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연중 제14주일>(7. <연중 제14주일>(7.7)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4ㄴ) '온전한 믿음으로!' 오늘 복음(마르6,1-6)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새,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마르6,2-3) 그러면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4ㄴ) 오늘 복음은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 믿음, 곧 예수님의 인성 안에만 갇혀 있는 믿음,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둘 다 믿지 못하는 믿음에 대한 지적'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그들이 눈으로 보아 알고 있는 것 안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부였고, 그 편견과 선입견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 나의 믿음은 어떤가? 온전한 믿음인가? 주님께서는 나의 믿음이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함께 믿는 온전한 믿음인지를 확인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종종 가시(고통)를 주십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2코린12,7) 온전한 믿음이 있는 곳에서 크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용서와 화해의 기적, 함께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기적들을 만들어 봅시다! (~ 판관 6,40)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7.8)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9,18) '다가가는 믿음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9,18-26)은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치유사화는 공관복음(마태오.마르코.루카복음)에서 함께 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부인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한 회당장의 어린 딸을 다시 살리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회당장의 믿음과 혈루증을 앓고 있었던 여자의 믿음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가가는 믿음!' 예수님을 만나 구원에 이르게 된 회당장과 여자의 믿음은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믿음이었습니다. 회당장은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는 분으로 여기며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다가갔고, 여자도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태9,21)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렇게 내가 먼저 다가가는 믿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먼저 다가가고,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제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청하는 믿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신부님! 기도해 주세요. 제가 내일 큰 수술을 합니다. 제 어머니가 많이 아프십니다." 예수님과 신부님께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가 되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자비로우신 주님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9,22ㄴ) (~ 판관9,6)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7.9)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태9,37) '구원의 일꾼들!' 오늘 복음(마태9,32-38)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9,37-38) 먼저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기 위해, 곧 '모두의 구원'을 위해 애쓰신 '예수님의 땀'이 묵상됩니다. 그리고 수확의 때와 구원의 대상과 일꾼들에 대한 묵상을 해 봅니다. '수확의 때'는 '세상 종말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먼 훗날의 때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때이기도 합니다. 세상 종말의 때가 언제일지 모르는 현세적 종말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대상인 복음화의 대상'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복음의 기쁨' 권고문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곧 '미지근한 신자들'과 '냉담 신자들'과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14항 참조)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이들'입니다.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한 일꾼이 적다고 하십니다. 일꾼이 부족하니 하느님께 구원의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복음화의 사명'입니다. '사제직(거룩함)과 예언자직(친교)과 왕직(희생.봉사)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늘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려고 노력하는 구원의 일꾼들이 됩시다! (~ 판관 9,57)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7.10)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10,6) '회개 선포의 사명!' 오늘 복음(마태10,1-7)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시면서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분부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10,5ㄴ-7)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이스라엘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민족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아 들어라!" 그들은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이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자자손손에게 전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떠난 이스라엘이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며, 이 회개 선포의 사명이 열두 사도들에게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 선포의 사명'은 또한 지금 여기에 있는 '또 하나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느님을 믿다가 잠시 떠나있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말과 행동으로' 회개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 '회개의 메시지'는 요즘 우리가 독서로 듣고 있는 '호세아 예언서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북왕국인 이스라엘의 말기에 사마리아를 무대로 활동했던 예언자인데, 그는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심판을 선포하면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고, 너에게도 회개를 선포합시다! (~ 판관 10,18)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 <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념일>(7.11)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마태10,9) '하느님의 힘으로!' 오늘 복음(마태10,7-15)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인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특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최측근으로 선택된 사람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입니다. 이 일이 열두 사도들에게 사명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10,8ㄷ-10) 예수님의 이 말씀(마태10,9-10)을 그대로 실행하려고 애썼던 성인이 바로 '생태계의 주보성인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베네딕토'입니다. 성 베네딕토는 이탈리아 수비아코라는 곳에서 '고행과 기도의 은수 생활'을 했습니다. "Ora et Labora!" 이는 성 베네딕토 수도회의 모토인데, '기도하고 일하라!'는 뜻입니다. '아무 것도 지니지 마라.'는 말씀은 '기도하라!'는 의미, 곧 주님께 의탁하라는 의미, 하느님의 힘으로 일(구원의 일)을 하라는 의미로 들려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일은 '너를 살리는 일'입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나눔과 그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는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하느님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먼저 기도하고, 기도의 힘, 하느님의 힘으로 겸손하게 예수님의 일을 합시다! (~ 판관 11,33)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7.12)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10,16ㄱ) '박해의 모습!' 오늘 복음(마태10,16-23)은 '열두 사도들에게 박해를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나운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지는 양들의 모습'이 박해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마태10,16ㄴ) 되어,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겪게 되는 박해를 잘 이겨내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박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에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가?' 저는 그것이 바로 '세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 것들, 곧 돈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지나친 탐욕과 욕심'이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박해의 모습'이고, 이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고',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의 자리에서는 세상 가치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하느님보다도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박해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해를 이겨냅시다! '세상 가치'는 악(惡)이 아니라 선(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첫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자녀에게 부모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성당에 나가지 말고 공부해." 많은 자녀들이 냉담하고 있는데, 아마도 부모가 자녀들을 이렇게 냉담시키지 않았을까? 주님께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자녀들을 돌아오게 합시다! (~ 판관13,5)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7.13)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0,28ㄱ) '두려워함!' 오늘 복음(마태10,24-33)은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요즘 복음으로 듣고 있는 '예수님의 파견사화(마태10장)의 핵심'은 '예수님(복음)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박해를 이겨내고,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10,28) 무엇이 두렵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끝 모습입니다. 가끔씩 죽음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생물학적 죽음의 의미'는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태, 곧 돈도, 권력도, 명예도, 사랑도 싸움도, 좋고 나쁨도 다 사라지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신학적 죽음, 곧 믿는 이들이 말하는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주는 다리'입니다. 그래서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삶(생명.기쁨.행복.평화)을 굳게 믿고 희망하는 사람들은 많은 순교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함(경외심)'은 성령의 일곱 은사(성령 칠은) - 슬기.통달(깨달음).의견.지식.용기(굳셈).효경.경외심(두려워함) - 중 하나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워함'입니다. 그래서 '죄를 피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은사'입니다. 두려워 합시다! 하느님을 두려워 합시다! 영원한 무(無)의 상태인 영원한 죽음을 두려워 합시다! 이 두려움 뒤에 영원한 기쁨이 있음을 굳게 믿으면서, 오늘도 믿는 사람답게 살아봅시다! 주님과 성모님 손 잡고 화이팅 합시다! (~ 판관14,15)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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