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11.12) -평신도 주일-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25,1) '살아있는 믿음!' 오늘 복음(마태25,1-13)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열 처녀의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와 깨어있음'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한밤중에 온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해 가지고 있다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이 말씀으로 끝맺으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5,13) '함께 준비된 등과 기름!' 이를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된, '살아 있는 믿음'으로 묵상했습니다. 매일 드리는 미사 때 주님의 기도 후에 우리는 사제와 함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고, 이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잘 준비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56번째 맞이하는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는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들을 가리키는데, 신자들이 없으면 교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교회의 보물'입니다. '일치와 화해의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6년)'를 시작으로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계속 강조되어오고 있습니다. 십자가 믿음 안에서 나의 삶이 기쁘고, 나아가 너와 세상이 기뻐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 다니 7,28)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월요일>(11.13)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17,4) '믿음의 힘!' 오늘 복음(루카17,1-6)은 짧은 말씀이지만,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남을 죄짓게 하지 마라.'는 말씀이고, 두 번째 단락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고 용서하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락은 '믿음의 힘'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짖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전제하시면서도, 너를 죄짓게 하는 것이 참으로 큰 죄이며 불행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형제가 죄를 지으면 용서해 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용서'는 '우리의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구원의 절대적 전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의 삶 속에서 '가장 실행하기가 어려운 딜레마'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22) 복음 안에서 '7과 7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의 의미를 지닌 숫자'로서, 무한정 용서의 의미, 조건 없는 용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참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무장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불가능의 의미를 지닌 숫자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단락이 전하고 있는 '믿음의 힘'이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17,5)라는 사도들의 말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17,6) 믿음은 '크고 작고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참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가 가능한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 다니 12,1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화요일>(11.14)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10) 겸손한 봉사! 오늘 복음(루카17,7-10)은 '겸손하게 섬겨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믿는 이들의 신원(Identity)'을 분명하게 밝혀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밝혀주신 믿는 이들의 신원은 '종(Servus)'입니다. '하느님의 종(Servus Dei)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봉사자로 불림을 받았고, 봉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분에 맞는 소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성직자는 성직자에 맞는 소명이, 수도자는 수도자에 맞는 소명이, 신자들에게는 신자들에게 맞는 소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소명이 바로 '봉사직의 소명'입니다. 이 소명을 다하고 나서 우리도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17,10) '우리 모두는 종입니다.' 교황님도 종이고, 성직자도 종이고, 수도자도 종이고, 신자들도 종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따라가고 있는 예수님께서 종이셨기 때문입니다.(마르10,45 참조) 그리고 매일 종의 모습(성체성사)으로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지혜3,1)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의인들'은,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춘 종의 모습으로 산 이들', '겸손한 봉사를 한 이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서로가 그렇게 봉사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모여 있는 바로 그곳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천국)'입니다. 우리 안에 '겸손한 종들(봉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요엘 2,1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수요일>(11.15)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18) '구원의 완성인 감사!' 오늘 복음(루카17,11-19)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이르십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집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만 나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17,17-18) 예수님께서 감사의 덕을 지니지 않은 채, 배은망덕한 모습을 지닌 유다인을 찾으십니다. 죄를 지었거나, 어려운 현실 앞에 놓여 있거나, 또는 무엇인가를 꼭 이루어야만 하는 간절함 앞에서 우리는 두 손 모아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너에게 기도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렇게해서 죄를 용서받고, 터널을 빠져나오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때, 복(은총)을 주신 주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 '감사'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5,18 참조)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일상의 삶 속에 참 많습니다. 잠에서 깨어남을 시작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며 바람과 물,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 등 주변 안에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작은 것에, 작은 은총에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모 7,1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목요일>(11.16)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1b) '하느님의 나라!' 오늘 복음(루카17,20-25)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6)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신 공생활 시작의 첫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이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17,20-21)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에 와 있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다음의 말씀들 안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루카4,18; 마태7,21; 1테살5,16-18; 로마14,17 오늘의 숙제(?)입니다. 이 말씀들 꼭 찾아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들이 이미 우리 가운데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와 우리가 죽어 하느님 품으로 갈 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 안에 들어간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함께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갑시다!' 오늘은 수능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로 수험생들이 평화 안에서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지혜7,24) (~ 미카 4,1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1.17)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루카17,30) '깨어 준비하고 있자!' 오늘 복음(루카17,26-37)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인 사람의 아들의 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결정적인 때에 일어나게 될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면서 지금 정신차리고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노아 때와 롯 때처럼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정신차리고 깨어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그 때에 그들에게 일어났던 똑같은 멸망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모습을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재속 프란치스코회 주보 성인이시고,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이신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이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은 부잣집 공주로 태어났는데, 남편이 전쟁에서 죽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신 분'이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함으로써, 깨어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같은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어 준비하고 있도록 합시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본질이요 결정체인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 '십자가 묵상'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기뻐즐거워 합시다! "하느님, 복된 엘리사벳에게,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공경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섬기게 하소서."(본기도)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지혜13,1) (~ 즈카 1,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11.18)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18,8) '절망이 기쁨으로!' 오늘 복음(루카18,1-8)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과부는 가장 불쌍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대변합니다. 불의한 재판관, 곧 힘있는 이들의 편에 서서 판결하는 그 불의한 재판관이 끈질기게 매달리는 '힘없는 과부의 청'을 들어줍니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 나를 괴롭힐 것이다."(루카18,5)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18,6-8)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비유 끝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18,8)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얼마나 청을 들어주시는 분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끈질기게 청하고 있는가?' '적당히 믿고 적당히 청하면서, 청한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믿고 따라가고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화답송 후렴) 오늘도 굳은 믿음 안에서 '절망이 기쁨이 되는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어제 저녁에 신.구약성경 필사를 끝마쳤습니다. 하느님 감사♥ (~ 말라 3, 2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미사의 은혜/연중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