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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사순시기

<사순 제1주일>(2.18)'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되시길 빕니다.


<사순 제1주일>(2.18)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회개의 열매'

오늘 복음(마르1,12-15)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말씀과 갈릴래아에서의 첫 전도 말씀'입니다. 

'사순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부활을 준비하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나를 바라보는 시기, 밖으로 향해 있던 나의 시선을 내 안으로 향해 있게 하는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보다 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동참하는 시기'입니다.

'보다 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큰 사랑(자비)을 기억하고, 이 큰 사랑(자비) 안에 머무는 시기'입니다.

사순시기는
'회개의 시기이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시기'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얼른 회개하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2,17.26)

'믿음에 따라야 하는 실천은 회개이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나와 공동체의 부활을 위해 나름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금주, 금연 등등) 잘 지키고 계시죠?

합천본당은 이번에 <물동이>(우리신학연구소)를 가지고, '생태위기 시대, 칠죄종을 성찰'하면서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성찰은 우리를 '생태적 삶'으로 초대하고 있고, '회개의 합당한 구체적인 열매들(생태달력)'에게로 초대합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되시길 빕니다.

(~ 1테살1,10)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해설: 선배 신앙인들이 많이 읽었던 『칠극』에는 죄의 뿌리인 '칠죄종'(오만, 질투, 탐욕, 분노, 탐식, 음욕, 나태)을 극복하기 위한 7가지 덕을 제시하고 있다. 곧 겸손, 용서(너그러움), 애긍(나눔), 인내, 절제, 정결, 근면이다. 칠죄종은 십계명과 함께 고해를 위한 성찰의 주요 주제가 된다.​

1. 교만(교오[驕傲]) : 자기를 과도하게 높이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여 세속 일이나 수계하는 범절이 남보다 나은 줄로 생각하지 않았는가?
잘난 척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말을 하거나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는가?
자신의 지체와 권세를 믿고 상대방을 마땅하게 대접하지 않았는가?
높은 자리를 자주 생각하고 원하지 않았는가?
남을 살펴보고 그 잘못한 것을 찾아내고자 하지 않았는가?
남을 낮게 보아서 그의 올바른 말에 순종하지 않거나 그의 강론을 생각 없이 듣지 않았는가?
억견臆見을 고집하여 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거나, 자기가 잘못한 일이어도 굽히지 않고 있었는가?
마지못해 어른의 명을 듣긴 들으나 혹여 마음속으로 원망하지 않았는가?
남 앞에서 자신의 분수가 넘치게 점잖은 행동과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는가?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거나 하느님께 맡겨드리지 아니하였는가?
남이 칭찬해 주고 기억해 주는 것을 좋아하거나, 거기에 심취하지 않았는가?
없는 일까지 지어내어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는가?
남이 나를 경계시키는 말을 너무 괴로워하거나 분하게 여기 듣지 않았는가?
남이 자기를 공경하고 받들어 주기를 원하였는가?
없는 덕이나 지위를 꾸며서 남이 나를 존대해 주기를 원하지 않았는가?
남이 본래 나보다 높은 것을 싫어하거나 풍속대로 남을 대접하지 않았는가?
부모나 친척이 부족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른 척하지 않았는가?

무릇 부모와 윗사람에게 잘못하는 일이 오만에서 나오는 것이 많으니 제4계명을 생각하여 자세히 성찰하여야 한다.

2. 인색(간린[慳吝]) : 재물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이다.​
재물에 대한 사랑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았는가?
재물을 모으는 데 마음을 지나치게 두지 않았는가?
재물을 아끼는 마음 때문에 집안사람이 춥고 굶주리게 되거나 자기 형편대로 희사하지 않았는가?
친척의 가난한 상황을 돌아보지 않았는가?
돈 드는 것을 너무 꺼려서 마땅하게 쓸 데에 형편대로 쓰지 않거나, 쓴다고 해도 원통해 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는가?

3. 미색(迷色): 색에 미혹되는 것이다.
마땅한 방법을 써서 사욕邪慾을 눌러 이기지 못했는가?
사욕이 길러지는 것을 끊지 않거나 피하지 않았는가?
​자세한 내용은 제6계명에서 볼 수 있다.

4. 분노(憤怒)
분노하는 악습을 힘써 고치지 않았는가?
마음에 분노하거나 성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에게 분노하는 것은 제4계명과 제5계명을 보라.

분노함으로 영육 간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거나 누구를 상해하거나 불목하거나 그러한 것을 살핀다. 또한 분노할 때에 악한 마음과 악한 말이 밖으로 나온 것을 자세히 성찰하여야 한다.

5. 탐식(탐도[貪饔]) : 음식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이다.​
음식 탐하는 욕심을 기르거나 힘써 이기지 못하였는가?
음식을 분수에 지나치게 하거나 남을 시켜서 분수에 지나치게 하지 않았는가?
음식 하는 데에 세월을 많이 보내지 않았는가?
과한 음식으로 몸을 해롭게 하지는 않았는가?
음식을 과하게 먹어서 토하지 않았는가?
-토하는 것만으로 많은 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음식이 과한지 아닌지를 보아 정할 것이다.
술을 과하게 먹고 취하거나 주정하지 않았는가?
술을 과하게 먹어 몸을 해롭게 하거나 살림살이를 흩어버리지 않았는가?
남에게 권하여 술을 과하게 먹게 하거나 취하게 하지 않았는가?

술로 인하여 본분을 잃어버리거나 부모나 남을 상해하거나 집안에 불목하거나 음란한 행위를 하는 그런 것이 두 가지 죄를 겸한다. 따라서 그대로 성찰하여야 한다.

6. 질투(嗾妬):시기하여 남의 복福을 싫어하는 것이다.​
남이 벼슬이나 혹 무슨 소임을 얻은 것을 시샘하여 싫어하지 않았는가?
남이 총애와 칭찬을 받는 것을 시샘하여 싫어하지 않았는가?
시기하여 남의 공로나 착한 일을 가리거나 낮추지 않았는가?
남의 일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거나 잘못되는 것을 즐거워하지는 않았는가?
시기하여 이간질하는 말을 하거나 남의 좋은 일을 힘써 못되게 하지는 않았는가?
시기하여 남의 바른말을 듣지 않거나 그 모든 말과 행사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는가?

질투하는 마음을 힘써 끊어 버리지 않으면 무수한 죄의 뿌리가 되니 자세히 성찰하여야 한다.

7. 나태(해태[懈怠]): 게으름이다.
기도나 선행을 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았는가?
게으름으로 영혼의 본분이나 육신의 본분을 궐하거나 착실하게 하지 못하였는가?
게으름으로 자기 소임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였는가?
무익한 일이나 한담이나 잡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일하기를 싫어하여 남이 단지 도와주기만을 원하고 있는가?

게으른 악습이 모든 죄의 뿌리라고 하니, 마음을 자세히 살펴서 성찰하여야 한다.

위의 모든 항목을 성찰한 후에 각 사람이 또한 따로 자신의 지위와 처지에 따른 여러 가지 본분을 보고서 죄에 걸리는 것을 자세히 성찰하여야 한다.

『성찰기략(省察記略)』 끝

<사순 제1주간 월요일>(2.19)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심판의 기준!

오늘 복음(마태25,31-46)은 장례미사 복음으로 종종 듣는 '최후의 심판 기사'입니다.

우리의 여정은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두 개의 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의 끝'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끝'입니다.

두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죽음 후에 맞이하게 되는 심판을 '사심판'이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 맞이하게 되는 심판을 '공심판'이라고 합니다.

'사심판'은 죽은 사람이 받는 개인 심판이지만,
'공심판'은 세상 종말을 의미하는 최후의 심판으로써,
죽은 이와 산 이가 함께 받는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복음에 드러난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랑'입니다. 이는 나의 하느님 사랑은 반드시 나의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 하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반드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심판 때에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고, 이 칭찬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쇠가 됩니다.

오늘 독서(레위19,1-2.11-18)와 복음이 이 분명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19,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25,45-46)

서로 사랑합시다!

(~ 2테살1,12)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사순 제1주간 화요일>(2.20)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9)

'기도하는 방법!'

오늘 복음(마태6,7-15)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하신지 알고 계신다."(마태6,7-8)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기도이자 가장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입니다.

신자들은 말합니다.
"기도가 어렵고, 기도하는 것이 힘들다고".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기도가 어렵고 힘들까?'

'그 이유는 형식과 시간에 얽매인 율법적인 기도, 교회가 신자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그것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예수님.주님)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일곱 개의 청원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세 가지 청원'입니다. 후반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네 가지 청원'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판기처럼' 일정한 돈을 넣으면 필요한 것이 곧바로 나오는 것처럼, 지금 내가 바라는 청원이 곧바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나는 지금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바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너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바칠 수 없는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너를 용서합시다!'

(~ 1티모2,7)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먼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나는 지금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바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너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바칠 수 없는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그것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예수님.주님)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입니다.

'너를 용서합시다!'  아멘 !!!!  울 티모테아고모님  머리도 심장도 발바닥 손가락마저도 함께 웃는 깊은 미소가 가득한 하루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

<사순 제1주간 수요일>(2.21)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11,29)

'회개의 기적!'

오늘 복음(루카11,29-32)은 '요나의 표징'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나의 표징'은 요나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모두 회개한 '회개의 표징'입니다. 이 회개의 표징을 오늘 독서(요나3,1-1)가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3,4)
요나 예언자의 이 외침을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표시로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습니다. 마침내는 니네베 임금까지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에 앉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요나3,10) 

'회개의 기적!'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루카11,29)

'예수님께서는 왜,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을까?' '그 악한 세대는 지금 우리의 세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대를 두고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회개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주님이신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인 이유는 이 회개 때문입니다. 사순시기에 회개하는 이들, 주님께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합시다!
주님 부르심에 나의 회개로 응답합시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로 돌아오너라."(복음 환호송)

(~ 2티모1,14)


회개는 돌아가는 것---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주님이신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인 이유는 이 회개 때문입니다. 사순시기에 회개하는 이들, 주님께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합시다!
주님 부르심에 나의 회개로 응답합시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로 돌아오너라."(복음 환호송)----네!!! 달려 달려 아멘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2.22)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8.19) 

'예수님의 신원'

오늘 복음(마태16,13-19)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베드로가 '이 지상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직접 부르심을 받은 첫 번째 교황으로서, '제1대 교황'입니다.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드로 사도에 이어진 '제266대 교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셨을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16,13)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로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례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마태16,14)

이어서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16,1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베드로의 이 대답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완벽한 대답입니다. 베드로의 이 대답을 다시금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스승님'이시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살아계신 '임마누엘이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신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없애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 완벽한 대답으로 베드로는 사도좌의 자리에 오릅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6,19)

그렇다면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 티토2,15)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6,19)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스승,살아계신 분, 창조하신분 신성인성 지녀 매력적으로 붉히게 만드는 구세주 그리스도 꿈꾸게 만드시는 달콤하신분 !1승천하신 빈자리 성령으로 채워 주신 따뜻하신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분 증말 사랑해영 영원히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사순 제1주간 금요일>(2.23)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5,20)

'용서와 화해!'

오늘 복음(마태5,20ㄴ-26)은 '화해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생명처럼 여기면서 지켜온 '율법을 능가하라.'는 말씀입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라는 '율법을 능가하라.'고 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도' 재판에 넘겨질 것이고, '바보!'라고 하거나,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안에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5,23)

오늘 독서(에제18,21-28)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냐?"(18,23)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18,27-28)

지금은 '회개의 때'입니다.
회개의 구체적인 모습인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시간'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따라 날마다 죽지 않고 사는 길을 선택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히브2,4)

지금은 '회개의 때'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시간'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따라 날마다 죽지 않고 사는 길을 선택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아빠 아버지!!!

<사순 제1주간 토요일>(2.24)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

'참사랑!'

오늘 복음(마태5,43-48)은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라는 율법을 능가하는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여라."(마태5,44)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왜 이런 사랑을 하라는 말씀인가?

참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조금도 나의 손해가 허락되지 않는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힘들게 하고 박해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니,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5,45)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을 온전하게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온전하게 희망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이시며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십자나무 위에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근거로 제시하신 것이, 하느님께서는 '악인과 선인, 의로운 이와 불의한 이'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보편사랑'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마태5,46.47) 

'가짜사랑'에 갇혀 있거나 '거짓사랑'에 만족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참사랑', 곧 '완전한 사랑'을 하려고 애쓰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히브7,2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