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7.21) -농민 주일-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6,34) 생명 농민들! 오늘 복음(마르6,30-34)은 '군중을 향한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 곧 연민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엾은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엾은 마음'은 '연민의 마음'입니다. '연민'(憐憫)은 영어로는 'Compassion'인데, 이는 '함께 아파하다.', '함께 고통을 나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파하는 이들, 고통 속에 있는 이들,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연민의 마음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계속되었습니다. 7월 셋째 주일인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연민의 마음 안에서 '농민주일이 갖는 의미'를 함께 묵상해 봅니다. 농민주일은 특히,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농민들, 생명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농민들, 땅을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농민들과 같은, '생명 지킴이들인 생명 농민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생명 농민들의 수고와 땀과 아픔을 기억하면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함께 할 것을, 곧 '생태적 회개의 삶'과 '생명 농민들이 생산한 것을 애용할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값싼 대량의 농산물을 쏟아내고 있는 '대규모 기업농'과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농민들이 힘들어하고 있고, 농업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생명 농민들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 했습니다. 농업이 근본이며, 따라서 농업이 무너지면 다른 것들도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땅은 생명입니다. 땅을 살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농약을 적게 사용합시다! 유기질 비료를 사용합시다! 생명 농산물을 애용합시다! (~ 1사무9,27)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7.22)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20,18) '은총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 막달레나!' 오늘 복음(요한20,1-2.11-18)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첫 목격자요 증인'이 된 은총을 충만히 받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많은 자매님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일곱 마귀에 걸렸던 여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8,2) '일곱 마귀'가 전하는 의미는 '일곱(7)'이 '완전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완전하게 죄 중에 있었던 여인, 완전히 미쳤던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오늘 미사 감사송이 전하고 있는 것처럼 '또 하나의 사도로' 다시 태어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진심어린 회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늘 예수님 곁에 있었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실 때까지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큰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이 큰 사랑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나는 큰 은총을 낳았고, 예수님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되는 은총을 낳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생활의 모범'입니다. 회개의 은총,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은총,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은총이 우리 안에도 충만히 내리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 1사무 10,27)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16주간 화요일>(7.23)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 '회개의 메시지!' 오늘 복음(마태12,46-50)은 '예수님의 참가족'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12,47)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12,48)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가리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12,49-50)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있지만, 또 다른 가족들, 곧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영적인 어머니와 형제들도 있습니다. 어제 '사무엘의 고별사'(1사무12,1-25)를 필사하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고별사 안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조상들은 주님께 울부짖었소. '저희가 죄를 지었습니다. ... 이제 저희를 원수들의 손에서 빼내 주십시오. ...' 그래서 주님께서는 ... 사방에서 에워싼 원수들의 손에서 여러분을 빼내 주시고 안전하게 살수 있게 해 주셨소."(1사무12,10-11) '주님께로 돌아와야 살 수 있다.'는 사무엘의 고별사가 전하는 회개의 메시지가 바로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지금, 삶의 자리에서 나는 얼마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구원자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는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미지근한 모습인가? (~ 1사무 13,23) 지금, 삶의 자리에서 나는 얼마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가?💜💖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 💜 '회개의 메시지!' 나는 얼마나 구원자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는가?---- 💖 예수님 옷자락 💖 (현존 체험)을 잡고 또 부여잡고 👏※ 성령의 힘으로 최후의 행복이 이루어지도록 👏※ 기도합니다. 아멘 ! |
제목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7.24) "자,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태13,3ㄴ) '말씀의 씨!' 오늘 복음(마태13,1-9)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들입니다. 오늘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뿌려지는 '말씀의 씨'와 말씀이 뿌려지는 '마음의 밭'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늘 우리에게 뿌려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뿌려지는 나의 마음의 밭은 어떤 모습일까? 뿌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이 악한 영에게 빼앗기는 '길의 모습'인지?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넘어지고 마는 '돌밭의 모습'인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유혹이 말씀의 숨을 막아버리는 '가시덤불의 모습'인지? 아니면 말씀을 듣고 깨달아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의 모습'인지? 한번 각자의 모습을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뿌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매일 묵상하고, 이 소박한 묵상글을 많은 형제자매님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른 새벽(05시30분)에. 가끔씩 들려오는 기쁜소식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복음묵상글을 받아본 냉담 교우가 돌아왔습니다."라는 기쁜소식! "신부님도 성경을 필사하시니 저도 시작해 보겠습니다."라는 기쁜소식! "멈춰버린 성경 필사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기쁜소식! 이러한 기쁜소식이 말씀이 땅에 떨어져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의 모습'은 아닐까?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1,9-10) 이것이 우리에게도 주어진 소명이자 부르심입니다. (~ 1사무 14,23)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7.25)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20,21ㄴ) '당당함!' 오늘 복음(마태20,20-28)은 '출세와 섬김'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 두 아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면서, 자신의 두 아들이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을 합니다. 같은 말씀이 마르코 복음(10,35-45)에서도 전해지고 있는데, 마르코 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직접 청탁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들,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공생활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했던 제자들입니다. '타볼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붙잡히시기 전 겟세마니동산에서 기도하러 가실 때'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입니다. 때문에 그들의 어머니나 두 아들이 그런 청탁을 드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높은 자리인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제자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탁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6-28)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야고보 사도는 열두 사도 중 첫 번째로 순교(A)한 사도로, 그의 무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별빛 들판의 성 야고보) 대성당에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4,10)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제자들이 됩시다! 겸손한 제자들이 됩시다! (~ 1사무14,52) |
제목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26)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13,16) '뿌리!' 오늘은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 묵상은 고유 기념일의 독서(집회44,1.10-15/'조상들에 대한 칭송')와 복음(마태13,16-17)에 대한 묵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마태13,16-17)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이신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를 기억하면서, '뿌리'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뿌리'는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입니다. 그리고 육의 뿌리를 뛰어넘는 그 '근본 뿌리인 제1원인(causa prima)'은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늘 볼 수 있었고, 그분의 말씀을 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고,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을까? 저는 영이 맑고 깨끗하고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든 것의 첫 번째 원인'(causa prima)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뵈올 수 있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태계의 주보 성인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영이 맑고 깨끗하고 순수했기 때문에 모든 것 안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뵈올 수 있었고, 말씀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느님 아버지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육의 뿌리이신 부모님과 근본 뿌리이신 하느님 안에 머물러 봅시다! (~ 1사무 17,58)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7.27)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13,30) '더 큰 선(善)을 위해!' 오늘 복음(마태13,24-30)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설명하십니다. 밀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밀 가운데에서 가라지가 자라고 있습니다. 복음은 원수가 와서 덧뿌리고 갔다고 전합니다. 우리의 뜻은 밀 가운데에 있는 가라지를 얼른 뽑아버리는 것인데, 하느님의 뜻은 우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겠다."(마태13,29-30)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우리 안에 함께 공존하는 선과 악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분명한 뜻은 너의 악한 모습을 판단하거나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탈출10,27) "주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사울에게 내려왔다."(1사무19,9) 이렇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빠져나올 때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으로 뽑힌 사울의 마음 안에 악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지만,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더 큰 능력을 드러내시려고, 그리고 악을 뛰어넘어 더 큰 선으로 나아가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너를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나의 길과 나의 행실을 고치려고 더 노력합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8,28) (~ 1사무 19,24)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미사의 은혜/연중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