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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9.17)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9,24)

'장한 순교자들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9,23-26)은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9,24)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103위 순교성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따랐던 분들입니다.

103위 순교성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버린 사람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바보같은 삶'을 사셨을까?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 '역설의 삶'을 사셨을까?

'영원한 생명'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희망'인 바로 그 '영원한 생명'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와 제2독서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지혜3,1-3)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8,35.37)

우리도 장한 순교자들이 됩시다!

제대로 믿고,
제대로 희망하고,
제대로 사랑하는 장한 순교자들,
내가 더 낮아지고, 사랑하고, 희생하는 장한 순교자들이 됩시다!

(~ 이사 30,3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4주간 월요일>(9.18)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7,9)

'백인대장의 믿음!'

오늘 복음(루카7,1-10)은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백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는 한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병들어 죽게 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간곡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백인대장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이렇게 아뢰게 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7,6-7) 

백인대장의 이 말을 전해 들으신 예수님께서 크게 감탄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백인대장의 노예가 살아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7,9)

오늘 독서(1티모2,1-8)는 사도 바오로가 전하는 진리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2,4-6) 

진리이신 예수님!
당신의 전부를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주신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향해 있는 나의 작은 믿음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 오늘 백인대장의 믿음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담아서 주님께 아룁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 이사 35,1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진리이신 예수님!
당신의 전부를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주신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향해 있는 나의 작은 믿음이 결코 작지 않다 

그러니 우리도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담아서 주님께 아룁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미사때마다 (약한하인을 사랑하는 따스한 마음을 지닌 백인대장이 멋져서) 더 힘차게 고백하고 염원한답니다  


<연중 제24주간 화요일>(9.19)

"울지 마라."(루카7,13) 

'예수님의 낮은 사랑!'

오늘 복음(루카7,11-17)은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을 때, 어느 과부의 죽은 외아들의 장례행렬과 마주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7,14) 그러자 죽었던 이가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낮은 사랑, 곧 불쌍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예수님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울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불쌍한 과부에게 늘 낮은 곳으로 향해 있었던 당신의 낮은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첫째는 어제 복음에서 드러난 백인대장의 믿음처럼 '나의 믿음'이고, 둘째는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사람들이나 백인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 전했던 유다의 원로들이나 친구들처럼 누군가의 '기도(전구)'이고, 셋째는 오늘 복음이 전하고 있는 것처럼, 불쌍한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예수님의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문제는 '내가 정말 죽지 않고 살고 싶은가?' '내가 정말 영원히 죽지 않고 살고 싶은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와 영원한 구원에 대한 믿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내 안에 있다면, 너를 살리는 나의 전구기도는 저절로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낮은 사랑!'
'예수님의 측은지심!'

그러니 나의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 크게 실망하거나 너무 투덜대거나 일을 포기하지 말고, 고통과 시련 앞에서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제 생각대로 살지 않고, 그 은총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영성체 후 기도) 

(~ 이사 37,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그리운 구월 의 냄새

<연중 제24주간 수요일>(9.20)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루카7,31)

'오늘도 기뻐하자!'

오늘은 본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이 큰 대축일을 지난 주일로 이동해 경축한 곳에서는 오늘 미사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미사로 드립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형제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루카7,31-35)은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길을 닦아 놓는 사자(선구자)로 파견된 세례자 요한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루카7,28)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복음의 말씀인,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도 받아들이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비유해 질책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7,32)

이는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설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도 받아들이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우매함에 대한 질책입니다.

'우리는 어떠한가?'
'내 안에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의 우매함은 없는지?'

매일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나의 구원,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하느님의 사랑을 재현하는 희생 제사'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일인가?'

예수님의 내려 오심도 기쁨이요, 예수님의 죽음도 기쁨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기뻐해야 하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오늘도 기뻐합시다!'

(~ 이사 40,1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9.21)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9)

'하느님 감사!'

오늘 복음(마태9,9-13)은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십니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투덜거립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12-13)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 그리고 성체와 성혈의 모습과 말씀의 모습으로 매일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는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죄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세리는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로마제국에 바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다인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세리의 우두머리 격인 마태오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런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면서 음식을 드십니다.

'하느님 감사!'

우리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 때문에 죄인입니다. 이 사랑을 믿고 나도 너에게 이 사랑이 되겠다고 약속해놓고 각자의 자리에서 이 사랑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러니 내가 죄인이라고 숨거나 작아지지 말고, 그런 나를 부르시는 주님께로 당당하게 나아갑시다!
그리고 나도 너에게 자비가 됩시다! 

(~ 이사 47,1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9.23)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루카8,5)

'오상(五傷)!'

오늘 복음(루카8,4-15)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에서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씨가 뿌려지는 곳'은 '마음의 밭'입니다.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8,12)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8,13)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8,14)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8,15)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마음의 밭은 어디에 해당되는가?

혹시라도 좋은 땅의 모습이 아니라면,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 좋은 땅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겸손한 자세로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보고 기뻐하십니다.

오늘은 21세기 위대한 성인으로 알려진 '오상의 신부님이신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비오 신부님은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 사제로서, 그의 사부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오상(五傷), 곧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받으신 분입니다. 그것도 196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50년 동안(1918-1968).

오상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합일인 완덕의 모습'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끝까지 회개의 삶을 산 표징이며, 씨가 좋은 땅에 뿌려진 모습'입니다.

함께 노력해 봅시다!

(~ 이사 58,1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