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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11.26) -성서 주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11.26) -성서 주간-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앉아 모든 민족들을 가를 것이다."(마태25,31.32) 

'참왕이신 그리스도!'

오늘은 모두의 구원을 위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누리의 왕(임금)이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 중의 왕이신 참왕(참임금)'이십니다. 그런데 참왕의 모습이 세상이 생각하는 왕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참왕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오늘 두 독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서진 양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떼를 먹이겠다."(에제34,16)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1코린15,20-21) 

참왕이신 그리스도는 겸손의 왕, 섬김의 왕, 희생과 사랑의 왕, 비움과 죽음의 왕, 공정과 정의의 왕이십니다. 한마디로 세상이 추구하는 왕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바보의 왕'이십니다.

우리 안에 화두(話頭)로 던져져 있는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는 서로가 바보의 왕이신 예수님을 닮으려는 노력이고, 이 노력이 선행될 때, '함께 가기'라는 '시노달리따스의 참의미'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마태25,31-46)인 '최후의 심판 기사'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처럼, 참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종말의 때에 심판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십니다.

그때에는 믿는 모든 이들이 참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잘 믿고 따랐는지가 '심판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 많은 사목자들이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사목했는지가 심판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아멘♥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4주간 월요일>(11.27) -성서 주간-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루카21,3)

봉헌의 정신!

오늘 복음(루카21,1-4)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는데,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닙(동전 두 개)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21,3-4)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물 봉헌의 많고 적음의 액수도 중요하지만, '나의 봉헌 행위에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봉헌과 나눔'은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풍족하니까 풍족한 데에서 얼마를 바치거나, 쓰고 남아서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행위'이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행위'입니다.

교회 달력인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자락에 놓여져 있습니다. '성서주간'인 이번 한 주간이 '한 해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12.2) 저녁부터는 새로운 한 해(나해)가 시작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대림 제1주일'입니다.

'말씀 안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어제 함께 기념한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참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 속에서 첫째 자리에 있었는지?'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주일미사 후 '본당사목위원연수'가 있었습니다.
본당 살림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교무금과 주일헌금'입니다. 교무금은 하느님과 약속입니다. 하느님과의 이 약속을 잘 지키고, 가난한 과부처럼 나의 봉헌에도 정성과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4주간 화요일>(11.28) -성서 주간-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들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21,6)

'회개의 때(Kairos)'

오늘 복음(루카21,5-11)은 '예수님께서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 아름다운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 파괴가 임박했을 때, '적그리스도(가짜 그리스도)'가 나타나더라도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고 이르십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루카21,10-11) 

하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끝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는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전쟁, 반란, 큰 지진, 기근과 전염병' 등은 지금 우리 시대 안에서 일어나고 일들이 아닌지요?
그렇다면 구원과 멸망의 때인 하느님의 때(Kairos)도 가까이 다가왔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지금 이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 우리가 죽지 않고 사는 일을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루카21,9b)

'우리의 시간, 우리의 물리적인 시간(크로노스.Chronos)'도, 그 '죽음의 때'도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죽지 않고 살기를, 그것도 영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 '하느님의 때인, 회개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하느님의 시간이요 회개의 때'입니다. '회개를 자꾸만 뒤로 미루지 맙시다!
'날마다 오늘 회개하려고 노력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4주간 수요일>(11.29) -성서 주간-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12,19)

'피할 수 없는 고통!'

오늘 복음(루카21,12-19)은 '재난의 시작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즘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보니, 계속해서 종말에 관한 복음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어제 복음은 '적그리스도 등장과 전쟁과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과 같은 일들이 바로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표징'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모든 일에 앞서, 제자들이 먼저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3-15.19) 

우리의 고통에 앞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고통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내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통을 이기고 부활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인내로 고통을 견디어 내고 부활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그 어떠한 고통도 예수님께서 당하시고 견디어 내신 십자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내고 부활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독서는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완전 멸망한 후에 다니엘은 동료 세 사람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다니엘은 유배지에서 '하느님의 영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형안(炯眼)과 통찰력과 지혜로 바빌론 임금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을 '해방의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성령의 힘으로 견디어 내고 함께 부활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11.30) -성서 주간-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4,20)

'사도직 사명!'

오늘 복음(마태4,18-22)은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4,19)

그러자 어부 네 사람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것도 추호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바로' 자신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예수님께서 '평범한 어부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를' 부르십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 사도를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사도(使徒)는 '어떤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된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도에게 주어진 사명이 바로 '사람을 낚는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사도직 사명에 충실하다가 예수님처럼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오늘 독서(로마10,9-18)는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발'인 '사도직 사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그러므로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10,14-15.17) 

이것이 바로 복음 선포의 사명이 주어진 이들이 갖추고 있어야 할 모습, 곧 내가 먼저 믿고, 내가 먼저 듣고, 내가 먼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로마10,18)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소와 낙타와 같은 동물은 음식을 완벽하게 씹고 소화하기 위해 여러 개의 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몇 가지 필터를 통해 성경을 묵상하여 새로운 동맹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씹는 첫 번째 위장: 말씀을 읽고 듣는 것 – 요한계시록 1:3

말씀이 낭독되고 들림: 포로기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수문에 모이고, 제사장 에스라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읽는다.말씀은 (특히 전례에서) 들린다.  독서: 느헤미야 8:1-3, 9-12


씹는 두 번째 위장: 말씀을 믿는 것 – 사도행전 15:7

우리는 복음을 믿습니다. 말씀은 믿는 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능력입니다(마르코복음 1,15 참조).마리아는 자기에게 들려준 말씀을 믿으며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습니다(루카 1,45 참조).독서: 요한복음 20:30-31   


씹는 3위: 말씀 공부 – 디모데후서 3:15

 베로이아 형제들은 말씀을 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사도행전 17:11).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에 대해 증언하는 성경을 연구하라고 권유하십니다(요한 5,39 참조).
마리아는 예수 말씀의 첫 번째 제자였습니다.
독서: 루카복음 1:1-4 


씹는 4위: 말씀으로 기도하기 – 골로새서 3:16

성경, 특히 시편보다 더 좋은 기도서는 없습니다. 충만함: 성체성사.
바오로와 실라는 말씀과 함께 기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사도 16,25-26 참조).
성모님께서는 마니피캇(Magnificat) 안에서 말씀과 함께 기도하신다(루카 1,46-55 참조).
독서: 시편 103


씹는 5위: 말씀 암송 – 잠언 2:1-5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암기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손에 묶고 집 문설주에 적어 외웠다.
마리아는 예수 말씀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루카 2,51 참조).
독서: 신명기 6:4-9


씹는 6번째 위장: 말씀대로 살기 – 야고보서 1:22-24

말씀은 실천하고 실천해야 합니다(신명 30,14 참조).
"주여, 주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렇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마태 7,24-27 참조).
마리아는 "당신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루카 1,38 참조)라고 선언합니다. 교회는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하라"(요한 2,4-5 참조)고 명령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서: 디모데후서 1:6-11


씹는 일곱째 배: 말씀을 선포함 – 마가복음 16:15; 마태복음 28:18-19

듣고,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고, 실천한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되어야 한다(마태 10,27 참조).
바울: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진저!" (고린도전서 9:16b).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마리아의 팔에 안겨 있는 예수 예수를 발견합니다.
말씀이신 예수 말씀은 마리아의 손에 있습니다(마태 2,11 참조).
읽기: 고린도전서 1:17-25


결론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영의 연결을 경축합니다.


<연중 제34주간 금요일>(12.1) -성서 주간-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21,31)

'표징들!'

오늘 복음(루카21,29-33)은 '무화과나무의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고 하시면서, 나무들에게서 일어나는 모습들을 통해 '물리적인 때'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때(종말)'를 알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21,31)

'이러한 일들???'

우리는 이번 성서주간에 들려오는 복음을 통해 '이러한 일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전쟁과 기근, 분열, 큰 지진, 전염병 등과 같은 죽음의 문화'입니다.

오늘 복음은 '때가 차서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의 나라를 잘 준비해야 한다.'는 '독려의 말씀'이고, 또 한편 '잘 준비하고 있지 못하다.'는 '질책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피조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 등을 알리는 물리적인 때(크로노스)를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우주로 쏘아 올린 과학위성 등이 전해주는 정보를 통해서 그 물리적인 때와 변화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하고 더 빠르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잘 준비하고 더 잘 대처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때'(종말)도 잘 준비하고 잘 대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21,32-33) 

예수님의 이 말씀이 섬뜻하게 다가옵니다. 
12월의 첫날입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더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 곧 오갈데 없고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기억하고, 이들에게 사랑이 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미사>(12.2) -성서 주간-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6.27) 

'마리아의 위대함!'

오늘 복음(요한19,25-27)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요한 제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마리아와 제자와의 관계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결정적으로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주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위대함'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Fiat voluntas tua."(당신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루카1,38 참조) 라는 응답으로 시작됩니다.

이 순명으로 마리아는 영원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한 생을 묵묵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지극한 겸손으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길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그 시신을 품에 안아 무덤에 묻으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의 위대함'이고, '우리가 신앙의 모범이신 마리아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공경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12월 첫 토요일에 드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에서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하느님,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보잘것없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으시어, 구세주의 어머니로 삼으셨으니, 저희가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성실한 믿음으로 순종하며, 오롯이 하느님께 구원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본기도)

보잘것없는 마리아를 당신 구원 사업의 도구로 선택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보잘것없는 나를 당신 구원 사업의 도구로 쓰시겠다고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우리도 성모님처럼 "Fiat voluntas tua!"로 응답합시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성모님을 닮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성모 신심미사의 의미'입니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8)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 

마리아의 Fiat(순명)

오늘 복음(루카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오늘 복음은 나자렛 처녀 마리아가 주님의 특별한 보호(특별한 은총) 아래에 있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혹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 그녀에게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가 태어날 것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전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1,34)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5.36)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마리아의 이 결정적 Fiat(피앗), 곧 순명으로 인해 성자의 맞갖은 어머니가 되시고, 우리를 위한 은총의 전구자요 거룩한 삶의 모범으로 정해지십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받으신 특별한 은총을 기억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이 큰 축일은 성모님께서 잉태의 첫 순간부터 원죄의 모든 흔적을 받지 않았다는 교리이고, '1854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858년 3월25일(목), 성모님께서 프랑스 루르드의 시골 처녀 베르나데트(벨라뎃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이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 1858년 2월11일(목) 첫 발현을 시작으로 7월16일까지 열여덟 번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셨는데, 열여섯 번째 발현인 3월25일에 당신의 이름을 묻는 베르나데트에게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르드 성모님 발현의 외침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회개하여라."입니다.

깨끗한 영혼이 됩시다!

(~마태 6,3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