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삼위일체 교리를 삶의 자리에서 나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 서로 사랑한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좀 더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6.4)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7) 

'서로 사랑한다면...'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三位) 곧 세 위격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본성상 일치를 이루고 계시다는 진리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교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라는 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행위의 시작과 마침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가 부정되면 모든 것이 부정됩니다.

기도의 시작과 마침에서 '성호경'을 통해.
'미사의 시작인사'를 통해.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해.
믿어야 할 교리의 요약인 '신경'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께서 위격으로는 세 분의 하느님으로 존재하시지만, 본성상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다.' 라는 교리입니다.
'세 분이시만 한 분'이시라는 '참으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교리'입니다. 

교회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를 통해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합니다.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란 '구원의 역사 안에 드러난 삼위일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인간의 구원이라는 구원 역사 안에서'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본성 안에서의 일치', 곧 하느님의 본성이요 하느님의 또 다른 이름인 '사랑 안에서'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쉬우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교리가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더 어려운 것은 삼위일체 교리를 삶의 자리에서 나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16)

서로 사랑한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좀 더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2열왕22,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6.5)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마르12,10) 

'모퉁이 머릿돌이 되자!' 

오늘 복음(마르12,1-12)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당신에 앞서 파견된 수많은 예언자들의 박해와 죽음과 그리고 참예언자로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파견된 당신의 죽음을 언급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치고는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나갑다. 포도철이 되자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종을 보내어 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을 받아 오게 합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주인의 뜻을 거절합니다. 주인의 종들에게 매질하거나 죽여 버립니다.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아 있었는데,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르12,7-8) 

우리도 소작인들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 복음화'라는 주인이신 주님의 명을 받고 이 세상 안으로 보내어진 소작인들입니다. 

'나는 이 복음화 사명에 충실하고 있는 소작인인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도 복음에 드러난 소작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으로부터 파견의 명을 갖고 세상에 파견된 또 다른 예언자들을 괴롭히거나 죽이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곰곰이 우리 각자의 모습을 성찰해 보고 다시금 하느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화답송)

(~2열왕22,20)

'모퉁이 머릿돌이 되자!' 



<연중 제9주간 화요일>(6.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마르12,15) 

오늘 복음(마르12,13-17)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파견되신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유다인들로부터 내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저 예수가 자신들이 찾고 있었던 메시아인지?' 
'저 예수가 자신들 편에 서 있는 구원자인지?' 

계속된 그런 질문으로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람들이 바로 유다인들 중에서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같은 백성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계속 묻습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10,25)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22,35)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마태16,1)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험을 받으십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또 묻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12,14) 

참메시아이시며 참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명쾌한 정답으로 그들이 쳐놓은 올무와 시험에서 벗어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던 이들을 감탄하게 만드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12,17)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무(無)가 유(有)가 되게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고통을 통해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모든 시험들을 이겨냅시다! 

(~2열왕23,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9주간 수요일>(6.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12,27) 

'산 이들의 하느님!'

오늘 복음(마르12,18-27)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논쟁'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율법에 따라 일곱 형제가 한 여자와 혼인하여 모두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을 경우,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마르12,23)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잔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마르12,2425.27) 

믿어야 할 교리를 요약해 놓은 사도신경 끝부분에서 우리는 이렇게 신앙고백합니다.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용서를 통한 지금 여기에서의 부활과 죽음이후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산 이들의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늘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죽음의 상태에서 다시 부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독서(토빗3,1-11ㄱ.16-17ㄱ)는 참새 똥에 눈먼 토빗과 여종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죽으려고 마음 먹었던 라구엘의 딸 사라가 하느님께 드리는 간절한 탄원기도입니다. 

"바로 그때에 그 두 사람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 그래서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쳐 주도록 파견 되었다.(토빗3,16-17) 

이제와 영원히 죽지 않기 위해서 나도 간절한 탄원기도를 드립시다! 

(~2열왕23,20)

산 이들의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늘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죽음의 상태에서 다시 부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을 위해 아녜스도 간절한 탄원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빛을 비추소서 

<연중 제9주간 목요일>(6.8)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31c)

'기본과 상식에 충실하자!'

오늘 복음(마르12,28ㄱㄷ-34)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12,2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12,29-31)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호응하면서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12,34ㄱ)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기본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기본상식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분리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믿음(신앙)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거창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상식이 나를 통해 실현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
평화를 위해 애쓰는 것.
기쁜소식을 나누는 것.

이러한 것들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지니고 있어야 할 기본이며, 상식입니다. 

오늘 독서인 토빗기의 말씀에서 토비야가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이며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8,7)

오늘도 기본과 상식에 충실합시다!

(~2열왕23,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6.9)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마르12,35) 

'나에게 예수는?'

오늘 복음(마르12,35-37)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마르12,35.37)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 드러나 있듯이 로마의 식민지배에서 자신들을 구해 줄 강한 메시아의 도래를 희망하고 있었던 유다인들은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예수님의 인성(다윗의 자손)' 안에만 갇혀 있었고, '예수님의 신성(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단'은 '아리우스 이단'의 경우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태를 통해 이 세상에 오신 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영적인 구원자요 구세주이십니다.

'나는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가 나의 구세주인가?' 

우리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기에 자주 넘어집니다.
하지만 예수가 나의 구세주이시기에 넘어짐에서 다시 일어섭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에 반복이 우리의 삶이고, 그 중심에 메시아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십니다. 이것이 믿는 이들의 삶이요 신앙생활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 

구세주께서 항상 우리 곁에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큰 은총 중에 은총'입니다. 

이 은총의 힘으로 날마다 힘듦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이단자'는 나의 구세주가 옆에 계신데도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입니다.

(~2열왕23,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6.1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12,41) 

'마음을 다하여~'

오늘 복음(마르12,38-44)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로 향해 있는 나의 척도가, 드러나는 외적인 것들, 헌금함에 돈을 넣는 액수와 같은 것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가는 계명',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12,30)는 계명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되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12,32)는 계명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입니다.
5월 한 달은 부활의 절대적 전제인 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인도네시아를 다녀오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시작된 기침감기로 인해 열흘 넘게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코로나.독감.폐렴은 정상)
고성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피정집으로 피정(6.7~)을 오고 난 후 점차 좋아졌습니다.
어제 저녁에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침도 멎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못했던 성경필사도 제대로 하게 되었고, 어제는 40일 만에 가장 많이(ㅎㅎ) 필사했습니다. (2열왕23,20~25,11)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 덕분입니다.
요즘 독서인 토빗기에서 토빗과 사라를 살려낸 하느님의 천사인 라파엘 천사와 같은 분들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니 5월1일부터 어제까지 약 40일 동안 하느님께서 제게 많은 천사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천사들도 보내주셨고,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천사들도 보내주셨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 큰 하느님 체험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겠죠 ㅎㅎ

그래서 하느님이시며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메시아요 구세주이십니다. 아멘♥

(~ 2열왕25,1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6.1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12,41) 

'마음을 다하여~'

오늘 복음(마르12,38-44)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로 향해 있는 나의 척도가, 드러나는 외적인 것들, 헌금함에 돈을 넣는 액수와 같은 것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가는 계명',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12,30)는 계명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되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12,32)는 계명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입니다.
5월 한 달은 부활의 절대적 전제인 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인도네시아를 다녀오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시작된 기침감기로 인해 열흘 넘게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코로나.독감.폐렴은 정상)
고성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피정집으로 피정(6.7~)을 오고 난 후 점차 좋아졌습니다.
어제 저녁에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침도 멎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못했던 성경필사도 제대로 하게 되었고, 어제는 40일 만에 가장 많이(ㅎㅎ) 필사했습니다. (2열왕23,20~25,11)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 덕분입니다.
요즘 독서인 토빗기에서 토빗과 사라를 살려낸 하느님의 천사인 라파엘 천사와 같은 분들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니 5월1일부터 어제까지 약 40일 동안 하느님께서 제게 많은 천사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천사들도 보내주셨고,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천사들도 보내주셨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 큰 하느님 체험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겠죠 ㅎㅎ

그래서 하느님이시며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메시아요 구세주이십니다. 아멘♥

(~ 2열왕25,1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