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11.19)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23) '탈렌트!' 오늘 복음(마태25,14-30)은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탈렌트(능력.힘.카리스마)를 받았고,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모두에게 탈렌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탈렌트가 잘 활용되어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이런 큰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25,26.30) '하느님께서는 탈렌트가 어떻게 활용되어지기를 바라실까?' '하느님의 일, 곧 공동선과 공동이익이라는 우리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활용되어지기를 바라시지 않을까?' 연중 제33주일인 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복음을 보면 가난한 이들은 예수님의 친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주님이신 예수님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사랑)을 두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형제애를 나누어 주는 일이야말로,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1테살5,2) 어느날 갑자기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셈을 하자고 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탈렌트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1테살5,5) 그런 자녀답게 먼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탈렌트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이를 너와 공동체를 위해 내어놓도록 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3주간 월요일>(11.20)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18,41) '마음의 눈!' 오늘 복음(루카18,35-43)은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예리코에서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던 어떤 눈먼 이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매달립니다.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고 지나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십니다. 그리고 그와 대화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나?"(루카18,40)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18,41)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8,42) 그러자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우리도 예리코의 소경처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우리도 '마음의 눈인 영적인 눈을 뜨게 해 달라'고 예리코의 소경처럼 간절하게 매달려 봅시다! 영적인 눈을 뜨게되면 우리 안으로 은총이 쏟아집니다. 구상 세례자요한 시인(1919-2004)은 만년에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 라는 시집에서, 그 은총(신앙)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은총에 눈을 뜨니'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意識)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소중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오늘은 중산리코스로 지리산 천왕봉 등산을 합니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21)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 '참어머니!' 오늘 복음(마태12,46-50)은 '예수님의 참가족'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49-50) 어제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지리산 천왕봉을 잘 다녀왔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설레이는 마음과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등산을 힘들게 했답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생태계의 주보 성인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가 노래한 하느님의 피조물의 찬가인 태양의 찬가의 노랫말에도 나오는 것처럼, 프란치스코는 땅을 어머니로 찬미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피조물보다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더 잘 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성모님은 성령의 감도로 세 살 무렵에 요아킴과 안나 부모에 의해 하느님께 바쳐졌다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낳아주신 하느님의 어머니요 주님의 어머니이시고, 또한 우리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참어머니'이십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그분이 참어머니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충실하게 실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참어머니가 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1.22)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19,13) '순종의 순교!' 오늘 복음(루카19,11ㄴ-28)은 '미나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이를 두고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미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미나의 비유'에서 왕권을 받아오려고 먼 고장을 떠난 어떤 귀족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리고 먼 고장으로 떠나는 여행은 '주님의 승천'을 뜻하고, 왕권을 받고 돌아오는 모습은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재림)'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선물(은총)을 주셨는데, 그 선물이 바로 미나(탈렌트)이고, 이 미나를 가지고 벌이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19,13) '우리가 받은 미나(선물)는 무엇이고, 이 벌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받은 미나(선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 미나을 가지고 벌이를 잘해야 한다는 의미는 바로 '삶의 자리에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과 하느님의 말씀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음악의 수호성인'이신 '성녀 체칠리아(세실리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천상의 백합'이신 체칠리아는 배교의 강요를 물리치고 동정을 간직한 채 순교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독서(2마카7,1.20-31)는 '박해시대 때 보여 준 한 어머니의 모습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 어머니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이를 용감하게 견디어 내신 분입니다. 그리고 아직 순교하지 않은 막내 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2마카7,29) 순종으로 순교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3주간 목요일>(11.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루카19,41) '예수님의 눈물!' 오늘 복음(루카19,41-44)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루카19,42) 주님이신 예수님의 예고대로, 유다인들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예수님 탄생 후인, 기원 후 70년 경에 로마에 의해 함락되어 멸망합니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께서 왜 우셨을까? 단순히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멸망 때문이었을까?' '예수님 눈물의 본질'은 '회개하지 않는 이들,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보시고 우신 눈물'입니다. 성경 73권 전체는 '순종과 불순종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회개'입니다.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유배와 멸망이라는 고통의 시간도 주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당신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에게 멸망과 유배라는 고통을 시간을 주신 그 본질도 그들을 살리시기 위한 사랑입니다. 요즘 우리가 듣고 있는 독서는 '마카베오기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함락된 후, 로마의 항쟁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그 박해의 시간을 인내로써 극복해 나가는 멋진 신앙인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에게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이 신앙으로 뭉쳐 박해를 이겨내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1마카2,21-22) 우리도 이 굳은 신앙을 본받읍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11.24)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루카19,46) '성전 정화!' 오늘 복음(루카19,45-48)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루카19,46) 아름다운 성전(성당)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의 성전인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곳'입니다. 성전에 들어올 때 우울하고 아팠던 몸과 마음이, 말씀과 성체를 통한 예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후에는 "야호!" 하고 '부활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곳'입니다. '나는 그런 성전을 얼마나 자주 찾아갑니까?' '성전에서 얼마나 자주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받아 모십니까?' 우리는 나의 성전인 몸과 마음이 거룩한 모습으로 변모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자주 성전을 찾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제자매님들은 매일 미사에 참례해서 거룩한 성체를 받아모십니다. 그렇게 하여 날마다 다시 태어납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근본이유'이고, 매일 또는 자주 그리고 매주 주일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전을 찾는 근본이유'입니다. 어느 냉담 교우가 말합니다. "신부님, 제가 너무 바빠서 성당엘 나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고 사랑을 나누는 거룩한 일이 나의 육적인 일들의 밀리는 '들러리 같은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더 기쁘게 살기 위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마침내는 죽음 저 너머에서 영원한 기쁨 속에 머물기 위해서 성당에 다닙니다. '이제와 영원한 기쁨을 향해 달려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3주간 토요일>(11.25)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20,38) '부활신앙!' 오늘 복음(루카20,27-40)은 '부활 논쟁'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바리사이들은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일곱 형제가 똑같이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경우를 예로 들면서,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루카20,35-36) '부활신앙!' 우리의 신앙은 '부활신앙'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이제와 영원히 언제나 살아있음만' 존재할 뿐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저 세상으로의 옮아감이며,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20,38) 라는 말씀의 의미라고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이제와 영원히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이겨내시고, 죽음까지도 이겨내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위한 죽음이요 부활'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을 주님으로 믿으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해야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이제와 영원한 부활'이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희망'입니다. 오늘도 부활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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