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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 3주간 (설) --일치주간


 <설>(1.22) -일치 주간-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12,3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날에 들려오는 복음(루카12,35-40)은 '깨어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12,35-36)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12,40)

오늘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과 부모와 가족 친지들을 기억하면서, 살아 있는 가족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는 '설명절'입니다.

'설명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 주고 있는가?'

그것은 오늘 복음이 전하는 '깨어 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기억의 인간'이면서 또한 '망각의 인간'이기도 합니다. 잘 기억하기도 하지만, 잘 잊고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천년만년 살 것만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님을 확인시켜 줍니다.

"여러분은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4,14)

돌아가신 영혼들을 기억하는 설명절에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과 믿는 이들의 궁극적 희망을 다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믿는 이들의 궁극적 희망(복)은 영원한 안식,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궁극적 희망은 그저 "아멘, 아멘!" 한다고만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산 이들, 항상 지금 깨어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니 믿음 안에서 보면 지금 여기와 저기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6,2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민수 7,5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믿는 이들의 궁극적 희망(복)은 영원한 안식,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궁극적 희망은 그저 "아멘, 아멘!" 한다고만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산 이들, 항상 지금 깨어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니 믿음 안에서 보면 지금 여기와 저기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6,2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깨어 있기.'인데 자주 부족함이느껴져요 기대고 청하고 응답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할때도 늘 일치하며  깨어있기!!!

 <연중 제3주간 월요일>(1.23) -일치 주간-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3,29)

'성령을 모독하는 자?'

오늘 복음(마르3,22-30)은 '예수님과 마귀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말합니다.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3,22)

그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귀의 우두머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그런 악담을 퍼붓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떤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3,28-29)

'성령을 모독하는 자?'

그들은 바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구원 행위를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새 계약의 중개자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단 한번 당신 자신을 바치시려고 이 세상에 첫 번째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땀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은 지금도 사제들과 너를 통해서 이 구원 행위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구원 행위를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만약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 학자들처럼, 그 구원 행위에 못 마땅해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라면, 우리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크고 작은 기적들이 우리 안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너와 세상을 바라보면 기적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시편 저자처럼 이렇게 기뻐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화답송)

(~민수 10,3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1.24)
-일치 주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5)

'하느님의 형제 자매들이 되자!'

오늘 복음(마르3,31-35)은 '예수님의 참가족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만나고 싶어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 소식을 알려드리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3,34-35)
'예수님의 참가족'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이들은 '모든 것의 첫째 자리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10,7)

효성스러운 자녀는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는 사람,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효성스러운 자녀이십니다. 우리 죄에 대한 희생 제물이요 속죄 제물이 되시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고, 이 뜻을 이루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으로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효성스런 자녀들인, 하느님 아버지의 형제 자매들이 됩시다!

우리가 실행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그 뜻은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처럼, '서로를 위해 내가 먼저 죽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민수 14,4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1.25)
-일치 주간 마지막 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오늘은 '이방인의 사도인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에서 출발한 바오로는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철저한 그리스도교 박해자였습니다. 그랬던 박해자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됩니다. 박해자 사울에서 사도 바오로가 됩니다.
박해자 사울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주님의 일꾼인 하나니아스의 도움을 받아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사도22,14-16)

이렇게 해서 박해자에서 복음 선포자, 그것도 '이방인 지역의 복음 선포자'로 대변신합니다.

오늘 복음(마르16,15-18)은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복음 선포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도 부여된 사명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복음 선포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 선포자가 되려면, 바오로 사도처럼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그러니 복음 선포와 세상 복음화가 어려운 이유는, 너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세상과 너에게 그 이유가 있지 않고, 나 자신 안에 있습니다. 내가 회개하지 않았거나, 내가 복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수 16,1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복음 선포자가 되려면, 바오로 사도처럼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그러니 복음 선포와 세상 복음화가 어려운 이유는, 너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세상과 너에게 그 이유가 있지 않고, 나 자신 안에 있습니다. 내가 회개하지 않았거나, 내가 복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아주 특별한 서간이 하나 있는데 바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히브리서는 말 마디 그대로 히브리인들, 즉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이자 가르침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한 논쟁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어 왔는데,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오늘날 성경학계에서는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더 이상 바오로 사도를 히브리서의 저자로 단언하지 않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어휘나 문체가 놀랄 정도로 세련되고 수준이 높아, 비교적 거칠고 투박한 바오로 사도의 표현과 맥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과는 달리 히브리서에는 바오로 사도가 저자라는 언급은 물론 암시조차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방법이나 신학적인 내용에서 바오로 사도의 서간과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헬레니즘 문화의 배경을 지닌 유다계 그리스도인으로 추정합니다.
 
히브리서는 신약 성경들 가운에 가장 완숙한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구약성경의 전통 안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탁월하게 풀어냅니다. 메시지 역시 심오하면서도 다양합니다.4
 
 히브리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 후,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답변을 이어갑니다.
 
 베드로, 바오로 사도가 활발히 복음을 선포하던 시절 수많은 유다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잘 나가던 시절 그의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회개한 유다인만 3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해서 개종 작업이 완료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분위기였는데, 지상천국이 조만간 도래할 듯한 예감이었는데...
  
화려한 기적과 치유는 잠시뿐 이제 고통스럽고 지루한 광야 여정이 남아있었습니다. 이에 상심이 컸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둘 과거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누군가’가 이 히브리 서간을 쓴 것입니다. 히브리 서간을 읽다보면 때로 지나치게 강한 경고 말씀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고 말씀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진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어 감동적입니다.
 
 히브리서는 신앙의 위기를 맞이한 이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이를 통해 지금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를 잘 극복하도록 돕습니다.
 
 결국 히브리서는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사제이자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희생 제물로서, 완전한 제사를 하느님께 바친 분임을 강조합니다.
 
 더불어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무엇보다도 강한 믿음과 불굴의 인내를 간직할 것을 당부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히브리서 10장 37~39절)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성 티모테오를 사도적 덕성으로 빛내 주신 우리주님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현세에서 올바로 열심히 살다가 마침내 천상 고향에 이르게 하소서                                                     티모테아수녀님 축일 축하축하드립니다!!!!!  티모테오 성인의 전구로로 천상에 씨앗을 심는 천상농부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희 진교성당에는 오늘 부터 예비자 교리 시작한답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인데 고모님 영명축일인 오늘 시작하니 더 기쁘답니다 예수님의 일꾼들로 채워지면 참 좋겠습니다.  고모님 참 기쁘고 감사하답니다 울 고모님 하트 쁑븅 !!!

감사해요.
사랑스런
나의조카  
아녜스 !
보내준 선물
수녀님들이많이감사인사보냅니다.맛있게먹었어요.고맙습니다.

 <연중 제3주간 금요일>(1.27)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마르4,26)

'하느님 나라의 신비!'

오늘 복음(마르4,26-34)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것, 미약해 보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큰 결과를 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천국)'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포하신 나라로써,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들어가기를 바라시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내 뜻과 인간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하게 드러났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나라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죽음 저 너머의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영원한)에 들어가는 것이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희망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이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구약성경 모세 오경을 필사하면서 깊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과 사건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의 뜻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가 구원을 받는다." 라고 말씀하셨고, 오늘 독서(히브10,32-39)도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10,36)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과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끝까지 인내합시다! 네 아멘 !!!
(~민수 26,2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1.28)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4,40)

'믿음에서 오는 기적!'

오늘 복음(마르4,35-42)은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제자들과 함께 호수를 건너가십니다. 이때 거센 돌풍이 일어 매우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이 돌풍을 꾸짖으며 잠재우십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신 이 기적 사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첫째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께서 지니신 힘과 능력'입니다. 풍랑을 잠재우신 기적을 보고,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4,41) 하며,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이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큰 신적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런 큰 신적 능력을 지니신 분께로 향해 있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곧 '이 믿음으로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풍랑들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히브11,1-2.8-19)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11,1) 라고 말하면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지니고 있었던 믿음,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던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11,8)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11,11)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11,17)

우리도 이 믿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크고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 봅시다!

(~민수 28,3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感謝가 준 奇蹟 !♡

미국 시카코에서 태어난 '워너 솔맨' (Warner Sallman: 1892–1968)은 미국이 자랑하는 화가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는 "Head of Christ" 라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https://images.app.goo.gl/wFXpb6AgSoRbEukT7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그의 그림책은 1940년도에 500만부 이상이 인쇄되었고,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으로 솔맨은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있었는데 1917년 솔맨이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당신은 임파선 결핵입니다.” 
라고 진단하고 
“당신은 길어야 석 달 살 것입니다.” 
라고 통지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솔맨의 마음은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가수였던 그의 아내는 그때 
임신 중이었으므로, 
솔맨은 아내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그가 몹시 괴로워하며 매일처럼 절망에 빠져 신음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여보! 3개월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맙니까?  
천금 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봅시다.  

3개월이나 되는 기간을 살게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솔맨은 아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더 이상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지 않고, 아내의 말대로 남은 3개월 동안 오직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아주 작은 일부터 감사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애에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Head Of Christ"를 감사하면서 그렸는데 감사하는 그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3개월이 지났는데도 몸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해져서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해 보았더니, 임파선 결핵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그의 주치 의사인 '존 헨리'는 너무나 놀라며 
“도대체 3개월동안 무슨 약을 먹었기에 이렇게 깨끗히 나았느냐?” 고 물었습니다.

'솔맨'은 다른 약은 먹은 것이 없고 굳이 약이라고 한다면 아내가 주는 감사하는 약을 먹었다고 하니까, 주치의사는 박수를 치면서 “바로 그것이 명약입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요,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 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놀라운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받은 글 옮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노래 한 곡 🎶

- 안드레아 보첼리,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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