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8.28)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4,11) 겸손의 덕!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힘든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초대 받은 이들의 자세와 초대하는 이의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혼인잔치에 초대받거든 윗자리에 앉지말고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초대하는 이는 부유한 이들을 초대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도 다른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 윗자리에 앉고 싶은데,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리,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부유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고 싶은데, 가진 것이 없는 그래서 되받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고 살고 싶은데, 예수님께서는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너를 위해 죽으라고 하십니다. 연중 제22주일인 오늘은 모니카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에 힘입어 새롭게 다시 태어나신 성 아우구스티노를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인의 첫째 미덕은 겸손이고, 둘째 미덕도 겸손이고, 셋째 미덕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겸손의 덕이 모든 덕의 으뜸이라는 것이고, 아무리 나를 통해 모든 덕이 드러났어도 그 위에 겸손의 덕을 입지 않으면 헛것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겸손의 덕은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을 간직한 사람의 모습을 보면 너무 아름답고 천사와 같습니다. 먼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위에 겸손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더 들어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3,18) 이병우 루카 신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인의 첫째 미덕은 겸손이고, 둘째 미덕도 겸손이고, 셋째 미덕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겸손의 덕은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먼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위에 겸손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더 들어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3,18) |
티모테아 고모님 ----네가묵상하여 올린말씀 좋아서 버리지 말고 나중에 모아 책자를 만들면 신자들에게 영성적으로 많은도움이되리라 믿어요. ****네 고모님 !!! 제블로그 신앙의 신비여!!! 에 차곡차곡 모은답니다 명심명심할께요 다른분들 묵상집 형태도 주의 깊게 보고 하겠습니다 느무 감사드려요 저의 멘토 티모테아 수녀님!!! 깊이새겨 삶에 녹아들어가면 차암 좋겠습니다 등과 기름'은 '믿음과 삶', '세례와 세례의 합당한 삶', '성체와 성체의 합당한 삶'을 의미합니다. 곧 '행동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던 아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기 위해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눈물의 기도를 바치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엄마의 성소'입니다. 우리도 엄마 모니카 성녀를 본받아 '각자의 성소'에 충실합시다!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8.29)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빕니다."(마르6,25) '예수님을 닮은 위대한 예언자!' 예수님에 앞서 세상에 파견된 선구자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습니다. 그의 탄생과 삶과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처럼 그의 탄생(6.24)과 죽음(8.29)을 함께 기억하면서 기념합니다. 오늘은 '위대한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마르6,17-29)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 곧 순교 소식을 전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불의에 용감하게 항거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담대히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증언했습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소중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오늘 독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부르신 주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말씀입니다. "너는 허리를 동여 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예레1,17)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인 '예언직 소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레미야 예언자나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처럼 세상에 진리와 정의를 말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진리와 정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거짓 앞에서 주저하는 우리들은 아닌지?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세상가치를 위해서 침묵하거나 아예 불의와 거짓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리와 정의를 위해 끝까지 불의에 항거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세례자 요한을 특별히 기억하면서, 지금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거룩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복된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성자의 탄생과 죽음을 미리 알려 주셨으니,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를 본받아, 저희도 끝까지 하느님의 진리를 믿고 증언하게 하소서."(본기도) 이병우 루카 신부 |
예수님에 앞서 세상에 파견된 선구자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습니다. 그의 탄생과 삶과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처럼 그의 탄생(6.24)과 죽음(8.29)을 함께 기억하면서 기념합니다 |
<연중 제22주간 화요일>(8.30)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루카4,35) '성령과 악령과의 싸움!' 오늘 복음(루카4,31-37)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에 오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쁜 영, 더러운 영, 악령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 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끊임없는 싸움의 여정', 내 안에서 '하느님의 영인 성령과 더러운 영인 악령이 맞서 싸우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1코린2,12)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영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에 이끌리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깨어있지 않으면 더러운 영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5,8) 악마는 너와 싸우게 합니다. 너를 험담하게 합니다. 매사에 불평불만을 드러내게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영인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하고 사랑하게 합니다. 우리가 성령과 악령의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면, '사랑.기쁨.평화.인내.호의.선의.성실.온유.절제'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루카4,36)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힘,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이름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더러운 영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위한 구마기도'를 먼저 바치도록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이 더러운 영아, 악마야! 내 몸에서 썩 나가거라!" 이병우 루카 신부 |
기자들이 무슨 계제에 물었다고 한다. "추기경님은 여러 나라 말을 다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느 말을 가장 잘하십니까?" 추기경은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말? 내가 가장 잘하는 말은 거짓말이지." |
<연중 제22주간 수요일>(8.31)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루카4,40) '예수님 감사!' 오늘 복음(루카4,38-44)은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아픈 사람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리고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시고, 아픈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보니 예수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너를 예수님께 데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 마음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미사에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끝이고 전부이며, 나와 너 그리고 우리와 공동체가 사는 길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자!'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1코린3,3)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9월이 시작되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앙과 사랑을 목숨을 바쳐 지켜내시고, 또 우리에게 물려주신 수많은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순교자 성월'이 시작됩니다. 내가 그리고 너와 우리와 공동체가 기뻐하고 부활하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육적인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 교만과 자존심, 탐욕과 욕심과 방탕한 행위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부활할 수 있고, 너와 우리 그리고 공동체가 부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적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죽고, 나의 육적인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에 앞선 신앙의 선조들이 흘리신 땀과 수많은 순교자들이 흘리신 피를 깊이 생각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쉽게 해 낼 수 있습니다. 이 '해냄의 기적'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냅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 9월의 기도 💕🌿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 길을 거닐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 꿈을 쓰고 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 떠나지 말게 하시고 이 가을에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 詩 💕🌿 <연중 제22주간 목요일>(9.1)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5,11) '생태적 회개를 하자!' 오늘 복음(루카5,1-11)은 '고기잡이 기적과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생태적 회개를 호소하는 회칙인 '찬미받으소서.(Laudate Si)'를 반포하시면서, 매년 9월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창조물들을 기억하고, 창조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창조질서보전에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는 '생태적 회개의 날'입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3,21.23)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생태계의 주보성인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것인 모든 피조물들을 형제자매로 불렀습니다. 이러한 '성 프란치스코의 우주적 형제애'가 피조물의 찬가인 '태양의 찬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가 아파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픔과 죽음은 자연재해 형태 등으로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회개'입니다.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고, 욕심과 탐욕에서 시작되는 개인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를 끊어내는 '생태적 회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함께 공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찬미받으소서' 회칙과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우리에게 외치는 근본 메시지입니다. 우리 모두 안에 자리잡고 있는 '죽음의 문화'를 버리고 '생명과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나섭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22주간 금요일>(9.2)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루카5,34) '회개의 단식!' 오늘 복음(루카5,33-39)은 '단식 논쟁과 새것과 헌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다른 사람들은 다 단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만 하는지?'에 대해서 따져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혼인잔치를 예로 들면서 당신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곧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기쁨의 시간, 잔치의 시간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단식할 수 없고, 하지만 신랑을 빼앗기는 날, 곧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날에는 당신의 제자들도 단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식은 슬플 때나 또는 새로운 변화요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하는 '회개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 때 종종 단식합니다. 이 끊어내는 '힘듦을 통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이 '동참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새롭게 다시 탄생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1코린4,1-2)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성실함'입니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 지 모를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인 '죽음'과 최후의 심판의 때인 '주님의 다시오심'을 성실하게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성실함이 바로 '회개의 단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5,38) 오늘도 '성실하게' '회개의 단식'을 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2022.(9.3)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6,2) '율법 위에 있는 사랑!'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다. 안식일에는 39가지 노동을 금지했는데, 그 가운데에 하나가 추수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은 행위는 추수행위에 해당되니, 이는 율법 규정을 어긴 것이고, 그러니 율법 안에서만 보면 바리사이 몇 사람의 지적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적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 곧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준 일을 그들에게 언급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6,5)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르코 복음이 전하는 것처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마르2,27)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율법 위에 사랑이 있고,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것이 곧 '진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하느님의 행위를 할 때에는 항상 이 진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이 진리에 맞는 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입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선언한 최초의 교황입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면서, '규정이나 법 위에 있는 본질'을 늘 먼저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하느님의 종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
미사의 은혜/연중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