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11.5)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23,12) 천국과 지옥! 오늘 복음(마태23,1-12)은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 앞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곧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위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위선', '윗자리나 높은 자리를 좋아하는 위선',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위선'을 질책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23,11-12) 인간의 보편마음은 윗자리와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로부터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마음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아니 정말로 높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너를 섬기는 사람이 되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역설의 말씀이고, 그래서 이 또한 실행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말씀으로 다가오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안을 바라보니, 정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살아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서로가 높아지려고만 하는 바로 그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의 상태요 지옥의 모습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늘 갈등과 분열과 전쟁이 있습니다. 반대로 서로가 섬기려고 하고 낮아지려고 하는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를 섬기는 사람이며,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섬기시는 분'이셨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10,45) (~ 에제 25,1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11.6)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루카14,14) '보답!' 오늘 복음(루카14,12-14)은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14,12-14) 예수님께서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단식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러한 것들을 드러내지 말고 숨기라고 하시면서,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소외자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셨고, 그래서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루카7,34) 라는 별명을 얻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셨던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으면서 그분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 보답받으려는 사람들이고, 사람들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이들은 잠시 지나가는 여기에서 좀 손해보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손해 보는 삶, 당신의 전부를 내어놓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로마11,29-36)는 바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전부를 내어 놓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자비를 입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고, 당장의 이익은 눈에 보이고.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영원한 것을 향해 나아갑시다! (~ 에제 29,2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1주간 화요일>(11.7)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차게 하여라."(루카14,23) '하느님의 사랑!' 오늘 복음(루카14,15-24)은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당신의 크신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잔치에 참석할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자 잔치를 준비한 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이릅니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그래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종에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차게 하여라." 라고 이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려는 '예수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 토요일 독서인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로마11,28) 오늘 복음과 로마서의 말씀 안에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때로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의 과정으로써 고통도 주시고 아픔도 주시고 불순종의 자유 의지도 주십니다. 하지만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났듯이, 하느님 사랑의 본질은 우리의 구원, 우리의 부활입니다. 아멘. (~ 에제 30,2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31주간 수요일>(11.8)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14,33) '십자가!' 오늘 복음(루카14,25-33)은 '버림과 따름'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군중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탑 건축자와 전쟁을 계획하는 임금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습니다. '자기희생(포기), 비움, 무소유, 그리고 탐욕과 욕심!' 이러한 단어들을 또 한 단어로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내 마음 안에 있는 탐욕과 욕심을 비워내는 것'이 바로 '자기희생(포기)이요 비움이며 무소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참으로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기에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제자다운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독서(로마13,8-10)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3,8.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계시(드러남) 되었습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이며, 이 십자가가 바로 '예수님의 자기희생(포기), 비움, 무소유의 표지'입니다. 그리고 그 표지가 바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율법의 완성인 사랑, 그 사랑의 표지인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이 십자가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 에제 33,3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11.9)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2,16) '성전 정화!' 오늘 복음(요한2,13-22)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성전으로써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장사하는 집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시고 크게 분노하십니다.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요한2,14-15) 이 모습을 보고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2,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2,19)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나를 죽여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살아나겠다." 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기원 후인 서기 324년에 '라테라노 대성전이 하느님께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1626.11.18)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약 천 년 동안 교황이 거주했던 곳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성전은 '부활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성령이 머무는 궁전인 우리의 몸'입니다. 이 성전이 성전으로써의 기능을 잘하고 있는지? 이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성령(생명)의 물이,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을 살리고 있는지? 혹시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것처럼 성전이, 나의 성전이 더럽혀져 있지는 않은지? 한번 성전의 모습, 나의 모습을 성찰해 봅시다! "주님, 저희가 성령의 성전이 되고, 거룩한 생활로 주님 영광의 빛을 드러내게 하소서." (~ 에제 38,2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11.10)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16,8b) '민첩한 행동!' 오늘 복음(루카16,1-8)은 '약은 집사의 비유'입니다. 복음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인간적으로 가장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복음인 '약은 집사의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가 들켜서 쫒겨날 처지에 놓입니다. 그러자 그 집사는 쫓겨난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불의한 행동을 합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자기 마음대로 빚을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합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주인이 불의한 집사를 불러다가 호되게 야단쳐도 부족할 텐데, 칭찬을 하다니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오늘 복음은 '비유'입니다.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그 깊은 의미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숨겨져 있는 의미와 뜻을 알려면, 문자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주인이 불의한 집사를 칭찬한 이유와 비유의 숨겨져 있는 의미와 뜻이 이 말씀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16,8) 이 비유에서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세상의 자녀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고, 빛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래하는 데에 영리하고 민첩합니다. 결코 손해보는 일에 빠지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민첩하게 대처해야 하고, 정신을 바짝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곧 다가올 종말에 대비해서 이 집사처럼 민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민첩한 행동이 바로 '나의 회개'이지 않을까? (~ 에제 43,2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11.11)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루카16,9) 자선! 오늘 복음(루카16,9ㄴ-15)은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곧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는 단락과 '하느님이냐, 재물이냐'는 단락,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참모습'이라는 단락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어는 '재물'입니다. '이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은 '부(재물)'를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여겼고, 인간의 불행과 가난은 그가 죄인이라서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신 결과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부지런히 돈을 추구했고, 그래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이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영원한 거처에서 우리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자선이 곧, 나를 살리는 구원 행위이며, 이것이 바로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복음 환호송)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고자 당신의 전부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위령성월'입니다. 그리고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위령성월은 '비움의 성월'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묵상하는 성월'입니다. 우리는 올 때 빈 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 손으로 갑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떠나갑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자선을 통해 비움의 삶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다니 2,4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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