

"어찌하여 이 시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마르8,12) 

'회개의 표징!'

오늘 복음(마르8,11-13)은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와서 논쟁하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메시아인지에 대한 시험이며, 당신이 메시아라면 한번 표징(기적)을 일으켜보라는 요구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8,12)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많은 표징들(기적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결정적인 때(kairos)'를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많은 표징을 일으키면서도 동시에 '함구령'을 내리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일으키신 많은 표징들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결정적 표징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표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표징'입니다. 곧 '어제보다 더, 지금 보다 더,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커지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예수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십자가의 생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은,
'성령의 네 번째 열매'인 '인내'입니다.

이 '인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오늘 독서(야고1,1-1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1,2-3)

'인내'의 열매를 통해서,
회개의 표징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 2코린3,1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6주간 화요일>(2.13)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르8,15) 

'기억과 머뭄!'

오늘 복음(마르8,14-21)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의 거짓과 위선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빵을 만드는 '누룩', 곧 '먹는 빵'에 갇혀 있고, 빵을 가져오지 않은 '빵이 없음'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로 수군거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의 '수군거림'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둔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이런 꾸지람을 들은 제자들의 모습이 지금 여기에 있는 제자들인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 완전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고, 그 완전한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이 표지인 십자가가 걸려 있고, 또한 매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제대 위로 내려오시는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미사의 본질적 의미'는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기억하고, 이 사랑 안에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독서(야고1,12-18)에서 야고보 사도가 권고하고 있는 것처럼, 온갖 은총은 '이 기억과 머뭄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1,16)

'견월망지(見月忘指)' 하지 말고, 곧 십자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바라보지 말고, 매일 미사드리는 사제의 모습을 보지 말고, 그 본질인 '십자가 사랑'과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코린8,1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재의 수요일>(2.14)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회개의 때!'

오늘은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미사에 꼭 참석합시다!

'사순시기'는 '오늘부터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집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부활 대축제를 준비'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순시기 때 해야 하는 본질을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2,12-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5,20-6,1.2) 

오늘 복음(마태6,1-6.16-18)은 '올바른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기도 할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하라고...
'단식 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곧, '나의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이 없다.'고 하십니다.

'자선의 본질'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너를 통해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행위'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대화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이 사랑 안에 머무는 행위'입니다.
'단식의 본질'은 '구원의 장애가 되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 봅시다!

(~ 갈라1,24)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2.1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9,24)

'선택과 매달림!'

오늘 복음(루카9,22-25)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는 말씀'과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따라가는 사람들, 날마다 그렇게 따라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고 따라가고 있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길은 '고난의 길, 배척의 길, 죽음의 길'인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너머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본질'이요, 우리가 믿어야 할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나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나의 부활을 향해 걸어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힘들어 하셨던 길입니다.('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신 예수님' 참조)

'예수님의 본질과 믿음의 본질',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을 때만,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마침내는 부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30,19-20) 

생명이신 예수님을 선택합시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생명이신 예수님께 매달려 있도록 합시다!

이 '선택과 매달림'이 바로 날마다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요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십자가와 따름' 너머에 부활이 있습니다.

(~ 에페1,14)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2.16)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태9,14) 

'예수님의 단식!'

오늘 복음(마태9,14-15)은 '단식 논쟁'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다른 사람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9,15)

'혼인 잔치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구원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단식에 대한 말씀인 오늘 복음과 독서(이사58,1-9ㄴ)를 통해 '예수님의 단식', 곧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단식은 말 그대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단식은 여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식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과 독서가 전하는 단식, 곧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식과는 크게 다릅니다.

오늘 독서는 '주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58,6-7)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내 안에 있는 나쁜 영들이 없어지고,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단식'이며, '단식의 본질'입니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이런 단식을 자주하고,
그리고 많이 합시다!

(~ 필리1,30)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2.17)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5,32) 

'예수님 감사!'

오늘 복음(루카5,27ㄴ-32)은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함께 음식을 먹은 레위나 세리들은 로마의 협력자로서, 당시 유다인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런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신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립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루카5,30ㄴ) 

예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5,32)

'예수님 감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인입니다.
아직 완덕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본질이요 핵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입니다.
아직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구원 받는 길'은 언제나 이 십자가 사랑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기쁨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관심은 언제나 죄인들이 있는 낮은 곳으로, 죄인이라는 고백이 넘쳐나는 낮은 곳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58,9-10) 

자비로우신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그러면 은총과 복을 넘치도록 받을 것입니다.

(~ 콜로1,23)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