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2.25)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9,7) 믿음! 오늘 복음(마르9,2-10)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의 의미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오늘 '미사 감사송'은, 그 의미와 메시지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어,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밝혀 주셨나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표지입니다. 거룩한 변모에 관한 말씀 전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십자가 수난 그 너머에 부활이 있다는 '깨달음과 희망을 전하는 표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수난'은 무엇일까? 저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묵상했습니다. 하느님보다 세상 가치를 더 좋아하면서 따라가고 있는 '우리의 약한 믿음'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루카11,29) 예수님의 이 말씀이, 하느님보다는 세상 가치와 정치 이념을 따라가는 믿음이 약한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으로도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매일 믿음을 키워가야만 하는 '힘든 믿음의 삶'이 '십자가 수난'으로 다가왔습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거룩한 사순시기에, 나의 믿음을 깊이 성찰해 보고 '나의 믿음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른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믿음, 겸손한 믿음, 충실한 믿음 그 너머에 부활이 있습니다. (~ 히브11,40)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사순 제2주간 월요일>(2.2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오늘 복음(루카6,36-38)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매순간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다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허물(죄)이 많습니다. 더욱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까지 내어주신 하느님의 큰사랑 앞에서 보면, 우리는 언제나 허물이 많은 죄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독서(다니9,4ㄴ-10)의 말씀처럼, 언제나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다니9,5.7)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면 언제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다시 살려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전체(73권)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언제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으니, 이젠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이 전하는 말씀처럼, 너를 심판하지 말아야 하고, 너를 단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를 용서해야 하고,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후하게 받았으니 우리도 너에게 후하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6,38) 오늘도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카15,21) (~ 야고1,11) |
<사순 제2주간 화요일>(2.27)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3) '돌아가자!' 오늘 복음(마태23,1-12)은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을 대할 때마다 늘 뜨끔합니다. 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 사목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의 위치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치와 같기 때문이고, 그들의 위선에 대한 책망이 제게 하시는 책망으로도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이렇게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2-3)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보이려는 모습과 윗자리와 높은 자리를 좋아하는 모습,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크게 분노하신 모습은 위선자들을 대하실 때 드러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부터 시작되는 '위선자들에 대한 책망'(마태23,1-36)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위선자들과 끝까지 싸우셨고, 끝끝내 위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손에 의해 돌아가셨습니다. '위선에 대한 책망'은,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말씀'입니다. 은혜로운 사순시기에 믿는 이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되돌아봄(성찰)'을 통해 내 안에 자리 잡고 입는 '위선을 치우는 일'(회개)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독서(이사1,10.16-20)는 타락한 소돔의 지도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에게 회개를 재촉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1,16.18) (~ 야고2,26) |
<사순 제2주간 수요일>(2.28)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마태20,18ㄷ) '예언자의 길!' 오늘 복음(마태20,17-28)은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는 말씀'과 '출세와 섬김에 관한 말씀'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너무 무지하여 깨닫지를 못합니다.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자,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세 번에 걸쳐 하시는데,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두 아들의 높은 자리를 청합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함께 예고하시는데도, 제자들은 수난과 죽음이 없는 영광과 부활만을 바라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역시 그러한 모습은 아닌지??? 예언자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참예언자이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또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오늘 독서(예레18,18-20)와 복음은 '그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남유다 왕국의 쇠퇴와 몰락(BC587년)의 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로서, '눈물의 예언자'라고 불립니다. 오늘 독서는 그가 걸어간 고난의 길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자,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무시해 버리자."(예레18,18) '예언자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예언직의 사명을 지니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길 또한 고난의 길입니다. '그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8) 힘을 내어 봅시다! 예언자의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그 너머에 신앙의 목적인 '이제와 영원한 부활'이 있습니다. (~ 1베드2,3) |
<사순 제2주간 목요일>(2.29)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루카16,25) '인생역전의 삶!' 오늘 복음(루카16,19-31)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인생이 역전되는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어떤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처지가 저승에서 완전히 뒤바뀝니다. 어떤 부자가 이 세상에서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고 하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핧곤 하였습니다. 때가 되자 그 두 사람이 죽어 저 세상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두 사람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먼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16,13)는 말씀을 확인시켜줍니다. 그리고 '나눔이 없는 재물의 남용'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고 결국 멸망으로 이끈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내 주위에 라자로와 같은 처지에 놓인 형제자매들은 없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성찰해 봅시다! 오늘 독서(예레17,5-10)에서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17,5.7) 복된 사순시기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어떤 부자처럼 자기만을 위한 복으로만 여기지 말고, 주변에 있는 라자로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합시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저 세상에서 영원한 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세상을 떠난 이점도 요셉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1베드3,7)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사순 제2주간 금요일>(3.1)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마태21,38) '두 모습!' 오늘 복음(마태21,33-43.45-46)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포도밭을 배경으로 한 비유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20,1-16)이고, 또 하나는 오늘 복음인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는 비교가 됩니다. 앞에 비유는 '포도밭 주인의 선한 마음'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뒤의 비유는 '포도밭 소작인의 악한 마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이신 하느님의 일꾼들인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포도밭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포도밭 주인의 종들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으로 파견된 많은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포도밭 소작인들이 악한 마음을 품습니다. 주인의 상속자인 아들을 죽여 버리고, 주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립니다. 이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소작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등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으셨습니다. 이 죽음의 행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죽음의 행위인 소작인의 악한 행위는 오늘날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위에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위에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악한 소작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칠죄종(七罪宗)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 곧 교만, 인색, 탐욕, 음욕, 시기, 분노, 나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악한 소작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악한 소작인이 되지 말고, 선한 포도밭 주인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 2베드 1,11)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3.2)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마태2,13) '의로운 요셉!' 오늘 복음(마태2,13-15.19-23)은 '아기 예수님께서 이집트로 피신하시는 말씀'과 '이집트에서 돌아오시는 말씀'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러 온 동방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합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려고 한다."(마태2,13) 그러자 요셉은 이 말씀에 순종합니다. 헤로데가 아기들을 학살하고, 그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마태2,20) 그러자 요셉이 이 말씀에 순종합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3월은 '성 요셉 성월'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른 아버지인 요셉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의 삶을 묵상하는 달'입니다. 성 요셉은, 묵묵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하느님 구원 사업에 협력한 조력자입니다. 성 요셉은, 천사를 통해 전해진 주님의 뜻에 언제나 순종했습니다. 일찍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간직했던 순종을 그대로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성 요셉은, 교회와 우리로부터 의로운 사람으로 찬양을 받고 있습니다. "성 요셉 찬양하세. 주님의 양부를. 정결하신 성 요셉 마리아의 정배. 의로우신 성 요셉, 우리 양자로 삼아, 언제나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하시며, 의롭게 생활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가톨릭성가 280번 1절) 우리의 전구자이신 어머니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우리도 성 요셉처럼 깨끗한 몸과 마음을 지닌 '정결한 자녀들', 말씀과 너를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뜻에 언제나 순종하려고 애쓰는 '의로운 자녀들'이 됩시다! (~ 1요한 2,29)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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