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8.21)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13,24) '좁은 문!' 오늘 복음(루카13,22-30)은 '구원과 멸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13,24)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좁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먼저 '살을 빼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ㅎㅎㅎ '좁은 문의 의미는?' '좁은 문'이 '회개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는 말씀이 '항상 지금 회개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말씀으로, '항상 지금 잘 믿고 희망하고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회개를 자꾸만 뒤로 미루거나, 지금 여기에서 대충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다가는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마지막 때에 아주 큰 곤란을 겪게 된다.'는 말씀으로... 그렇게 살다가 마지막 때에, "주님, 주님! 저 이루카 사제입니다. 살려주십시오." 라고 소리쳐 봤자, '소용없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루카13,27) 오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히브12,5-6.11)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 예수를 우리의 구원을 위해 훈육하시고 채찍질 하셨으니, 나도, 우리도, 우리 공동체도 그렇게 하시지 않으실까요??? 이병우 루카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22)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마태23,13.15) 오늘은 성모 마리아에게 여왕의 영예가 주어진 것을 기념하는 '복된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입니다.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를 바칠 때마다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신 것'(영광의 신비 5단)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마태23,13-22)은 지난 토요일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분노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인도자들인 그들의 위선에 대해 분노하십니다. 그들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가고 있는 신앙생활의 길,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은 아주 쉽고 단순합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추구했던 '단순성과 지혜'는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제자인 첼라노는 그런 사부의 모습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늘 예수께 사로 잡혀 있었다. 마음에 예수를 품고 있었고, 입에도 예수, 귀에도 예수, 눈에도 예수, 손에도 예수, 나머지 지체들도 늘 예수를 모시고 다녔다."(1첼라115) 예수님의 분노가 우리에게 던지는 큰 메시지는 성 프란치스코가 간직하고 있었던 이 '단순성과 지혜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라고 묵상되었습니다. 이 단순성과 지혜는 주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여왕이신 성모님께서 끝까지 간직하셨던 단순성과 지혜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의 시간과 주님의 시간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른 나의 교만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장례미사가 첫째가 되는 길이 결코 아닙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이 단순성과 지혜는 주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여왕이신 성모님께서 끝까지 간직하셨던 단순성과 지혜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의 시간과 주님의 시간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른 나의 교만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생각과 말로만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위선은 행위로 하느님을 믿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선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예수님이 되지 않은 것, 예수님의 모습을 닮지 않은 것입니다. ****고모님 혹시 우리집안이 최방제 프란치스코 신학생이나 최양업 토마스신부님의 후손이 아닌가요? 후손집안이라면 차암 자랑스러울것 같아요 ㅎ *****그분들이경주최씨인지 우리집안에는천주교신자가없었어요.우리대에와서 6.25 전쟁이후 3째오빠가 이북신의주출신큰엄마와결혼하면서신자가되면서시작되었어요.경주최씨라면후손일수도있지요. ****아 우리큰엄마 께서 오셔서 신자집안이되었군요 참으로 크신 주님의 멋진 도구로서 헌신하셨군요 감사합니다 .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경주최씨 네요 ㅎㅎ 그렇지않더라도 최방제 프란치스코 신학생이나 최양업 토마스신부님 느므느무 자랑스럽습니다 |
<연중 제21주간 화요일>(8.23)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 질 것이다."(마태23,26) '보다 더(radical) 회개하는 자!' 오늘도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위선, 나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겉은 깨끗해 보이지만, 속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는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위선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위선은 겉은 깨끗해 보이지만, 속이 깨끗하지 못한 모습니다. 위선은 말로는 "아멘!"이라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아멘!"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선은 생각과 말로만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위선은 행위로 하느님을 믿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선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예수님이 되지 않은 것, 예수님의 모습을 닮지 않은 것입니다.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마태23,33) '예수님의 분노와 아픔'은' 우리의 위선'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우리의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오는 아들을 가장 기쁘게 맞아주셨고, 회개하는 아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15,21)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15,22-24) 오늘도 예수님을 화나시게 하지 말고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의 위선을 내려놓고 '보다 더(radical) 회개하는 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25(목)부터 성전재건축을 위한 기존 건물을 해체하는 철거작업이 시작됩니다. 주님 뜻 안에서 시작되고 마쳐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8.24)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1,47)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이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필립보 사도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동일시되는 인물입니다. 먼저 오늘 뜻깊은 영명축일을 맞이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나타나엘은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이렇게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드립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1,49) 엇그제 월요일 성당 정리 작업을 마치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오후에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이제 씻고 좀 쉬자!" 그런데 잠시 후 한 사제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고백성사보러 오겠다고. 그리고 고백성사 후 저녁을 사겠다고. 정말 쉬고 싶었는데. 하지만 고백성사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얼른 오라고 했습니다. 고백성사를 본 사제가 기뻐하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깨끗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깨끗한 영혼은 죄가 없어진 모습이고, 이는 곧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을 극찬하신 '거짓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는 또한 '마음이 깨끗한 영혼, 마음 안에 성령이 충만한 모습, 성령의 열매들로 가득한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본질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아~ 이런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 이런 나타나엘(바르톨로메오)은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도,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께 간절히 청하면서, 날마다 깨끗한 영혼이 되려고 함께 노력합시다! "주님,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신 김옥순(아가다) 어머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이병우 루카 신부 |
"주님,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신 최준묵 (토마스) 김종희(아가다) 아버지 어머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
<연중 제21주간 목요일>(8.25)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 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4,42) '무엇 때문에 성당엘 다니는가?'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 성당엘 다닌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완전 정답은 아닙니다. 어떤 평화인가? 어떤 평화를 얻기 위해서인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 세상이 주는 평화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분명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어떤 평화를 얻기 위해서 성당엘 다니고 있는가? 세상이 주는 평화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인가? 그것이 알고 싶으면 고통과 불편함 앞에서 보여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고통과 불편함 앞에서 넘어지면,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고통과 불편함 앞에서 나의 믿음이 흔들리거나 심지어는 성당엘 나오지 않는다면 세상이 주는 평화를 얻기 위해 성당엘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보여주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고통과 불편함 그 너머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고통과 불편함을 견뎌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부활이라는 참평화를 선물로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당엘 다니는 이유이며 근본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1코린1,9)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24,44)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통과 불편함 그 너머에 있는 참평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성실하게 달려가는 하느님의 자녀들, 깨어 준비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종!"(마태24,46) 이병우 루카 신부 |
🌹노화는 발부터 시작된다! ©️ 늙어도 발은 튼튼해야 합니다. ©️ 우리는 나이가 들면 흰머리, 처진 피부, 주름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만 중요한 것은 발입니다. ©️ 장수의 징후 중 US Magazine "Prevention"에서 요약한 것처럼 강한 다리 근육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로 나열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 2주만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다리 근력이 10년 감소합니다. ©️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남녀노소 모두 2주 동안 비활동을 하는 동안 다리 근력이 20~30년 노화에 해당하는 3분의 1로 약해질 수 있습니다. ©️ 다리 근육이 약해지면 나중에 재활운동과 트레이닝을 해도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 따라서 걷기, 자전거 타기와 같은 규칙적인 운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 모든 체중/부하가 고정되어 발에 얹혀 있습니다. ©️ 발은 인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일종의 기둥입니다. ©️ 흥미롭게도 사람의 뼈는 50%, 근육은 50%가 두 다리에 있습니다. ©️ 인체에서 가장 크고 강한 관절과 뼈도 발에 있습니다. ©️ "인체에 가장 중요한 하중을 전달하는 "철삼각형"은 강한 뼈, 강한 근육 및 유연한 관절을 구성합니다." ©️ 인간 활동의 70%, 사람의 일생에서 에너지 소모는 두 다리의 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 이거 알고 계셨나요? 젊었을 때 허벅지에는 작은 차를 들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다! ©️ 다리는 신체 추진력의 중심입니다. ©️ 두 발에는 인체의 신경이 50%, 혈관이 50%, 혈액이 50%를 지나고 있습니다. ©️ 몸을 이어주는 거대한 순환망입니다. ©️ 오직 발이 건강해야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므로 다리 근육이 강한 사람은 반드시 심장이 강해집니다. ©️ *노화는 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와 달리 뇌에서 발로 지시를 전달하는 정확도와 속도가 떨어집니다. ©️ 또한, 소위 칼슘 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만간 손실되어 노인을 골절에 더 취약하게 만듭니다. ©️ 노인의 골절은 일련의 다른 합병증, 특히 뇌 혈전증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쉽게 유발할 수 있습니다. ©️ 노인 환자의 15%가 대퇴골 골절로 1년 이내에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 다리를 단련하세요. 60세가 되어도 늦지 않았습니다. ©️ 우리의 발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늙어가지만, 발을 단련하는 것은 평생의 과제입니다. ©️ 다리를 강화해야만 더 이상의 노화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 매일 30~40분 이상 걸어야 발이 충분히 운동되고 다리 근육이 건강해집니다. *나이가 많은 친구 및 가족과 공유하세요*. *걷기를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8.26)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마태25,1) '열 처녀의 비유!' 예수님께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열 처녀 가운데에서 다섯은 '어리석은 처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등만 준비하고 있다가 한밤중에 오신 신랑을 맞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다섯은 등과 함께 기름도 준비하고 있다가 신랑을 맞이한 '슬기로운 처녀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5,13)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들어 '늘 깨어 준비하고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어제 이른 아침에 그리고 늦은 밤에 큰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들은 소식은 기적같이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소식이었고, 늦은 밤에 들은 소식은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그래서 주님의 기적이 필요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찰나(刹那)인생'이라는 생각을 더 해 보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일이 내게 일어날지 모르는 '찰나인생!', 나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재림)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찰나인생!'. 오늘 복음은 이런 찰나인생 앞에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 그렇게 준비된 사람만이 살 수 있고, 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열 처녀'는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등과 기름'은 '믿음과 삶', '세례와 세례의 합당한 삶', '성체와 성체의 합당한 삶'을 의미합니다. 곧 '행동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등과 기름'이 함께 있어야 불을 밝힐 수 있고, 어둠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등과 기름의 의미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만 잠시 지나가는 지금 여기에서도 살고, 죽음 저 너머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녀 모니카 기념일>(8.27)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마태25,21) '탈렌트의 비유!'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탈렌트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납니다. 오랜 뒤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합니다. 다섯 탈레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받은 것을 잘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고 주인께 말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을 두고 크게 칭찬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23)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숨겨두었다가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그러자 주인이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하면서 그를 호되게 야단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1코린1,26) 하느님의 부르심과 나의 응답,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탈렌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첫 마음(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잘 응답하고 있는지?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공동선과 공동이익을 위해 잘 활용하고 있는지? 하느님의 부르심과 탈렌트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과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들이 함께 잘사는 공동선과 공동이익을 위해 존재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이신 '성녀 모니카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던 아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기 위해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눈물의 기도를 바치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엄마의 성소'입니다. 우리도 엄마 모니카 성녀를 본받아 '각자의 성소'에 충실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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