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
우리는
두꺼운 잠바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예뻤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새하얀 눈밭으로 변한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언니, 이거 봐." 동생은 하얀 눈밭에 하트를 그렸다. - 구본순의 《지수》 중에서 - *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아련한 기억 속으로 달려갑니다. 지금 눈밭을 걷고 있는 것은 분명 현재인데 기억은 먼 과거로 되돌아가 어린 시절 예쁜 추억 속으로 빨려 듭니다. 현재는 과거 속으로 들어가 중첩되고, 과거는 현재 속으로 들어와 새하얗게 되살아납니다. 놀라운 생명력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나는 엄마의 딸이고, 농인의 아내고, 코다(CODA)맘입니다.” 카피만으로도 가슴 뭉클해지는 이야기, 《지수》
ㆍ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의 약어.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 말.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농인 자녀와 청인 자녀가 모두 해당되지만 보통 청인 자녀를 가리킨다. ○ 수어 표현을 살린 본문 대화와 별첨 〈이 글에 등장하는 수어 표현 안내〉를 통해 농인과 수어에 대한 이해를 돕고, 한국문학의 표현적 외연을 넓힌다. ○ 주인공 ‘지수’ 소개 ‘지수’는 구본순 작가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느낌으로 주인공의 이름이 불렸으면 했다. 지수는 비장애인이지만, 농인 준호를 만나 사랑을 하고 그와 결혼한다. 가족들의 걱정에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 된다.’고 자신했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환경으로 현실의 어려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지수는 누굴 원망하거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한다. 엄마가 혹시 모를 태아의 장애를 걱정할 때도, 소리를 못 듣는 준호가 육아를 도와줄 수 없을 때도, 사랑하는 아들 연우가 코다(CODA)로 자랄 때도 지수는 자신의 몫을 해낸다. 모든 것이 ‘파(수어로 ’가능‘이라는 뜻)’하다고 생각하고, 힘들면 ‘열 걸음만 더 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
목차
- 01. 지수의 풍경 ...06
02. 지수의 연애 ...22
03. 케냐의 선물 ...40
04. 파? 파! ...64
05. 열 걸음만 더 가자 ...84
06. 코다 가족입니다 ...102
° 작가의 말 & 셀프 포트레이트 ...127
° 추천의 말 _ 이영숙 ...131
° 별첨 | 이 글에 등장하는 수어 표현 안내 ...142
글/그림 구본순장애문화예술교육단체 풍경놀이터의 대표다. 수어 통역을 하며 농인들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을 기획·지도한다. 공저로 동화에세이 『어쩌면 너의 이야기』가 있으며, 소리샘청각학습지원센터 청각학습연구회 연구진으로 수어 교재 『신나는 수어 놀이터』 집필에 참여했다. 비장애인으로 농인과 결혼하여 코다(CODA)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과 상황을 사랑하며 담담히 그러나 단단하게 삶을 지켜나간다.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선물 같은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며,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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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문법은 『지수』를 통해 아방가르드적으로 문학에 진입하였다.
농인의 사전적 의미는 ‘귀에 이상이 있어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문화적 개념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이다. [소리, 있다]와 같은 표현의 낯섦을 수어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수어 번역의 유창한 구어화 때문에 놓친다는 것은 문학적 손실이 되지 않을까.
수어가 품고 있는 미지를 담은 『지수』로 인해 2023년은 수어가 문학의 외연을 넓힌 사건 원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중략)
우리는 저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거늘” 그 무엇이 “이리 좋아서 눈이 물렁해질 때까지 겨워” 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지수』의 주인공들은 ‘그 무엇’을 겹게 살아냈고, 또한 현재도 살아내고 있다. 자아를 갱신해 나가는 성장통의 동화적 성찰이 [낯설다, 새롭다, 음, 좋다]
책 속으로p. 27
만난 지 꼬박 삼 개월이 되던 어느 날, 준호는 지수에게 왜 통역사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지수, 수어, 배우다, 왜?] [농인, 돕다, 봉사, 원하다] 준호는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영어, 배우다, 왜?] [영어?, 여행, 원하다, 외국, 사람, 대화, 자유, 하다] [수어, 영어, 같다, 언어, 그런데, 수어, 돕다, 영어, 대화, 이상하다, 수어, 농인, 대화, 위해서, 배우다, 좋다] 준호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수는 수어를 소통을 위한 평등한 도구가 아닌 시혜의 수단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농인을 알아 가고 싶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던 자신이 우스웠다. 지금도 이렇게 준호에게 차를 얻어 마시고, 수어를 배우고 있으면서 말이다. p. 114 지수는 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 아름답다, 반짝반짝] 준호는 한강 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답했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연우가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는 언제부터 귀가 아팠어?” “아빠?” 지수는 놀랐다. 지금까지 준호의 장애에 대해 소통을 시작한 것은 늘 지수였다. 그런데 지금 연우가 아빠에 대해 먼저 묻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태어나서 기어 다닐 때 열이 났었대. 높은 열이 며칠 동안 계속됐는데 그때 귀를 다친 것 같아. 그때는 할머니도 아빠 귀가 아픈지 몰랐대.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가 ‘준호야’ 하고 불렀는데 아빠가 쳐다보지 않았대. 그래서 방바닥을 쿵쿵 쳤더니 그때는 보더래. 진동은 느끼는데 소리는 듣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아빠를 데리고 병원에 가셨대. 그때가 한 살도 되기 전이라고 하시더라.” |
출판사 서평▣ Q&A 지수에게 물어보세요.
Q1. 지수도 청각장애가 있나요? ☞ 아니요. 지수는 비장애인입니다. Q2. 지수가 제일 재밌어한 것은? ☞ 수어 Q3. 지수가 제일 좋아한 사람은? ☞ 농인 준호 Q4. 지수의 삶은 좀 힘들 것 같아요. ☞ 아니요. 평범해요. 그러나 좀 특별하죠. Q5. 지수가 겪은 고달픈 삶이 펼쳐지나요? ☞ 아니요. 지수의 삶은 누구보다 충만하고 행복하답니다. Q6. 지수는 왜 농인과 결혼했나요? ☞ 당신과 같아요. 사랑이죠. |
리뷰 sj****** 읽는 내내 일렁이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특별함, 지수, 준호와 연우의 도약이 멈춰있던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렇게 따뜻한 책을 23년 마무리하며 만날 수 있었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
리뷰 js***** 지수는 구름과 같다. 그 안에서 많은 일을 경험하고 겪어냈으면서도 따스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지수는 이불과 같다. 야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꺼낸 책 한 권이, 한 장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따스함과 포근함이 피로와 고통을 잊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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