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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2021년 연중 제16주일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2021년 연중 제16주일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Come away by yourselves to a deserted place and rest a while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 칸탈라메사 추기경 -

 

오늘 복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항상 그렇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다룰수 없기 때문에 그 중에서 눈의 띄는 주제와 단어를 선택하게 됩니다. 오늘 그것은 이라는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과 그들의 업무에서 벗어나 외딴 곳에서 당신과 함께 지내자고 초대하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그분 본인이 하신 것처럼 하도록 가르치십니다. , 행동과 명상의 균형을 이루면서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벗어나 그들 자신과 그리고 하느님과 비밀스럽고도 다시 힘을 샘솟게 하는 대화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주제는 매우 중요하고 맥락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저를 따라 오다 보면, 이번에는 느림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속도는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속도를 이미 초과하였습니다. ‘천천히 서두르세요라는 로마인들의 속담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부사 천천히는 사라지고, 다음과 같은 동사만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빨리 오세요, 달리세요, 서두르세요. 달리기는 종종 광란으로 바뀌고 병적이 되었습니다. ‘멈추는 자는 길을 잃게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절대 멈추지 않는 자도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소용돌이치듯 빠르게 소비되어지는 말과 이미지, 정보와 감정을 쫒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차분히 확인하거나 지식과 사랑 속에서 그것들을 대하며 환영할 기회조차 놓치고 맙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대신 사물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멈추지 않는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되는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이 나온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자신도 모르게 컨베이어 벨트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지금 제가 말하는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한 장면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일상 속에서 흘러가는 문제들과 경험들(종종 혼란스럽고 어수선한)을 지배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벗어남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삶은 더 이상 여정이 아니고 그저 장소의 이동이 되어 버립니다. 삶이 매일 매일 선사하는 것들로부터 오는 기쁨을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는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지나치는 경관들은 전혀 즐기지 못한 채 그저 최대한 빨리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산다면 여러분은 그동안 살아온 것들은 깨닫지도 못한 채 어느 순간 삶의 막다른 지점에 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두르는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이는 그분을 찾고 있는데 그분은 기도 속에 파묻힌 채 찾아지길 원치 않으십니다. 또 어떨 때는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와 같이 그분은 제자들에도 자신과 함께 휴식의 시간을 보내자고 권하십니다.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그분께서는 자주 서두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몸에도 느림은 얼마나 유익합니까!

 

만약 이 느림이라는 것이 복음적인 가르침을 함축하고 있다면, 우리는 일정한 날을 정해놓고 잠시 멈추고 머뭇거릴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일요일, 공휴일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숨 쉴 수조차 없는 삶에서 벗어나 사물,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자신과 하느님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과 우리에게 많은 중요한 할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잊어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시간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허비된 시간이라는 것은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는 나 자신의 바깥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결코 던져볼 수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조차 그리고 정확히 말해서는 하느님 앞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멈추어라 (이것은 라틴어 vacate의 어원적 의미로서 휴가를 가져라!라는 뜻임) 그리고 하느님이 계심을 기억하라.’ 하느님께서는 시편에서 말씀하십니다. 휴식과 묵상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M. Proust의 말에 따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는 것과 같습니다.

 

고독과 경청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성은 누구보다도 그들의 형제 자매들에게 선포해야 하는 복음 안에 존재하는 우리 삶의 원천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기독교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특히 일깨워져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사제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재충전하기 위하여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될 때, 버림받고 무시되었다고 느끼지 말고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전문가, 정치인, 노동자, 아버지와 어머니, 젋은이 모두 때때로 자신의 업무에서 벗어나 그 의미와 동기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복음의 나머지 구절도 이 고독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한 번 같이 읽어봅시다.

 

사도들과 보낸 예수님의 휴가는 매우 짧았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호수를 건너면서 어쩌면 잠시 멈추어서 물고기를 잡는 게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화를 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아보였기에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봤을 때에는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었던 휴식조차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저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기기 위하여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노인을 혼자 방치하거나 병원에 맡겨 버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비를 구걸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의 어려움은 단지 몇 주간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몇 달, 아니 몇 년, 어쩌면 남은 인생 전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오늘 들은 복음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다음을 제안합니다. 무엇이든 우리의 마음과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주위에 우리의 방문, 전화 통화, 만남에 초대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또한 다음을 제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한 번도 다음과 같은 경험이 없다면, 산에 있는 교회나 조배실을 방문해 봅시다. 낮 시간에 정말 아무도 없을 때에 찾아가서 외딴 곳에서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혼자로 잠시 시간을 보내봅시다. 하느님께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해도 상관없습니다. 위대한 시인 폴 클로텔이 프랑스의 대사로 일본에 갔을 때, 한여름의 대낮에 한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동정 마리아에게 드린 기도를 들어봅시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낮입니다. 열려있는 교회를 보았습니다.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시여, 저는 기도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드릴 것도 부탁할 것도 없습니다.

오 어머니. 당신을 뵈러 그저 왔습니다.

아무 것도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뵈러 그저 왔습니다.

상황에 따라 제 마음이 노래를 하든 울든 그저 내버려 두십시오.


 <연중 제16주간 월요일>(7.19)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마태12,38)

'믿음으로 오는 기적'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태12,39)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가 믿어야 할 핵심이며, 우리에게 드러난 확실한 표징입니다.

'표징'은  '기적'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바라셨습니다.

그 기적이 바로 믿음으로부터 오는 '나의 회개'입니다.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의 아홉 개의 열매인 사랑의 사람으로', ***'기쁨.평화.인내.호의.선의.성실.온유.절제의 사람***으로 바뀌는 기적'입니다.
( 먼저) 하느님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굳게 믿고, 내가 변하는 기적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청합시다!

이 기적의 힘으로 지금 우리의 힘듦인, 무더위와 코로나도 함께 이겨냅시다!





 <연중 제16주간 화요일>(7.20)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예수님의 참가족!'
 예수님께서 그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49)

'세례성사'로 새롭게 다시 태어난 하느님의 자녀

세례성사는 끝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하는 '입문 성사'입니다.

***나의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과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이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버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예수님도 당신 뜻대로 사시지 않고,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십자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
지금 여기에서 내가 실행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내가 너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낮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땀 흘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가족'이고, 이런 '영적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과 삶'이 분리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이 뜻을 실행하려고 애쓰는 하느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어머니요 형제요 누이들이 됩시다!###
♡ 아멘 ♡  ^__^*

고모님 시원한 수박냄새랑 쥬스 맛있어요

오늘 미사중 성찬전례시  나타나실때  순전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큰 은혜 받을께요 감사드려요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7.21)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3,9)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여 든 군중에게,
씨가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지 않고,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비유 끝에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숨은 소리'***를 들으라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이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강론이나 강의를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단순하게 잘 들으려면, 그리고 하느님 말씀 안에 숨겨져 있는 숨은 소리를 잘 들으려면, 그것을 잘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다양하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잘 듣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자'가 됩시다! 

들음 ㅡ천국귀
아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7.22)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20,15)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고, 이후 예수님의 활동과 십자가 죽음의 순간까지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뵙는 영광을 누렸고, 제자들에게 예수님 부활을 알린 첫 소식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일곱 마귀에 걸려 있었을 때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늘 독서가 전하는 여인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아가3,4)오늘 독서인 '아가서'는 밤새토록 성읍과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사랑하는 이를 찾은 신부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그렇게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찾아 돌아다녔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큰 은혜를 입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받은 은혜에 보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라시는 삶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여인아,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꾸준히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꾸준히 애타게 주님을 찾읍시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 나의 삶이 변하는 기적을 만들어 내고, 끝까지 주님을 사랑합시다!


 <연중 제16주간 금요일>(7.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마태13,23)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사람, 이 말씀을 구체적인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

'말씀이 뿌려지는 내 마음의 밭은 어떤 밭인가?'

말씀을 아예 깨닫지 못하는 '길 밭'인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걸려 넘어지는 '돌 밭'인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이끌려 사는 '가시덤불 밭'인지?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인지?

한번 각자의 모습을 곰곰이 성찰해 보고
 ♡♡♡'내려놓음', '비움'♡♡♡♡ 을 준비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뿌려질 내 마음의 밭이 이런저런 것들로 꽉 차 있으면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하느님의 말씀이라도, 또 누군가가 그것을 전해준다 하더라도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잘 들은 사람은 말씀 안에 곰곰이 머물면서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깨달은 바를 삶의 자리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독서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 주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 주시는 '십계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십계명'이나 '매일 ♡선포되어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그리고 참기쁨과 참행복을 주기 위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기 위해
오늘도 깨어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연중 제16주간 토요일>(7.24)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13,30)
"길가로 돌밭으로 가시덤불로 가끔씩 좋은 땅으로 우왕좌왕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 입니다."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밀이 자라는 밭에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밀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의 모습'을,
가라지는 '악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우리 안에서 밀만 자라면 좋겠는데,
원수가 뿌려놓은 가라지도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왜, 그러셨을까?


밀과 가라지의 모습을 넘나드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여정이 끊임없는 가라지와의 싸움을 통해 밀의 모습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회개의 여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독서(창세24,3-8)를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주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힘주어  "yes!" 라고 대답했지만, 그들의 삶은 'yes와 no'를 넘나드는 삶이었습니다. 때로는 선의 모습인 하느님의 모습을 하고, 때로는 악마의 모습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밀과 함께 가라지도 자라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면서, 우리의 모습이 하느님의 모습인 '밀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도 악과 싸워 승리하는 자 됩시다! 아멘 

 참 덥지요 
시원한 폭포가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드는데요 
고모님 힘내셔요 싸랑합니다

 화요일이 김종희 아가다 엄마 제사여요 
고모님 기도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

[sr.티모테아] [오후 8:28] 회요일 기도합니다.우리수녀원에는그래도지금까지매일미사가있었는데 4단계가되면서 일주일동안 성체도못모시고평화방송미사를아침6시에보고있어요.
엄마4주기 또는3주기시간이너무빨리가니잘모르겠네요.미사드릴때는  미사예물넣고. 부모님양친이름본명쓰고하는데본당마다 다르니모르겠네요.엄마가 아가다?작년과도 달라요.기억력이떨어쳐요.오빠들은잘지내나요?장진오빠아들은 요?집안모두를위해기도해야해요.저도기억해주셔요.
내일도주님의날인데공소예절이람니다.good night !

 

 네 고모님 !!!
제 마음의 롤 모델 이십니다.

엄마는 2주기랍니다 
우리성당에 
엄마아빠  미사 봉헌합니다.

여기는 미사 평일 미사 가능합니다.
네 고모님 집안 모두 위해 기도할께요 

장숙 말가리다와 효선 조카 마리아도 미사봉헌 할께요 
모두 다 
참 고마운 가족으로 맺어 주셔서 감동입니다 .
 늘 깊은 사랑 보내며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