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일 Why do you notice the splinter in your brother’s eye?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십니까? - 칸탈라메사 추기경 - 1독서: 집회 27:4-7 2독서: 1 코린 15:54-58 복음: 루카 6:39-4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십니까?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가장 고귀한 능력 중에 하나인 시각(시선)과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전자(시각/시선)에 대해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눈은 몸의 등불이요, 영혼의 조명이다(마태 6:22).’ 가장 강렬한 감정, 가장 격렬한 열망, 가장 깊은 기쁨과 실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눈을 통해 전달됩니다. 수세기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미소, 눈물, 두려움, 경이, 신뢰와 같이 눈으로 대화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에는 약 65억 명의 사람들이 있으며, 130억 개의 눈이 서로 바라보고, 질문하고, 참고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의 진정한 역할을 다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마음 깊이 성숙한 자만이 자신의 눈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압니다. 이런 맥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범이 되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세심한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그분의 눈을 통하여 마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그분을 둘러싼 세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물을 바라보심으로써 생명을 줍니다. 하찮은 짚으로 만든 의자조차도 아름답고 독특하게 만드시는 위대한 화가와도 같으십니다. 복음서에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시선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마태오를 바라보시고 그리고 마태오는 세관에서 일어나 그분을 따르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베드로를 바라보시고 그리고 베드로는 쓰리게 울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눈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눈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눈의 뒤에 있는 사람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눈의 뒤도 보실 수가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병은 영적인 실명일 것입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둘 다 구덩이게 빠지지 않겠느냐?’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눈먼 인도자’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눈먼 인도자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이성과 더 나쁘게는 인간의 영리함에 의한 인도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
<연중 제8주일>(2.27)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루카6,42) 위선자! 오늘 복음(루카6,39-45)은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평지설교'로써,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과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말씀입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눈먼 이', 곧 '위선자'는 율법의 세부규정은 강조하면서도 율법 안에 담긴 참뜻(본질)을 저버린 '바리사이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본질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저버리고, 오직 율법의 형식만 중요하게 여긴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나의 이런 위선을 씻어 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내가 먼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내 마음의 밭을 잘 살피고 가꾸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6,43.45)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집회27,4) 내 마음 안에서 '무엇이' 흘러넘치고 있는가? 내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너를 살리는 '선한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아니면, 너를 죽이는 '악한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상스러운 말, 험한 말을 하거나, 너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띠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6,42) |
제목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2.28)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코10,17)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은 어떤 사람이 달려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물었던 것처럼,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화두'입니다.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희망이며 목적'입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그가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계명들, 곧 이웃 사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가 "그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다."고 말하자, 그에게 부족한 결정적 한 가지를 지적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믿는 이들의 영원한 화두인 영원한 생명은 '지금 여기와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실재'라는 '역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인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애쓰면서 살아 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았던 사람, 그러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원했던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셨던 하느님의 나라, 당신의 전부를 바쳐가면서까지 이룩하시려고 하셨던 하느님의 나라는 '서로의 나눔을 통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너의 허물에만 집착하면서 너와 나를 갈라놓았던 양극화의 나라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나아가는 통합의 나라'입니다. 바로 이런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8주간 화요일>(3.1)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10,29.30) 왜, 믿는가? 어제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와 부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를 힘들어 하는 부자는 결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복음(마르10,28-31)은 어제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가진 것을 나누기 힘들어하는 부자와는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 믿고 있으며, 왜, 보이지 하느님을 믿습니까?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 믿음과 사랑이 지향하는 나의 구체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다시 묻는다면, 지금 나는 믿는 사람의 모습인가? 정말 현세의 복과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향해 있는 곳으로 나의 마음이 향해 있다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아멘!"이라고 자신 있게 외치고 있는가? 오늘은 3월의 첫째 날인 '삼일절'입니다. 민족의 독립, 곧 우리나라의 기쁨과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믿는 이들이 지향하고 있는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기쁨과 자유와 해방이 주어지는 나라입니다. 지금 가진 것이 많고, 충분한 기쁨과 자유와 해방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나에게 예수님의 가치는 필요 없다고 외치면서 살아가는 나 자신은 아닌지? 모든 예언자들이 계시하고(드러내고) 있었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믿는 이들의 전부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고, 오늘 부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 봄 햇살 만큼 따뜻한 말 )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사랑을 나눌 줄 알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이며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진실이라고 합니다 진실한 말 한마디로 믿음과 행복을 줄수 있으니까요 삶이란 어쩌면 행복과 불행 그리고 기쁨과 슬픔 행운과 고난의 연속 드라마인 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삶이 되시길 |
<재의 수요일>(3.2)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6,1) '나의 부활을 위해!' 오늘은 거룩한 사순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금식과 금육을 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미사 중에 참회를 상징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통해, 나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회개할 것을 다짐합니다. '사순시기'는, '믿는 이들의 본질 안에 더 깊이 머무는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본질을 기억하고 이 본질에 동참하면서 '예수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믿는 이들이 해야 하는 의로운 일들인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집중하면서 이에 대한 결실을 '나누는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해야 할 것에 충실하지 못한 나의 허물에 대해 용서와 자비를 청하면서 '자비로우신 주님께로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2,12-13)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5,20;6,2)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6,3-4) 하느님의 선물로 내게 주어진 이번 사순시기가, '내게 다시 올 수 없는 은혜로운 때요, 구원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 미사에 꼭 참석합시다! |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3.3)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잘 따라가고 있는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완전한 드러남(계시)이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루카9,22-25)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이들의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버림과 십자가'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구체적인 삶으로 닮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매일 미사에 참석하고, 내가 끊임없이 기도하고, 내가 매일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너를 위해 내 것을 버리고,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는 말씀, 곧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십자가)는 말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미신을 믿지 않고, 무당이나 무속에 빠지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속에 빠져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도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진영과 이념 논리에 빠져 남들의 말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일꾼으로 선택할 지, 이 중요한 선택의 시간 앞에서, 성모님처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예수님의 일을 더 잘한 사람!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의 일을 더 잘할 사람! 나와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땀 흘릴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30,15.19)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3.4)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태9,14) '단식의 참의미?'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은 단식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을 끊는 단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있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9,15) '단식의 참의미?'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인 오늘 독서(이사58,1-9)가 '단식의 참의미'를 잘 전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이사58,1)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이사58,4)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58,6-7)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이사58,8) '단식의 참의미와 그에 따른 복'에 대해 더 이상의 어떠한 해석이 필요치 않은 말씀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실천해 봅시다! "주님, 오늘 기일을 맞이한 이정숙 사비나를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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