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6.11)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5) '먹고 마시고 내어주자!' 오늘 복음(요한6,51-58)은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6,51) 그러자 육적인 것 안에만 갇혀 있었던 유다인들 사이에서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말다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6,54-55)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계시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 친히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매일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 많은 성당에서 어린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합니다. 교리공부를 잘 마치고, 드디어 첫 영성체를 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은 '이제와 영원히 우리를 살리는 참된 생명의 양식이며 음료'입니다. '이것을 참되게 믿고 있는가?' '정말로 그렇다고 믿고 있는가?' 이에 대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매일 사제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성체를 받아모시려고, 말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엘 나올 것입니다. 성당에 나와 이 참된 양식을 받아모실 것이고, 받아모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 1역대 4,23)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선우 모세 학생이 첫영성체를 하였어요 고해성사 성체성사를 1대1로 가르쳐 주며 참 좋은 몫을 주셔 감사한 마음으로 더사랑스럽게 더 거룩하게 더 순결하고 가난하고 더아름답게를 채워주시는 그리스도와 한몸이되는 성체성사의 기적이구나 임마누엘(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단다)을 온마음으로 (우리주님께 모세에게) 불렀답니다 차암 기뻐요 !!!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것마저도 행복해요 |
💚 김형석 교수님 의 기도문 💚 내 세월 다하는 날 슬픔 없이 가게 하여 주소서 초대 없이 온 이 세상 정주고 받으며 더불어 살다가 귀천(歸天)의 그 날은 모두 다 버리고 빈 손과 빈 마음으로 떠나기를 약속하고 왔나니 내 시간 멈추거든 그림자 사라지듯 그렇게 가게 하여 주소서 한 세상 한 세월 사랑하고 즐겁고 괴로웠던 생애였나니 이 세상 모든 인연들과 맺어 온 그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들이 허락 없이 떠나는 그 날의 외로움으로 슬프게 지워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다만 어제 밤 잠자리에 들 듯 그렇게 가고 보내는 이별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울러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슬픔과 외로움을 잊고 이 세상의 삶을 더욱 알고 깨달아 굳건히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하여 주소서 아름다운 이 세상 마지막 소망을 아름답게 이루고 아름답게 떠나가게 하여 주소서 ------ |
<연중 제10주간 월요일>(6.1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5,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오늘 복음(요한6,51-58)은 산상설교(山上說敎/마태5~7장)의 시작 말씀으로 '참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모든 움직임은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향해 있습니다. 인간의 보편행복은 '내가 바라는 것이 채워져서 만족해진 상태'입니다. 인간은 이 욕구 충족의 행복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 중에서도 '참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참행복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는 이들의 목적은 지금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는 저 세상에서 완성된 영원한 하느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으려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 안에 내 것이 비워진 사람들'입니다. 내 마음의 창고에 내 것을 채우기 보다 '하느님의 것을 채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고통과 시련, 모욕과 박해가 행복의 큰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너머에 참행복이 있다고 믿으면서 '고통과 시련과 모욕과 박해를 이겨내는 사람들'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5,12) 그렇습니다. 우리에 앞서 예언자들도 박해를 받았습니다. 우리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천상 예루살렘에서 참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오늘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안에 내가 있도록 합시다! "주님, 세상을 떠난 정양동(사도요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1역대 6,6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6.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3.14) '나도~' 오늘 복음(요한6,51-58)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소금은 부패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이 세상 안으로 파견되신 예수님은 소금이시고 빛이십니다. 소금과 빛의 모습으로 파견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오늘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거쳐 성 십자가 수도회에서 생활하다가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순교한 작은형제회 첫 순교자 다섯 명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작은형제회로 옮깁니다. 이후 이탈리아의 파도바로 파견되어, 그곳을 복음화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오늘 본기도에 드러나 있듯이, '뛰어난 설교자요 곤경 속의 전구자'이십니다. 안토니오의 탁월한 설교로 파도바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리스본이 아닌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입니다. 오늘 독서(2코린1,18-22)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1,19) '예!'는 '아멘!'입니다. '아멘!'은 '순종!'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안토니오는, 예수님처럼, 그리고 그의 사부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명령)에 늘 겸손하고 기쁘게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파도바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지금 여기에서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이 되어 봅시다! (~ 1역대 11,2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0주간 수요일>(6.14)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5,17) '완성하자!' 오늘 복음(마태5,17-19)은 '예수님과 율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성(人性) 안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율법 그 자체 안에 갇혀 있었고, 율법이라는 문자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율법의 파괴자'로 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코린3,6) 그렇습니다. 문자가 사람을 죽입니다. 문자 안에 갇혀있었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성령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율법이나 계명들과 같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지켰느냐? 지키지 않았느냐?' '기도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미사에 참례했느냐? 참례하지 않았느냐?' 문자에 갇혀 있었던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물음이었고, 그리고 '그 결과가 심판과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그러한 물음도 중요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것의 '본질'이 더 중요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삶으로 본질을 완성했느냐? 안했느냐?'가 더 중요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율법과 계명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1역대 18,17) 신부님 종신서원 수녀님 참석 으로 인해 5시 30분 미사 준비 6시30분 미사 ----좋았음 독서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6.15)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5,20) '능가해야 하는 의로움!' 오늘 복음(마태5,20ㄴ-26)은 '화해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로 '화해하여라.'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율법과 예언서들 안에 계시되어 있는 하느님의 뜻(계명)을 철저하게 지킨 사람들이 바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을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매일 바쳐야 할 기도(아침저녁기도.삼종기도.묵주기도.성무일도 등등)를 빠트리지 않고 잘 바친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거나 주일미사와 의무대축일 미사에 빠지지 않는다. 대단한 의로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대단한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모습으로 '화해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은 이 율법에 그친 의로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로움을 능가해,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라고 하거나, '멍청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얼른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능가해야 하는 의로움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인 성령께서 내 마음 안에 머무신다면 능히 해 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영께서 하시는 일이니까요.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3,17) (~ 1역대 22,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아멘!!!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3,17) |
6월15일 일분간의 매일묵상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마르10,45) 묵 상 :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유혹중의 하나가 공명심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해 정복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정신, 남에게 봉사하는 정신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나는 이렇게 봉사할 용의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처럼 남을 비추기 위해 촛불과 같이 타 들어갈 용의가 있습니까? 기 도 : 예수님, 나의 형제여, 저에게 사랑을 주소서.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인내하게 하소서.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6.16) -사제 성화의 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11,29) '예수 마음을 본받자!' 오늘은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을 기억하고, 그 마음을 본받기를 다짐하는 '예수성심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은 '성체성사와 십자가 사건'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제성화의 날입니다. 성화(聖化), 곧 사제들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것을 다짐하고, 그런 사제들이 많아지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제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와 존경 받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성체성사 거행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예수님의 명령 때문'입니다. 이 땅에 많은 사제들이 탄생되었습니다. 2023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한국 천주교회의 첫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1845.8.17 사제서품)을 시작으로 2023.2.3 사제서품자까지 총 6921명이 사제서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선종하신 사제(689명)와 환속한 사제(?)를 제외하더라도 엄청난 숫자입니다. '사제 마음은 예수 마음'입니다. 꼭 그래야 합니다. 신자들은 사제들이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신명7,7)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열두 제자들을 직접 사도로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많은 사제들도 그렇게 뽑혔습니다. 때문에 사제들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사제들에게서 부족한 모습을 보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마시고, 존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1역대 26,19) -----전례준비 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