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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 과 비움 /독서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휴식할 준비 완료!

휴식할 준비 완료!


집에 오랜 시간을 머무를수록
잠옷 가운, 이불, 실내화가 중요해진다.
실내화란 무엇인가? 구두나 장화를 벗고
편하게 신는 신발이다. 걷고 있던 발이 실내화를
신으면 휴식을 취하는 발이 된다. 발을 포근하게
감싸는 고치와도 같다. 발은 부드러운 양모나
펠트 속에서 아늑하게 쉬고 싶다. 팬데믹
동안에 특히 수면용 덧신과 실내용
슬리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품절 사태를 빚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중에서 -


* 밖에서 집에 돌아오면
완전 무장해제를 시켜야 편안합니다.
잠옷, 이불, 실내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긴장했던 몸을 편하게 풀어주는
필수 도구들입니다. 몸에 걸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팽팽히 긴장했던 신경줄을
느슨히 풀어놓아야 비로소 휴식할 준비 완료!
집안이 다시없는 힐링센터가 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메디치상 ㆍ 르노도상 ㆍ 몽테뉴상 ㆍ 뒤메닐상 수상에 빛나는 세계적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신작

무기력의 시대에 새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모험과 발견의 철학

“당신의 삶은 더욱 경이로워야 합니다”
침대 위에서 영화관, 식당, 사무실 등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밖으로 나가야 할까? 손안의 작은 세상은 삶을 한없이 쾌적하게, 그리고 한없이 권태롭게 만든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신작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은 이상기후, 전쟁, 팬데믹 등으로 바깥세상은 어지럽고 내면에는 무기력이 팽배한 요즈음, 침잠하던 당신의 일상에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전작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나이듦의 새로운 태도’를 이야기하며 장기간 인문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바 있다.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유려한 사색을 펼쳐 보이는 그의 통찰력이 이번에는 ‘무기력의 시대’를 향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명함이 아니라 가벼운 광기요, 영적인 치료제가 아니라 짜릿한 도취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진짜 삶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의 시작점에 있다. 모험심, 에로스, 사생활, 일상, 실존, 탈주 등 15가지 단서를 따라가면서 생의 감각을 되찾으려 한다. 안팎을 넘나드는 ‘바람’이 당신에게 새로운 ‘바람’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란다.
(Pascal Bruckner)

소설가이자 철학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으로 손꼽힌다.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르노도상과 메디치상을 수상했고, 몽테뉴상과 뒤메닐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하면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인정받는 공쿠르상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1948년 프랑스 파리 출생. 파리 1대학, 파리 7대학, 고등연구실습원에서 공부했고 파리정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아름다움을 훔치다》 《영원한 황홀》 《인생의 비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등을 발표했고, 한국에서는 영화 〈비터문〉의 원작 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나이듦’에 관한 솔직하고도 희망찬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 베스트셀러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 이어서, 이번 책에서는 ‘무기력의 시대’를 고찰한다.

번역 이세진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 《해피크라시》 《선택》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기후정의선언》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등이 있다.

목차

  • 한국어판 서문: 가능성의 문을 되도록 많이 열어놓기를
    프롤로그: 그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1부 여전히 삶은 경이로운가
    빗장 | 간수는 우리 머릿속에 있다
    여행 | 자기 방을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들
    스마트폰 | 내게 멋진 일이 생기리라 말해다오
    일상 | 운명이 가장 낮은 길로 나아갈 때
    사생활 | 나는 내 것이 아니었다
    방 | 괄호가 쳐진 (세상)
    집 | 매여 사는 삶의 고통과 기쁨
    잠 | 침대 위에서 보내는 절반의 인생

    2부 당신의 세상은 문밖에 있습니다
    모험심 | 조이스틱을 잡고 드러누운 모험가들
    슬리퍼 | 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삶이란
    일기예보 | 날씨와 마음의 상관관계
    에로스 | 관능이 몰락한 시대
    탈주 | 내 방을 여행하는 법
    실존 | 1년 365일, 365개의 운명들
    루틴 | 모래알 하나에도 화가 난다면

    에필로그: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자 후기: 영원한 방황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개인들에게

책 속으로

새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 그리고 신체가 냄새, 소리, 빛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화면은 화면일 뿐입니다. 빗장을 걸고 집에만 처박혀 산다면 안전을 위해 죽음과도 같은 권태를 대가로 치르는 셈이지요. 먼 곳을 내다볼 수 없는 초저공비행 같은 삶은 감옥 생활, 늘어진 속도의 삶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벌써 피곤한 삶입니다. 그런 유의 정신적 댄디즘은 시간과 세월의 흐름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끔 주도면밀하게 애를 씁니다. 그러한 삶은 때 이른 노년을 불러들여서 청년을 노인처럼 만듭니다.
- 7~8쪽, 〈한국어판 서문|가능성의 문을 되도록 많이 열어놓기를〉

우리는 스마트폰이 엄청난 사건을 불러일으키거나 예고하길 바란다. 이 도구로 인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늘 연결되어 있을 수 있지만 기다림은 더욱 참기 어려워진다. 그 사람이 왜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까? 당신은 기계에 문제가 생겼거나, 배터리가 방전됐거나, 전화가 안 터지는 곳에 있거나, 스마트폰을 도난당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그 사람은 그저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 61쪽, 〈스마트폰|내게 멋진 일이 생기리라 말해다오〉

집에 나 혼자뿐이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면, 성스러운 장소가 감옥이 되는 건 시간 문제이다. 나는 모든 구석에서 나 자신과 부딪힌다. 더 이상 “밖”이 없다면 “안”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안팎이 없는 닫힌 장소가 될 뿐이다. 세상의 거대한 빛, 불시의 아름다움이 끊임없는 왕래를 통하여 삶에 의미를 더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 117~118쪽, 〈집|매여 사는 삶의 고통과 기쁨〉

보들레르는 이렇게 말했다. “자고 또 자는 것, 그게 지금 나의 유일한 소원이다. 비겁하고 역겨운 소원이지만 진실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잠은 규칙적으로 심연으로 내려가는 행위다. 죽음은 존재를 삼켜버리지만, 잠이라는 작은 죽음은 존재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효율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이다. “우리는 침대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나머지 절반에서 겪은 슬픔도 잊는다”고 18세기에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Xavier de Maistre)는 말했다.
- 127~128쪽, 〈잠|침대 위에서 보내는 절반의 인생〉

슬리퍼 차림의 영웅, 모험가, 특파원을 상상할 수 있는가? 슬리퍼를 벗을 일 없는 삶은 구두나 스니커즈를 신고 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삶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평소 흠모하던 대상, 가령 위대한 작가나 배우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가 후줄근한 차림새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이었다면? 동경하던 대상의 범속함을 직시하게 되는 괴로운 경험이다. 그래서 헤겔이 남긴 유명한 말을 항상 되뇌게 된다. “자기 시종에게까지 영웅인 사람은 없다. 영웅이 진짜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시종은 시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 168쪽, 〈슬리퍼|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삶이란〉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기예보는 젊은 여성 기상 캐스터가 진행하는데, 얼굴 표정으로 좋은 소식 혹은 나쁜 소식을 나타낸다. 살짝 찌푸린 얼굴은 흐린 날씨 혹은 비 소식을 예고한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 따뜻하고 맑은 날이 온다. 추위와 폭우가 연일 이어질 때는 기상 캐스터가 나쁜 소식의 전령이 되어 괜히 미움을 산다. 어떤 상황에서든 일기예보는 진지한 예측과 배려를 요구한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옷을 따뜻하게 껴입으라든가,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기라든가. 이제 일기예보에서 옛날처럼 유쾌한 분위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기후는 전쟁이고, 기후에 신경 쓰지 않는 자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어떤 예보든 심각한 어조로 전달하지 않으면 무책임해 보인다.
- 183쪽, 〈일기예보|날씨와 마음의 상관관계〉

안과 밖의 생산적 긴장은 문과 덧문이 살짝 열리면서 양측의 공기가 순환할 때 발생한다(서로 더 잘 연결되기 위해 국가와 국가를 분리하는 국경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우리를 마비시키는 불안에 대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우아함으로 맞서야 한다.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역경과의 정면 대결이다. 폐쇄 혹은 개방의 독단주의 대신 다공성(多孔性)을, 절제와 용기 사이의 적절한 간격을 추구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창조적 충격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맛은 언제나 다양한 영역의 충돌 속에 있다.
- 240쪽, 〈에필로그|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출판사 서평

“진짜 삶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 무기력의 시대, 세계적 지성이 들려주는 모험과 발견의 철학

탈진과 과로, 그것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니체는 말했다. 혹시 당신도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분주하게 보내면서도 삶 전반은 권태롭다고 느끼진 않는가? 르노도상, 메디치상 수상에 빛나는 프랑스 대문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그것이 무기력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보다는 무기력이요, 질병의 위험보다는 죽음과도 같은 권태다.”
이 책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은 지금 시대의 무기력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읽어낸다. 바로 ‘고립’과 ‘진짜 경험의 부재’이다. 사생활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개인은 방 안에서 고립되고, 스마트폰과 콘텐츠에 매몰된 채 화면 안의 세상에서 멋진 일을 구경하기에 바쁘다. 한나 아렌트의 목소리를 빌리자면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무엇에도 중심을 두지 않는 사생활의 두터운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깥세상과 분리되어 자기 안에 갇혀버린 개인들은 진짜 삶을 경험하지 못한다. 진짜 삶을 살지 못하고 잠깐의 기분 전환만 반복하면서 에너지를 갉아 먹히고 무기력에 마비되어 버린다.
저자는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벌써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무기력과 권태를 떨쳐내기 위해서 ‘생의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집이든 방이든 밖으로 열려 있을 때만 폐의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더욱 확장되고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문과 창이 꽁꽁 닫혀 있으면 폐는 위축되고 탁해 빠진 실내 공기만 들이마시게 된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바람’이다. 바람은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가능성의 장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데, 일상의 관성에 잠식당한 현대인의 내면에 생각의 환기를 통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화면을 들여다보기만 해서는 진짜 삶을 살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진짜 모험을 통해서 삶을 발견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인간은 빛과 탐색의 존재입니다”
- 사생활, 잠, 슬리퍼, 에로스 등 생의 감각을 되찾아 줄 15가지 단서

훗날 현생 인류의 역사를 서술한다면, 직립 보행 대신 소파나 침대에 축 늘어진 채 눕듯이 앉아 있는 자세로 묘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의자 위에서 쇠약해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슬리퍼: 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삶이란〉 챕터에서 슬리퍼를 신고 가운을 입은 채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실내복과 외출복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우리가 원래 바깥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긴장감이 옅어졌다고 지적한다. “슬리퍼를 벗을 일이 없는 삶은 구두나 스니커즈를 신고 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삶만큼 흥미롭지는 않다”라면서 삶의 리듬을 회복하자고 저자가 주장하는 이유이다.
〈일기예보: 날씨와 마음의 상관관계〉에서는 날씨가 실제로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해 달라진 우리의 마음속 풍경을 관찰한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모든 풍경은 영혼은 상태다”라고 했는데, 매일의 일기예보가 흡사 경계경보처럼 되어버린 이 시대에 인간의 영혼도 궤도를 이탈해 요동치고 있다고 한다. 〈에로스: 관능이 몰락한 시대〉에서는 타인의 숨결이 공포가 되어 버린 현 상황을 탐구한다. 우리가 관능의 경이에 대한 지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섹스의 포기라는 새로운 현상은 타인에 대한 알레르기의 징후다. 진짜 비극은 어느 날 사랑하고 욕망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리비도의 반대는 금욕이 아니라 삶의 피로다.” 그 밖에도 빗장, 여행, 스마트폰, 실존, 루틴 등 총 15가지 단서를 통해서 생의 감각을 되찾으려 한다.


“당신의 세상은 문밖에 있습니다”
- 플라톤부터 에드워드 호퍼까지,
은둔과 개방성에 관한 철학적·역사적·예술적 고찰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모비 딕》으로 유명한 작가 허먼 멜빌이 쓴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 바틀비가 한 말이다. 바틀비는 현대 문학사에 길이길이 남은 이 희한한 부정의 긍정문으로, 시대의 대세에 역행하는 무기력의 깃발을 표표히 꽂았다. 19세기 월스트리트라는 분주한 질서를 거스르며 제자리에 멈춰서는 바틀비의 모습 위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사무실에 갇힌 현대인의 무기력한 초상을 겹쳐 보인다. 바틀비가 현대에 살아 돌아온다면 비슷비슷한 고층 빌딩 속 오픈 오피스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정도가 되려나.
소설가이면서 철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우리가 품고 있는 불안, 무기력, 권태 등을 현대의 특수한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 시대의 지성답게 철학, 역사, 예술 등 광범위한 사유의 보고(寶庫)에서 그가 꺼내오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논의를 한층 더 깊게 만든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원래 허상의 세계를 꼬집는 우화였지만, 오늘날에는 이 동굴에 현대적 장비들이 들어와 오히려 건강과 보호의 장소가 되었다며 그 의미를 역전한다. 도시의 풍경을 유예의 장소로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등장한다. 호퍼의 그림을 통해서는 서스펜스가 사라진 일상의 삶을 관조한다.
이마누엘 칸트, 루이 14세, 드니 디드로, 플랑드르파, 토마스 만 등 철학부터 예술까지 풍성한 지적 토대에 기반한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유의 격을 높인다. 인간 역사의 보편성과 시대적 특수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적 지성의 광활한 나래를 따라가며 당신의 삶에도 바람을 초대할 수 있기를.
리뷰 mi******** 이 책은 삶을 말한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닌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작가는 코로나 이후 나태함과 무기력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벌써 피곤한 삶은 때 이른 노년을 불러들여서 청년을 노인처럼 만듭니다. 명심하세요, 삶이 제공하는 최선을 온전히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매일 아침 우리를 침대에서 일으킨다는 걸요. 그저 숨만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산다는 것’은 가능성의 장을 끝까지 달려보는 일입니다”

“스마트폰은 집으로 세상을 가져다준다. 세상이 내게 오기 때문에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은 분주한 삶을 제공하면서도 그 삶을 실제로 경험할 필요는 제거한다.”

“운명이 결코 날아오르지 못하고 가장 낮을 길로 나아가는 이 방식을 ’일상‘이라고 부른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속도를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제자리에 있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야한다.”

“집에 나 혼자뿐이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면, 성스러운 장소가 감옥이 되는 건 시간 문제이다. 더 이상 ‘밖’이 없다면 ‘안’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세상의 거대한 빛, 불시의 아름다움이 끊임없는 왕래를 통하여 삶에 의미를 더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죽음은 존재를 삼켜버리지만, 잠이라는 작은 죽음은 존재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효율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이다.”

“진짜 비극은 사랑하고 욕망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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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나가지 않아도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 시대에서, 영상물로 시작해 영상물로 끝나는 하루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짜 인생을 살기 위해 밖을 나가 인생을 모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기까지 역사 속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자유를 얻어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지금. 점점 더 피로하고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 우리는 밖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점점 더 빠르고 편리해져만가는 세상에 맞춰 인간에게도 같은 속도를 기대하고 요구한다.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무지인 것처럼 여긴다. 나 역시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는 것이라 해왔지만 따라가기 벅찬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점점 더 숨어들어 집이란 공간에 벽을 세워 세상과 단절한 고립을 편안함과 행복이라 생각해왔었다.
저자는 걱정한다. 팬데믹 이후 집에서 나가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바뀌어가는 세상을, 그래서 칩거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을. 물론 고독은 반드시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고독이 고립이 되고 무기력과 우울을 낳을 것을 알기에.

삶은 모험하고 마주하고 이겨내면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때로는 나를 위한 고독과 조용한 곳으로의 도피가 필요할테지만
그 시간들이 나를 무기력으로 가져다 놓기 전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딛을 힘을 주는 책이다.
리뷰 jw***** 요즘 나는 가을의 기본자세는 수직이라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의 두 작가님들(김하나, 황선우)의 말씀에 따라 주말마다 열심히 돌아다니는 중이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서울숲에 다녀왔는데, 서울 사람 다 여기 왔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나무도 많고 새도 많고 호수에 물도 많고... 오랜만에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집순이답지 않게 열심히 나돌아다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책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이다. 이 책을 쓴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르도노상과 메디치상을 수상했고,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인정받는 공쿠르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인 프랑스 대표 석학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철학, 문학, 사회학적 지식과 통찰을 기반으로 우리가 왜 집에만 있지 말고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실내에 머무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야외로 나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철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쟁이 있어 왔다. 플라톤은 "가장 용감하고 대담한 자들만이 동굴의 환상에서 눈을 돌려 별이 빛나는 밤하늘, 태양, 천체들을 감히 쳐다본다."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역시 동굴 밖 하늘이야말로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선과 아름다움의 세계라고 했다. 반면 이마누엘 칸트는 "집은 허무, 어둠, 모호한 근원의 공포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벽이다."라고 했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실내 생활을 찬양한 작품으로는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을 꼽을 수 있다. 드 메스트르는 42일간의 가택 연금형을 받고 자신의 집에만 머무르며 집 안의 가구, 책, 옷 등에 관한 책을 썼다. 그의 책은 영웅의 정복이나 순례 이야기가 대부분이던 당시 흐름과 정반대였으나 큰 성공을 거뒀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도 자기 방에서 영감을 받아 <사형수 최후의 날>을 썼다.



사실 실내에 머무르든 야외로 나가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현대인들이 야외 활동보다 실내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팬데믹이 이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20세기가 성장과 확장을 숭배하고 과도한 경쟁이 팽배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정체와 축소를 추구하고 패배주의와 극단적 비관론이 넘쳐나는 시대다. 팬데믹은 역경에 맞서기를 꺼리고 모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핑계가 돼주었다.



야외 활동에 따른 비용이 증가하면서 "진짜 활동다운 활동은 특권층의 호사가 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부자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집에서 OTT로 철 지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유튜브 먹방을 보면서 가공식품을 먹는다. 서핑이나 스키 같은 운동을 실제로 하면 많은 돈이 들지만 실내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즐기면 돈도 절약되고 다칠 위험도 줄어든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현실에서의 사교 활동이 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현상도 언급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SNS에 자신의 실물보다 훨씬 잘 나온 사진을 올린다. 그런 사진에 익숙해질수록 실제 사람은 더욱 못생기고 불완전하고 흠 많은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내가 구독하는 SNS, 내가 속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를 닮은 타자들 밖에 없다. 그런 모임에 친숙해질수록 나와 다른 사상과 취향을 가진 사람을 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일부러라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도전과 모험이야말로 "삶이 제공하는 최선을 온전히 누리는" 행위이고 "우리의 두려움이 실상은 망상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짜로 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의 생장에도 바람이 필요하듯이 인간의 성장과 성숙에도 바람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메시지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