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lden Rule: Christ’s Disciples’ Behavior In A Nutshell 황금률: 그리스도 사도들의 행동
- 칸탈라메사 추기경 - 1독서: 1 사무 26:2.7-9.12-13.22-23 2독서: 1 코린 15:45-49 복음: 루카 6:27-38 이번 주일 복음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삶을 규정하는 도덕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소위 말해 ‘황금률’, 즉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구약에서는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토빗 4:15)’라는 부정적인 형태로 황금률을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고 하셔서 긍정적인 형태로 제안하셨습니다. 사실 이는 훨씬 까다로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와 함께 복음에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악에 대적하지 말고, 폭력적인 자들을 자유롭게 해 주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어떻게 이런 예수님의 명령에 따르면서도, 오만과 범죄에 맞서 싸우며 이를 정열적으로 알리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작은 범죄들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하여 다방면에서 일어나는 ‘무관용’은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복음의 말씀은 법적 집행의 필요성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다른 쪽 뺨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신고하기 위하여 바로 경찰서로 가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황금률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강도나 협박을 당했을 때 또는 차사고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목격자가 당신의 편에 서 준다면 분명 너무나 감사할 것입니다. 복음 말씀은 바로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모릅니다’라는 일반적인 말 뒤에 숨지 않고 말입니다. 범죄는 두려움과 침묵 안에서 더 창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 주일 복음의 가장 무서운 말을 떠올려 봅시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이는 면죄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파란 신호등(그린 라이트)를 의미합니까? 그렇다면 업으로 남을 판단해야하는 치안 판사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복음 말씀은 언뜻 듣기에 매우 순진하고 비현실적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판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독을 제거하라는 것, 즉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흔히 섞이게 되는 분개, 거부, 복수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 명령은 일반적으로 첫 번째 말씀을 설명하는데 사용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무자비한’ 심판, 즉 상소할 기회도 없이 죄인을 죄와 함께 단죄하는 것은 금합니다. 오늘날 문명 세계의 양심은 거의 만장일치로 사형 제도에 반합니다. 사회적 복수와 죄인의 전멸을 통하여 자기 방어와 범죄를 줄이는 것은 다른 종류의 형별을 통해서도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범죄에 대한 형별로 사형을 당해야 하는 사람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사이 그들이 회개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연중 제7주일>(2.20)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오늘 복음(루카6,27-38)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여기에서의 하느님의 나라 건설과 나의 구원을 위해 실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때문에 어떠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남을 판단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주어라."(루카6,27-28.37.38)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것을 어떻게 지금 여기에서 그대로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나 중심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 물질주의라는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에게 이것이 정말로 가능하기나 할까요? 오늘 복음은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행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만 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조건없이 너를 품어 안아주는 하느님의 자비가 되어야만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너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의 나무가 되어야만 합니다. 지나가는 코로나 19 앞에서 벌벌떠는 우리입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보편적인 죽음 앞에서 벌벌떠는 우리입니다. 이것을 이겨내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너와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됩시다! |
<연중 제7주간 월요일>(2.21)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9,24) 오늘 복음(마르9,14-29)은 예수님께서 간질병 소년을 고치신 '치유 기적사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더러운 영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마르9,25) 그러자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있었던 벙어리, 귀머거리 소년이 치유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치유 기적사화가 아닌지요? 우리 주위에는 이런 환자들이 많습니다. 말을 할 수 있는 입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옳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진실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 안에 더러운 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아닌, 악마의 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오는 지혜가 아닌, 현세적 지혜를 추구하고 이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야고3,13-18 참조) 더러운 영과 현세적 지혜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과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 건설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철저히 숨기면서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하고, 진실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과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기득권 세력들과 철저히 맞서 싸우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9,23.29) 우리 모두 제대로 믿고, 함께 기도합시다! |
지금 바로 사랑합니다 하고 전합니다. 더 아름다워졌을거예요 ♡♡♡ 보고 시포용 시노드 함께하는 여정에 평화로운 은혜로 가득하시면 차암 좋겠습니다.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2.22)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8.19) 오늘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열두 사도 중에서 '으뜸 사도'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 뽑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하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뽑으시어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십니다. 그를 '제1대 교황'으로 삼으시고, 그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기십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6,19) 베드로 사도에게 주어진 이 큰 권한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16,15)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라고 대답한 시몬 베드로의 큰 신앙 고백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때문에 보편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교황은, 그 누구보다도 베드로 사도의 이 큰 신앙 고백을 간직해야 하고, 그 신앙 고백을 지금 여기에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1대 베드로 교황'에 이어져 오는 '현재 교황'은, '제266대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이십니다.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맞이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육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를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많은 성직자들이 또한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원로들에게',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떼의 모범이 되십시오."(1베드5,2-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2.23)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9,40) '위대한 봉헌!' 오늘은 '요한 사도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초대 그리스도교회 때 터키 스미나르의 주교였던 폴리카르포 성인은 이단들과의 격렬한 투쟁으로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데 앞장서신 분입니다. 그러다가 이단에 빠져있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체포되어 156년경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으로 순교하신 분입니다. 순교하실 때 나이가 80대 중반이었다고 합니다. 성인께서는 화형당하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찬미의 기도를 드립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이시여,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는 이날과 이 시간에 제가 순교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잔을 함께 나누고, 성령을 통하여 불사불멸 안에서 육신과 영혼의 새 생명에로 다시 일어나도록 마련하셨나이다. 오늘 당신의 순교자들과 함께 살지고 마음에 드는 제물로서 저를 받아 주소서."(성무일도 제2독서 중에서) 폴리카르포 성인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그 수난에 기쁘게 동참합니다. 당신의 순교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희생 제물'로 봉헌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이 봉헌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봅니다. 오늘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생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4,14) 폴리카르포 성인의 위대한 봉헌과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험난한 이 세상에서 늘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 뜻에 순종하는 '땀의 순교자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을 지지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7주간 목요일>(2.24) "네 손이 너를 죄짖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마르9,43) 오늘 복음(마르9,42-48)은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실행한다면, 이 세상에는 온통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손이나 발이 죄짖게 하면 그것을 잘라 버리고, 눈이 죄짖게 하면 그것을 빼 던져 버리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한 몸으로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장애를 가지고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우리를 멸망에 빠트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죄의 유혹이 늘 우리를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5,8-9) 예수님께서는 내가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지만, 또한 내가 너를 죄짖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짖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9,42) 오늘 복음이, 내가 먼저 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그래야 너와 내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지금 완전하게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항상 죄의 굴레 속에 머물러 있다고 말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죄인들의 생명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돌아가기만 하면 나를 받아 안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하느님의 자비로 돌아가 다시 태어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7주간 금요일>(2.25)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10,9) '성사인 혼인!' 오늘 복음(마르10,1-12)은 '혼인과 이혼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10,7-9) 이 말씀 안에 담겨 있는 '혼인의 의미와 신성함'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혼인'은 모난 돌이 거센 파도와 흐르는 물결 속에서 서로의 부딪김을 통해 둥근 몽돌이 되어가듯이,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서로 다른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인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신(맺어주신) 성사'입니다. 때문에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되는 성사'입니다. 혼인성사 때, 혼인의 두 당사자는 하느님과 가족 친지 앞에서 이렇게 서약합니다. "나는 당신을 내 아내(남편)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 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기쁘게 서약한 이 약속을 늘 기억하고, 이 약속을 잘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야고5,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7주간 토요일>(2.26)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10,14)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 오늘 복음(마르10,13-16)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10,14-15) '어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일까?' '어린이'에 대해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단순하다'였습니다. '꾸밈과 거짓이 없는 단순성!'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더 그러합니다. '꾸밈과 거짓이 없는 단순성을 간직한 사람들'이 바로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오늘 독서(야고5,13-20)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5,16) 단순하게 기도하는 사람! 꾸밈과 거짓 없는 마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마음 안에서 하느님과 대화하는 사람! 서로가 자신의 죄를 먼저 고백하면서, 서로가 너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이 이제와 영원히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이것저것 따지지만 말고, 너의 허물만 바라보면서 너를 판단하거나 단죄하지만 말고, 단순하게 믿고, 믿는 것을 단순하게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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