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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30주일>(10.23) -전교 주일-'복음화'는 내가 먼저 믿고, 내가 먼저 기뻐하고,이 믿음과 기쁨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연중 제30주일>(10.23) -전교 주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28,19)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복음화!'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가 드려지는 날'입니다. 교회는 오늘 지구촌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헌금은 전액 교황청 전교회로 보내져서 전교지역의 교회를 위해 쓰여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마태28,16-20)은 '마태오 복음의 끝 말씀'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을 복음화하라는 선교사명'입니다. 이 선교사명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부여하신 사명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절대사명'입니다.
'세상 복음화의 첫 단계, 그 시작'은 '나 자신의 복음화'이고, 나 자신의 복음화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복음화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복음 때문에 그리고 복음이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데, 어떻게 너에게 복음이 되라고, 성당에 나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그리고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다.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로마10,14-15)

'복음화'는 내가 먼저 믿고, 내가 먼저 기뻐하고,
이 믿음과 기쁨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전교주일을 맞아 한번 각자의 모습을 잘 성찰해 보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0주간 월요일>(10.24)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13,12)
'자유와 해방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루카13,10-17)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안식일의 의미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왜 하느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는지를 밝히십니다. 그리고 그런 분을 믿고 따라가고 있는 우리의 삶 역시 어떠한 삶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해방'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 의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여 있었던 여자,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던 여자를 살리십니다. 그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율법이라는 외적인 틀, 보여지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회당장은 분개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선자라고 질책하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13,16)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자유와 해방이십니다.
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자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안식일, 곧 주일의 참의미입니다. 안식일(주일)은 자유와 해방의 날입니다.

오늘 독서(에페4,32-5,8)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해방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 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4,32-5,2)
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 그래서 자유와 해방이 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30주간 화요일>(10.25)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루카13,18)
'작음의 기적!'
오늘 복음(루카13,18-21)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깨알처럼 아주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듯이, 적은 양의 누룩이 밀가루를 온통 부풀게 하듯이, 하느님의 나라도 이와 같고, 이것에 비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작음의 기적'을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저는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노래를 듣고 부름을 통해 '카타르시스(catharsis)',
곧 '정화(淨化)'의 기쁨을 얻습니다. 제가 가끔씩 부르는 노래가 '아무것도 너를'과 '태양의 찬가'와 '바램'입니다.

'바램'이라는 노래는 가사가 참 좋아 마음에 다가옵니다.
이 노래는 오늘 복음인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전하는 '작음의 기적'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는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5,24-25)

하느님과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작은 미소와 한 마디의 작은 말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번 해 봅시다!'
'한 번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월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13,12)
'자유와 해방이신 예수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4,32-5,2)
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 그래서 자유와 해방이 됩시다!

화------"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는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5,24-25)
하느님과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작은 미소와 한 마디의 작은 말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번 해 봅시다!'
'한 번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작음의 기적!'



<연중 제30주간 수요일>(10.26)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13,30)
'첫째가 되자!'
오늘 복음(루카13,22-30)은 '구원과 멸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13,24)
세례성사를 통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구원의 문이 좁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구원받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내가 받은 세례와 오늘 내가 받아모신 성체와, 그리고 오늘 내가 바친 기도가 구원의 절대적 보증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세례가 삶이 되지 않으면, 성체가 삶이 되지 않으면, 기도가 삶이 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잡을 것이다."(루카13,29)
세례를 받지 않고, 성체를 받아모시지 않고, 기도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삶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오히려 믿는 이들의 모습보다 더 나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 주변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런 사람들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루카13,27)
믿는 이들은 '심판의 때'를 향해 나아갑니다. 마지막 때에 맞이하게 되는 '심판의 기준'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입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믿는 것과 삶이 분리된 위선자의 모습이 아니라, 겸손하게 더 작은 자의 모습으로 세례와 성체와 기도의 본질을 삶으로 살아낸 모습입니다.
오늘도 첫째가 되려고 노력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겸손하게 더 작은 자의 모습으로 세례와 성체와 기도의 본질을 삶으로 살아낸 모습입니다.
오늘도 첫째가 되려고 노력합시다! 좁은길 --홀로 가고 사람이 없고 오로지 주님만 생각하고 세속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세 ---주님께서 생각해주시니 우리는 생각말자 주님만 생각하여라 아멘
 
 
 
 
 



<연중 제30주간 토요일>(10.29)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4,11)
'구원의 초대장!'

오늘 복음(루카14,1.7-11)은 '끝자리에 앉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에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혼인 잔치의 초대 비유'를 통해,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 앉지 마라.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14,8.10) 하고 말씀하십니다.
돈과 재물과 권력이 우상처럼 되어버린 세상 안에서 '자신을 낮추라는 겸손의 외침'이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11,29)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2,6-8)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겸손이 되어야 하고, 모든 덕의 으뜸인 겸손의 덕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상숭배의 유혹이 큰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내가 먼저 낮아져야 하고, 내가 먼저 져야 하고,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는 지극한 겸손의 모습을 간직해야 합니다.


겸손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놓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요, 하느님 나라 안으로 초대되어지는 '구원의 초대장'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믿고 잘 희망하고 잘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것에 '겸손의 덕'을 더하지 않으면 결코 구원의 잔치에로 초대되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탐욕과 인색과 교만'은 '구원의 결정적 장애물'입니다.

'겸손'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이라는 선물(present)'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오늘도 겸손이신 예수님이 되어 봅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