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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29주일>(10.22) -전교 주일-"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28,19)


<연중 제29주일>(10.22) -전교 주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28,19) 

복음화의 본질!

오늘 복음(마태28,16-20)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사명이 바로 '선교(전교) 사명'인 '복음화 사명'입니다. 
복음화 사명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신 '절대 사명'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28,1920) 

복음화의 본질은 단순히 세례를 통해 믿는 이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완전한 드러남(계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제1독서) 
모든 이의 구원인 세상 복음화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 복음화의 대전제는 믿는 이들입니다.
곧 믿는 이들이 먼저 복음화 되는 것입니다.
복음화의 모습은 "성령의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로마14,17)이고,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1테살5,16-18 참조)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로마10,14-15)

내가 먼저 믿고,
내가 먼저 기뻐하고,
내가 먼저 듣고,
내가 먼저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가정과 공동체가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너와 세상이 복음화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화의 본질입니다.

당당하게 십자성호를 긋고,
당당하게 천주교 신자라고 말합시다!

(~ 예레 37,1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9주간 월요일>(10.23)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12,15) 

'어리석은 자!'

오늘 복음(루카12,13-21)은 '탐욕을 조심하여라.'는 말씀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상속문제의 중재를 요청하자, 예수님께서는 이 중재 요청을 거절하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12,15)

그리고 이어서 그들에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어리석은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12,20-21) 

모든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참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뛰어넘지만, 죽음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상에서 맞이할 수도 있는 '영원한 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잠시 소풍 나왔다가 떠나가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탐욕은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욕심 안에 갇혀 있어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람', 특히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은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 안에 있을 때, 인생 소풍을 나왔을 때, '사랑의 덕, 나눔의 덕을 많이 쌓은 사람'입니다. '생명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 예레 38,2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9주간 화요일>(10.24)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12,37)

'순종과 회개!'

오늘 복음(루카12,35-38)은 '깨어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12,35-36) 

유다인들은 혼인 잔치를 밤에 거행합니다. 때문에 손님들이 잔치를 끝내고 돌아가는 시간은 한밤중이 됩니다. 그래서 종들은 문을 열어주기 위하여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 안에서 '주인'은 '그리스도이신 주님'이십니다. '종들'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고, '문을 두드리는 주인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실 때, 예수님께서 오르시는 하늘을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그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1,11)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하며, '최후의 심판의 시간'을 의미입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엄청난 시간 앞에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깨어 있음'입니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늘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깨어 있음과 준비'는 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돌아오는 회개'입니다.

오늘 독서(로마5,12-21)는 '한 사람의 순종'과 '한 사람의 불순종'을 전하고 있는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순종하는 사람, 회개하는 사람'이 됩시다!

(~ 예레 39,18)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9주간 수요일>(10.25)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루카12,48) 

'내어놓아야 할 사랑!'

오늘 복음(루카12,39-48)은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입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12.40)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루카12,42) 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오늘 복음 묵상은 12장 47절에서 48절의 말씀을 묵상한 내용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킁 더 청구하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교회의 지도자들'과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이 심판 때에 심판자이신 주님으로 더 많은 매를 맞게 될 것이라는 뜨끔한 말씀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라는 직분'과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지식'이 '구원의 보증수표'도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이 받고, 더 많이 알고 있는 것만큼 더 내어 놓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많이 받지 않았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그리고 이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나요?
거룩한 미사를 통해서. 그리고 너를 통해서.

어느 누구도 주님의 심판대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많이 받고도,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와 구원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주님으로부터 더 많은 매를 맞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많이 받은 사람답게 행동합시다!

(~ 예레 42,1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9주간 목요일>(10.26)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49.51) 

'불과 분열의 의미!'

오늘 복음(루카12,49-53)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불을 지르러 왔고,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어제 복음은 자비가 아니라 매를 드시는 주님의 모습을 전하고 있고, 오늘 복음은 불과 분열을 주러오신 주님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세례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앙의 본질 안에서 바라보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와 이 나라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우리의 신원 안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을 지르러 왔다.'의 의미가 '성령의 불'과 '성령의 충만함인 하느님의 나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또한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의미가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면 많은 것들이 정화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가정의 분열'을 언급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결정적으로 말해주고 있듯이, '부활의 대전제인 죽음'의 의미로, '내가 죽어야, 서로 서로가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런 의미 안에서 바라보면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화와 하나됨(일치)'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이 은총의 선물이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하는 십자가', '예수님처럼 내가 죽어야 하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내가 머무는 삶의 자리 안에, 나의 가정과 나의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와 부활이 함께 하도록 노력합시다!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요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6,22) 

(~ 예레 46,1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9주간 금요일>(10.27)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12,56) 

'회심의 때!'

오늘 복음(루카12,54-59)은 '시대를 알아보아라.'는 말씀과 '늦기 전에 화해하여라.'는 말씀입니다.

날씨의 변화에는 민감하면서도 이 시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둔감한 군중을 '위선자들'이라고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질책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하시는 질책으로도 들려옵니다.

'세상 일에는 그렇게 약싹빠르게 대처하면서도, 하느님의 일에는 왜 그렇게 둔감하느냐?'

'세상 일에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희생과 노력을 하면서도, 이제와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는 왜 노력하지 않느냐?' 

그리고 또한,
'지금 너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곧 심각한 기후위기 변화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너희는 그것을 알고 있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으로도 들려옵니다.

이 질책과 물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늦기 전에 화해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늦기 전에 얼른 화해해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느님께 나의 범한 죄를 고백하면서 '하느님과 화해'해야 하고, '너와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없는 존재로서 언제나 변함없는 자리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우리보다 더 잘 순종하고 있는 '자연의 피조물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하면서 화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는 '임박한 현세적 종말의 때'입니다. '늘 지금이 종말의 때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가 임박했으니, 자꾸만 하느님의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화해해야 한다. 지금 깨어있어야 한다. 지금 너를 주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메아리'(울림)로 들려왔습니다.

(~ 예레 50,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10.28)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6,12)

'기도!'

오늘 복음(루카6,12-19)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제자들 중에서 세상으로 파견되어질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기도하십니다. 조용한 산으로 가셔서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뽑힌 이들이 바로 "베드로(시몬)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와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루카6,14-16)입니다. 

오늘은 열두 사도 중에서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타대오.다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기도하신 예수님, 그것도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신 예수님,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날 밤에, 겟세마니 동산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루카22,42)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이유는 당신 뜻대로 하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열두 사도들은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들, 하느님으로부터 뽑힌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런 자녀들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16)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멋지고 위대한 존재들이고, 이것이 우리의 자존감'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먼저 찾고, 이 뜻에 순종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시노달리따스'입니다. 

(~ 애가 1,2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