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연중 제7주일> <연중 제7주일>(2.19)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예수가 좋다!' 오늘 복음(마태5,38-48)은 '폭력을 포기하여라.'는 말씀과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입니다. 믿는 이들의 여정은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영적행위(미사,기도,말씀필사, 등등)는 지금 여기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이 되려는 행위들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과 온전한 일치, 완전한 합일에 이른 상태가 바로 완덕이며, 그런 사람이 완전한 사람'입니다. '예수가 좋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좋아서 성당엘 다닙니다. 사람이 좋아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성당엘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닙니다.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성당엘 다닌다면, 그 공동체는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친목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래서 예수님 안에 머물게 되면,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따뜻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사랑.기쁨.평화.인내.호의.선의.성실.온유.절제) 안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하느님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체험을 하는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 바로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인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너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우쭐대는 교만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 안에 머뭅니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역설적인 사랑을 합니다. 곧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오늘이 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1사무 10,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7주간 월요일>(2.20)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9,25) '기도합시다!' 오늘 복음(마르9,14-29)은 '예수님께서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시는 말씀'입니다.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어릴 적부터 벙어리 영이 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십니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9,25) 제자들도 그 더러운 영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9,28)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9,29) 문제는 내가 문제입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더러운 영이 문제입니다. 내 안에 좋은 영, 깨끗한 영, 곧 성령이 자리잡고 있으면 문제될 것도 없고,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문제입니다. 깨어있지 못한 내가 문제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5,8) 베드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더러운 영은 매순간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습니다. 깨어있지 못한 나의 빈틈을. '기도합시다!' 끊임없는 기도, 깨어 있음의 기도, 살아있는 기도, 특히 십자가 사건을 통해 드러난 주님 사랑을 늘 기억하는 기도, 그 극진한 사랑 안에 머무는 그런 살아있는 기도를 합시다! 그런 기도가 행해질 때, 성령이 함께 합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더러운 영에 이끌리지 않고,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영을 내쫓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호시탐탐 나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더러운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기도합시다!' (~ 1사무 14,2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7주간 화요일>(2.21)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9,35) '첫째가 되는 길!' 오늘 복음(마르9,30-37)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와 '가장 큰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또 다시 예고하시는데, 부활의 절대적 전제인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자신들 안에서 누가 가장 큰사람인지, 곧 예수님의 수제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로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마르9,32) '제자들의 몰이해'와 '자리다툼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여주듯이, 신앙의 본질이요 핵심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머리로 알아듣고, 삶으로 살아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알면서도 예수님처럼 죽기는 싫고, 영광만 누리려는 모습은 아닌지? 그리고 예수님 제자들의 모습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모습은 아닌지? 예수님은 모든 이의 꼴찌가 되셨고, 모든 이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 결정적 표지가 바로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서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십자가 고상'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눈에는 그 십자가가 꼴찌의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뒤에 숨어 있는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으로써 첫째가 된 승리의 표지입니다. 누구나 첫째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중에서도 믿는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가 아니라, 죽음 저 너머의 세상에서 첫째가 되려는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첫째가 되려면, 확실하게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6,14) 낮춤(겸손)과 비움과 내려놓음의 모습인 '죽음으로' 이제와 영원히 첫째가 됩시다! (~ 1사무 19,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미사의 은혜/연중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