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6)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17,2) '숨겨져 있는 부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그곳이 바로 '타볼산'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저는 2008년도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두 번을 그곳에 오른 기억이 있습니다. 한 번은 걸어서, 한 번은 차를 이용해서. 그 타볼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이 변합니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17,5) 하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마태16,21-23)하신 다음에, 그리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16,24)는 말씀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변모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을까?' 이는 제자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부활, 곧 이제와 영원한 부활은 십자가 뒤에 숨겨져 있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 곧 신성을 지닌 분이시라는 선포입니다. '숨겨져 있는 부활!'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때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신 이유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17,9) 수많은 성인들은 숨겨져 있는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셨고, 그래서 십자가 죽음 뒤에 숨어 있는 부활에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잃지 말고, 숨겨져 있는 부활을 향해 나아갑시다! 화이팅~ (~ 시편43,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8주간 월요일>(8.7)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14,16) '예수님 안에 머물면!' 오늘 복음(마태14,13-21)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사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을 배불리신 기적사화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외딴곳으로 가십니다. 그 소문을 듣고 여러 고을에서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빵과 물고기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군중에게 나누어 주시니, 사람들은 모두 배분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면!'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 안에 머물면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은 늘 일어날 수 있고, 이와같은 기적을 우리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세계 인구가 80억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 중에서 8억 명 정도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배불리 먹는 사람들에 의해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이 꽤나 많다고 합니다. 좀 배부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 안에 머물게 되면, 굶주림에 허덕이는 많은 형제자매들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예수님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더 채우려고 하는 욕심과 탐욕을 내려놓고 나눔을 실천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4,4) (~ 시편49,2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8.8)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8) '나의 고통에 함께하시는 분!' 오늘 복음(마태14,22-36)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말씀과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신 다음, 제자들을 향해 가시는데, 물 위를 걸어서 가십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물 위'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걸으신 '물 위'는 바람이 불어 거센 파도가 이는 물 위였습니다. 거센 파도가 이는 물은 '우리의 고통'이라고 묵상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것은 '우리의 고통 속에 함께 계시고, 우리의 고통을 나누어 짊어지신다는 것'으로 묵상했습니다. 거센 바람을 보고서 두려운 마음을 가진 베드로, 그래서 물에 빠져들게 되었을 때,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고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14,31) 이따금씩 찾아는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누가 빨리 그 고통에서 일어서느냐의 차이와 누가 빨리 그 고통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연결시키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나의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하나되게 하는 것, 그래서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입니다. 영화로도 개봉된 '오두막'이라는 책에서 세 사람의 도움으로 딸 미시를 잃고 죽음의 고통에서 다시 살아난 맥이 세 사람 앞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당신들 중에 누가 하느님이죠?" 세 사람이 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나예요." (~ 시편55,2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8주간 수요일>(8.9)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마태15,28) '누가 이방인인가?' 예수님께서 이방인 여인인 가나안 여자와 대화하십니다. 먼저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청합니다. 이 간청으로 시작된 예수님과 이방인 여인과의 대화는 이렇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15,22)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15,24)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15,25)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15,26)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15,27)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15,28)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이방인 여인과의 대화가 끝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에 그 가나안 여자의 딸이 나았습니다. '누가 이방인인가?' 세례 받지 않은 사람들,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만이 이방인인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방인이지 않을까?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완전한 사랑에 이르지 못한 이방인, 그 완전한 사랑을 살아내지 못한 이방인이지 않을까? 우리의 믿음은 그 완전한 사랑으로 향해 있는 믿음이어야 하며, 그 믿음 안에 머무는 사람 만이 가나안 여자처럼 끊임없이 주님께 자비를 청할 수 있고, 그런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열려져 있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 이방인인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요즘 독서 안에서 만나는 모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모세의 또 다른 이름은 '중재자'요, '겸손'입니다. 투덜거리는 교만이 되지 말고, 믿음 안에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겸손이 됩시다! (~ 시편66,20)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15,28) --감탄하울 믿음 우리의 믿음은 그 완전한 사랑으로 향해 있는 믿음이어야 하며, 그 믿음 안에 머무는 사람 만이 가나안 여자처럼 끊임없이 주님께 자비를 청할 수 있고, 그런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열려져 있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 이방인인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고모님답---- 사랑하는아녜스조카께 ! 깨달음이 빨라요. 근면하고믿음이좋고.지혜롭고 자랑스러워요. 아멘! 아네스 답 --감사합니다 울 고모님 여름 캠프에 재미있는 성경이야기 한시간 할려구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12월 25일 세례식 할 예비자교리를 제가 직접 할 예정입니다 기도하며 잘 하고 싶어요 고모님격려는 참 큰 힘이 됩니다 영혼의 근육도 마음도 참으로 튼튼해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세요 ♡♡♡ 저의 마음 비워드리겠습니다.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8.10)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 '교회의 보물!' 오늘은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주신,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가운데 수석 부제였던 라우렌시오 부제(225-258년)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교회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재산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으로 데려가 "이들이 바로 교회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이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 속에 넣어 처형했는데, 성인께서 화형벌을 받으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제 잘 익었으니 뒤집어 주세요." '왜,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물일까?'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지 않을까?' 예수님께서 가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낮은 자리인 말구유간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그리고 최후의 심판 기사(마태25,31-46)에서 가난한 이들,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바로 당신 자신이고, '그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처럼, 우리도 교회의 보물인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풍 카눈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영호남 경계선을 따라 한반도 남과 북을 그대로 관통하는 유례없는 태풍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잘 대비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께 두 손 모아 기도드립시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화답송) (~ 시편73,28)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8.11)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16,24) '구원의 길!' 오늘 복음(마태16,24-28)은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디가나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나의 강한 에고(ego)'와 '내 안에 있는 내 것들, 곧 나의 육의 행실들(칠죄종)'이 가장 큰 문제이고, 이것이 '나와 너의 구원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그러니 먼저 '나의 것을 비우라.'(자기비하)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십자가는 '나의 약함'입니다. 구원의 가장 큰 장애물인 내 것들을 비워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나의 약함'입니다. 그리고 내 것들 때문에 찾아오는 아픔들과 예수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와의 충돌 때문에 겪게 되는 아픔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오늘은 스스로를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말할 정도로 성 프란치스코를 사랑했고, 그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간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동반자인 성녀 클라라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아씨시의 귀족 집안 출신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삶)인 '작음(minorum)과 십자가 수난의 사랑(fratrum)'을 단순하게 따라간 분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철저하게 가난과 겸손의 삶을 사셨고, 그런 수도회인 '클라라 수도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성녀 클라라와 성 프란치스코처럼 '단순하게, 충실하게 그리고 기쁘게'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갑시다!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16,27) (~ 시편78,72) <연중 제18주간 토요일>(8.12)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태17,19) '믿음의 힘!' 오늘 복음(마태17,14ㄴ-20)은 '예수님께서 어떤 아이에게서 마귀를 내쫓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는 자기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17,17) 하고 이르신 다음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고,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17,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마태17,20) '우리 안에 어떤 마귀들이 있을까?' '우리는 이 마귀들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을까?'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호의와 선의와 성실과 온유와 절제를 방해하는 마귀!', '용서와 화해를 방해하는 마귀!', '하느님의 정의를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귀!', 등등 '이런 마귀들이 우리 마음 안에 있지 않을까?' 이런 마귀들을 쫓아내려면, 믿음의 힘으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귀들에게 호통을 쳐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야! 내 안에서 썩 나가거라!" 오늘도 믿음의 힘으로 마귀와 힘껏 싸워봅시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6,4) (~ 시편90,1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미사의 은혜/연중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