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25)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22) '정말 용서할 수 없을까?'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이자, '남북통일 기원미사가 드려지는 날'입니다. '화해와 일치'는 '용서의 선물'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용서할 때 주어집니다. 오늘 복음(마태18,19ㄴ-22)은 '함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말씀과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고 용서하여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18,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18,22)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은 '용서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고, 용서가 나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용서한다는 것, 너와 화해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게다가 북한을 용서한다.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남북통일 기원미사를 드리는 우리들이지만, 철저하게 이념으로 갈라져 있고, 우리들조차도 용서와 화해를 뒤로 미루면서 갈라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용서와 화해'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제1독서(신명30,1-5)는 주님의 명령을 지키면 잘되고 번성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2독서(에페4,29-5,2)는 '서로 용서하여라.'라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입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4,32) '나와 너의 구원과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서로 용서합시다!' (~ 2역대 29,1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6) "남을 심판하지 마라."(마태7,1) '오늘 복음(마태7,1-5)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나도 심판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에게 그런 자격이 없다.'고 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7,3.5)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 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요한8,9) '그들은 왜 떠나갔을까?' 자신들이 지은 죄 때문이지요. 여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의 허물(죄)에 대해 심판하거나 판단할 자격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너를 심판하거나 판단하는 일은 존재 자체이신 하느님께만 유보되어 있는 일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주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합시다! 오늘 독서(창세12,1-9)는 아브람의 순종을 통해 '순종의 복'이 얼마나 큰 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12,1-2) 아브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삶의 터전인 하란 땅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섭니다. 우리도 단순하게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지금 여기에서부터 복을 많이 받도록 합시다! (~ 2역대 32,2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2주간 화요일>(6.27)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7,13) '생명으로 이끄는 문!' '오늘 복음(마태7,6.12-14)은 짧지만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곧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마라.'와 '황금률'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단락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문은 '이미와 아직의 나라인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나라이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죽음 저 너머에서 마주하게 될 나라입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인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그래서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고 하십니다. 반면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십니다. '나는 어느 문을 향해 가고 있는가?' '그리고 생명으로 이끄는 문인 좁은 문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7,12/황금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대로 사는 것. 그것의 본질인 복음대로 사는 것.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며, 화해하며 사는 것.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는 것.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삶으로 살아내는 데에는 큰 문제로 다가옵니다. 참으로 실천하기가 힘든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 힘듦이 좁은 문으로 다가옵니다.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24,13) 좁은 문은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이요 생명의 문입니다. 모든 이들은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제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잘 살고 계십니까? 정말로 잘 살고 계십니까? 잘 살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 봅시다! (~ 에즈 1,1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6.28)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마태7,15) '누가 거짓 예언자들인가?' '오늘 복음(마태7,15-20)은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7,15-16) '누가 참예언자들이고, 누가 거짓 예언자들인가?' 우리 모두는 예언자들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러한 소명이 주어졌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이유는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15,16 참조) '참 예언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거짓 예언자'는 그 반대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전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 멋대로 하느님의 뜻을 해석하면서 하느님을 갈라치기하는 이단자들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이 전하고 있는 것처럼 말만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참 예언자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오늘은 제가 19년 전인 2004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날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도어야 한다."(루카6,36/서품성구) 저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말만 하고 보다 더 삶으로 살아내지 못한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그리고 이 자비의 힘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에즈 4,2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축제로 오늘의 거룩한 기쁨을 허락하신 천주여, 당신 교회로 하여금 모든 일에 있어서 교회의 기초를 놓아 준 그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29)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고백하고 살자!' 오늘은 '교회의 큰 두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으뜸 사도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기초를 세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예루살렘 교회 밖으로 복음을 전한 분이십니다. 오늘 미사 감사송 기도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베드로 사도는 신앙고백의 모범이셨고, 바오로 사도는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마태16,13-19)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마태16,14)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완전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런 베드로도 결정적인 순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성령 체험 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셨습니다. 그리고 박해자였던 바오로 사도도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개한 후에는 복음 선포자로 대변신하여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십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4,7) 교회의 큰 기둥이신 두 사도의 열정을 본받아, 우리도 멋지게 신앙고백을 하고, 신앙고백의 내용을 삶으로 살아냅시다! 오늘 많은 영명 축일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 에즈 8,1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2주간 금요일>(6.30)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8,3) '나병은 어떤 병인가?' 오늘 복음(마태8,1-4)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나병은 '소외라는 병'입니다. 나병에 걸렸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은 가족들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멀찍이 떨어진 외딴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나병(한센병) 환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소외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가와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산청 성심원이라는 곳에서 사목하면서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위에는 '또 다른 나병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바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재물과 권력(힘)과 학연과 지연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금 여기에서 멀어져 있는 이들'입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이들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삼천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교회가 '시노달리따스'(Synodalitas)를 외쳤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하기!', '함께 나아가기!' 라는 시노달리따스는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교회가 그리고 교회 구성원인 우리가 나병 환자들과 또 다른 나병 환자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진정한 시노달리타스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6월의 마지막 날, 일 년의 절반이 지나가는 날입니다. 성찰 안에서 함께 노력해 봅시다! "주님, 세상을 떠나 당신 품으로 돌아간 박필수 실비야 자매를 받아주소서." (~ 느헤 3,3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2주간 토요일>(7.1)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8,10) '이방인의 믿음!' 오늘 복음(마태8,5-17)은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고, 베드로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크게 감탄하십니다. 백인대장은 말 그대로 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군대 지휘관입니다. 그는 로마의 장수로서 유다인들에게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 이방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그가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8,8)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이 믿음을 보시고 크게 감탄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8,11-12)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선택 받았다고 우쭐해 하고 있었던 유다인들에게는 큰 충격의 말씀입니다. 선택받은 자신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함 그 자체이신 하느님, 그 완덕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은 모두가 이방인이지 않을까요?' 아직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이방인! 너무나도 자주 주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나는 이방인! 아직도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이방인! 세례와 서약이 구원의 절대적 보증이 아닙니다. 세례와 서약의 약속을 삶으로 살아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 느헤 9,3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나---------------------------------------------------------------------------------------------------------------------------------------------------------------------------------------------------------------------------------------------------------------------------------------------------------------------------------------------"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나는 아기예수의 아네스에게 이런 믿음을 주었고 이 믿음을 보았다 ---이런 말씀을 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각만해도 웃음이 방실 빙실 ~~ 오늘은 방실방실로 시작하여 주님의 기쁨으로 끝내는 하루가 되면 차암 좋겠습니다, 고모님 화이팅 하는 힘찬 하루!!! 기도중에 만나 뵐게요 싸랑싸랑 합니다. |
미사의 은혜/연중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