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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11주일>(6.16) 내 마음의 창고 안에 성령을 채웁시다!


<연중 제11주일>(6.16)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4,26.31ㄱ) 

'하느님의 나라!'

오늘 복음(마르4,26-34)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인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천국)'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포하신 나라'이며, '이미와 아직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의 가치와 내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가치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땀을 흘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처음에는 비록 미미하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 마지막 때에는 큰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아 보일지라도 엄청난 가능성이 숨어 있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결코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겨자씨의 비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14,17)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곧 '하느님의 나라인 천국'입니다.

내 마음의 창고 안에 성령을 채웁시다!
성령을 채우기 위해,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가 하는 모든 신앙행위(미사.기도 등등)에 온 정성을 담도록 합시다!

(~ 신명 9,29)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일욜- 한없는 풍요로움과 가능성, 확장성을 지닌 하느님 나라!             아마도 하느님 나라는 이런 곳일 것입니다.
쥐꼬리보다 작은 우리의 선행, 너무나 미흡해 보이는 우리의 기도, 우리가 베풀었던 손톱만한
이웃사랑이 깜짝 놀랄 만큼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곳, 넉넉함과 풍요로움, 기쁨과 감사, 대견함과 환희로 가득 찬 곳이 하느님 나라일 것입니다.
                                                                                                               월욜 --믿음과 희망의 문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5,39)
예수님의 이 말씀은 믿음이 있는 이들, 곧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이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희망을 두고 있는 이들만이 실행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실행이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며,
예수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멘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6.17)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5,39)

믿음과 희망의 문제!

오늘 복음(마태5,38-42)은 '폭력을 포기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5,38-39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이 율법은 '동태복수법', 곧 '피해를 입은 그만큼만 되돌려주는 법'을 의미합니다.
이는 피해를 입은 그 이상으로 되갚으려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하는 법입니다.

이것도 참으로 지키기가 어려운 말씀으로 다가오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5,39ㄷ-52)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치열한 경쟁의 삶 속에서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무엇인가를 빼앗기기만 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세상 안에만 머물러 있고, 눈에 보이는 것들 안에만, 곧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들 안에만 갇혀 있다면 실천 불가(不可)의 말씀으로 다가올 것이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믿음이 있는 이들, 곧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이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희망을 두고 있는 이들만이 실행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실행이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며,
예수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신명 11,32)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11주간 화요일>(6.18)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완전한 사랑!

오늘 복음(마태5,43-48)은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5,43-44)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때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마태5,45)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5,46-47)

완전한 사랑!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는 '모두를 위한 보편 사랑'이며, '완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그 사랑을 실행하셨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심으로써, 완전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오늘 복음은 '우리의 사랑이 반쪽 사랑을 뛰어넘어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반쪽 사랑'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고, 나에게 잘해 주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우리의 '신앙 여정'은 '반쪽 사랑을 뛰어넘는 회개의 여정인, 완전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신명15,11)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4등 칸이 없어💖 


슈바이처 박사는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 중에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를 떠나 파리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덴마크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 해 들은 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려고 그가 탄 기차로 몰려들었습니다. 

슈바이처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은 귀족입니다. 
그래서 취재경쟁에 열중한 기자들이 한꺼번에 특등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다시 일등칸으로 몰려가서 찾아보았으나, 
거기에도 슈바이처 박사는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또다시 이등칸으로 가 봤으나, 거기서도 슈바이처 박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모두 허탈한 나머지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영국 기자 한 사람만이 혹시나 하고 3등칸을 기웃거리다가 뜻밖에 거기서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냈습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딱딱한 나무 의자에 꽉 끼어 앉아 있는 퀴퀴한 악취로 가득한 3등 칸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슈바이처 박사는 그들을 진찰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기자가 그에게 특등실로 자리를 옮기기를 권했으나 슈바이처 박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3등칸에 타셨습니까?" 

"예, 
이 기차는 4등 칸이 없어서요." 

"아니 그게 아니고 선생님께서 어쩌자고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잠시 후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겸손은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고 마음을 숙이는 거랍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

슈바이처 박사야말로 정말 겸손과 봉사와 박애정신을 가진 훌륭한 의학박사입니다. 

- 옮겨온 글 -

돈 만 밝히고 파업하는 우리나라 의사들도 슈바이처 박사를 본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   
제목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6.2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9)

'주님의 기도!'

오늘 복음(마태6,7-15)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7-9)

이어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용서'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6,14-15)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기도'이자,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기도의 완전한 모범'입니다.

기도를 할 때, 그리고 무엇인가를 청할 때, 먼저 하느님의 것들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바치고, 그 다음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것도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것을 청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욕심을 드러내지 말고 오늘 필요한 양식만 청하고, 내가 먼저 너를 용서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청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곰곰이 살펴보면, 너를 용서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바칠 수 없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기본적인 정의'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대화'입니다. 하느님과 대화는 솔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아적(幼兒的)인 대화, 곧 내게 필요한 것만을 청하는 그런 대화를 피해야 합니다.
먼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리고, 다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가르침입니다.

(~ 신명 19,21)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6.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참보물을 바라보자!'

오늘 복음(마태6,19-23)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라는 말씀과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이 뚫고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6,19-20ㄱ)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6,22-23) 

오늘 복음 묵상은 '영과 육의 건강'에 대한 묵상입니다.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인간은 하느님의 영을 지닌 '영적인 존재'이자, 또한 썩어 없어질 육(肉)을 지닌 '육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영과 육이 함께 건강해야 합니다. 영(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합니다. 육의 건강의 시작은 영의 건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육의 건강도 매우 중요합니다. 육이 건강하지 않으면 영의 건강도 흔들립니다.

'영(마음)이 건강한 상태'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발하시는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의미 합니다.

내 마음의 창고에 성령이 충만하면, 곧 영(마음)이 건강하면, 내 안에 계신 그 성령께서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에만 집착하지 않게 하고,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있는 '참보물'을 바라보게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참보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 바라봄(머뭄)을 통해 참보물인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을 둡시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청소년의 수호성인이신 알로이시오 성인'은 참보물을 바라보신 분, 그래서 영원한 생명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 신명 23,26)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6.22)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6,34) 

'현재라는 선물!'

오늘 복음(마태6,24-34)은 '하느님이냐, 재물이냐'라는 단락과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라는 단락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없다."(마태6,24)

이어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6,25)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먹여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하늘의 새들과 들에 핀 나리꽃들'을 예로 드시면서,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의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6,30)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끝맺으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3-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런 의미의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않으면서 '무위도식(無爲徒食)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매우 소중한 '선물'(Present)로 주어지는 '오늘'이라는 '현재'(Present)의 시간에 항상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 현재'라는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매우 소중하며 값진 선물의 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이 소중한 시간에 충실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들 말합니다.

오늘(지금) 믿고,
오늘(지금)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오늘(지금) 사랑하도록 합시다!

(~ 신명 25,19)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