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8.27)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오늘 복음(마태16,13-20)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6,13)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16,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나?"(16,15)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참으로 베드로의 멋진 신앙고백이요 완전한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으로' 고백합니다. 죽은 하느님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 라고 고백합니다. 지금 나를 구해 주시고 살려주시는 '구세주'로 고백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님께 완전한 신앙고백을 드리자, 그에게 엄청난 은총이 쏟아집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되고,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가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다시 우리 각자에게 물으십니다. "루카야,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런 주님 물음에 우리도 시몬 베드로처럼 대답합시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죽은 하느님을 믿지 말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믿읍시다! 사람을 믿지 말고,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하느님을 믿고,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을 믿읍시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11,33) (~ 집회 17,1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8.28)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마태23,13.15) '회개는 행복!' 오늘 복음(마태23,13-22)은 지난 주 토요일 복음에 이어지는 '위선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는 그들의 위선, 곧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못 들어가게 하는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눈먼 인도자들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오늘은 회개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성 아우구스티노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녀 모니카 어머니의 맏아들인 아우구스티노는 젊은 시절을 방탕에 빠져 살았고, 극단적 영지주의(이원론)를 주창하는 마니교 이단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끊임없는 기도와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으로 회개의 길을 걸어가신 분입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개를 위해 무려 '십팔 년' 동안 기도했다고 합니다. 회개의 길로 들어선 성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회개를 기록한 참회의 자서전인 '고백록'을 썼고, 그는 이 고백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는 밖에서 님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과 성령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그리고 믿는 이들이 추구하는 행복 중에 가장 큰 행복은 '회개'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처럼 잘못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위선자들에 대한 책망을 보면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회개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됩시다! (~ 집회 20,13)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8.29)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르6,18) '진리를 증언하자!' 오늘 복음(마르6,17-29)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선구자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요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공정과 정의를 외치다가 순교했습니다. 헤로데가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를 차지한 불의를 보고, 그 불의를 외치다가 순교했습니다. 요즘 너도나도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의 앞에서 침묵하거나 아예 불의를 따라가기도 합니다. 진리가 아닌 가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공정과 정의인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이며, 그분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공정과 정의입니다. 그 안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공정과 정의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공동선의 실현이요, 하느님의 피조물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히 정치권에서 외치고 있는 공정과 정의와는 많이 다릅니다. 달라도 많이 달라 보입니다. 높은 사람과 넉넉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공정과 정의여서 더욱 그렇습니다. 방향이 위로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낮은 곳에 있고, 더 낮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공정과 정의를 따라갑시다! 하느님의 진리를 믿고 증언합시다! 거짓과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지 맙시다!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하지 맙시다! 오히려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갑시다! 예수님처럼.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예레1,17) (~ 집회 24,2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21주간 수요일>(8.30)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23,28) '두 모습!' 오늘 복음(마태23,27-32)은 지난 주 토요일부터 시작해서 세 번째로 전해지는 '위선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오늘은 겉모습과 속 모습이 다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겉은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찬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책망하시는 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우리 안에 그리고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성향(모습) 때문에 이런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주님, 부끄럽습니다. 이 부끄러움에 당신의 크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는 위선자들입니다.' 언행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위선자, 겉모습과 속 모습이 다른 위선자, 하느님의 뜻과 말씀에 어긋나는 삶을 사는 위선자들입니다. 이 위선으로부터 완전 자유롭다고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돌아감(회개)'이요 '하느님 자비에 의탁함'입니다. 어제 교구청에서 합천본당 신부님과 회장단과 사무장과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공소사목을 하다가 본당사목의 첫 발령지여서 그런지 마음이 새로웠습니다. 합천본당에는 공소가 세 개가 있으니 공소사목은 계속됩니다. 오늘 이삿짐 싸고, 모레(9.1 금) 10시 미사를 마치고 배둔을 떠납니다. 이곳에서 2년 7개월 동안 사목했습니다. 오늘 복음묵상을 하면서 더 특별히 이곳에서 드러낸 저의 위선을 성찰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도 자비로운 사제가 되겠다고 '루카복음 6장 36절'의 말씀을 사제서품 성구로 택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저의 위선의 죄에 대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위선을 드러낸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집회 30,1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21주간 목요일>(8.31)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4,42) '자기 본분에 충실하자!' 오늘 복음(마태24,42-51)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여기에 있는 또 다른 제자들인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자기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마태24,42.45) '누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인가?' 자기 본분을 잊지 않고 자기 본분의 충실한 종, 자기 신원을 망각하지 않고 자기 신원에 맞는 삶에 충실한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하느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막중한 사명이 믿는 이들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는 '이 사명의 한 부분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이 전체의 한 부분들'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전체가 아닙니다. 전체의 한 부분들입니다. 전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나라 건설'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와 이에 따른 갈등은 내가 전체가 아님에도 전체가 되려는 마음과 행동에서 시작된 문제요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당 공동체 안에서 사제는 전체가 아닙니다. 본당 공동체라는 전체의 한 부분입니다. 가정 공동체 안에서 남편 또는 부모는 전체가 아닙니다. 가정 공동체라는 전체의 한 부분입니다. 이런 본분과 신원 의식을 망각한 채, 전체가 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전체의 한 부분인 나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그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곰곰이 떠올려보면서, 이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슬기로운 종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집회 34,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9.1)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마태25,11) '등과 기름의 의미!' 오늘 복음(마태25,1-13)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해서 설명하십니다. 열 처녀 가운데 다섯은 등만 준비하고 기름은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였고, 나머지 다섯은 등과 함께 기름을 충분하게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였습니다. 그래서 한 밤 중에 신랑이 왔을 때, 슬기로운 처녀들만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주인님께 청합니다.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주인은 그들의 청을 거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5,13) 믿음의 문제입니다. 희망의 문제입니다. 사랑(실천)의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시듯,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고, 마지막 때에 영원히 사는 길이고, 이를 위해 늘 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배둔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복음묵상글을 준비합니다. 오늘 10시 미사 후에 곧바로 합천성당으로 떠납니다. 왔다가 떠나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듯이, 사제의 삶도 그렇습니다.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곳(공동체)을 향해 떠나갑니다. 합천본당에서의 새로운 삶, 보다 더 깨어있는 삶, 시노달리따스하는 삶, 영과 육이 더 건강해지는 삶을 살도록 다시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 주신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고, 저도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집회 35,1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9.2)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2,35) '엄마의 표징을 본받자!' 오늘 복음(루카2,27-35)은 '시메온의 노래'입니다. 예수님의 육화 사건, 곧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사건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찬미가가 세 개 있습니다. '즈카르야의 노래'와 '성모의 노래'와 오늘 복음인 '시메온의 노래'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시간경 기도인 성무일도 아침기도 때 바칩니다. 그리고 '성모의 노래'는 저녁기도 때, '시메온의 노래'는 끝기도 때 바칩니다.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봉헌되는 순간에 함께 한 시메온은 이렇게 기쁨의 찬미가를 부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2,29-32) 그러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루카2,34) '성모님의 표징!'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고 공경합니다. 그 결정적 이유는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이시고, 우리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엄마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어제 합천본당에 부임해 올 때 엄마와 함께 왔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에게 '신앙의 모범'으로써 표징이 되셨습니다. "Fiat Voluntas Tua"(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라는 순종을 시작으로 끝까지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모두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땀 흘리시고, 수난하시고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표징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표징이 됩시다! (~ 집회 37,6) 마산교구 합천본당주임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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