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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27주일>(10.2) -군인주일- 믿음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문제'라고 가르치십니다.


<연중 제27주일>(10.2) -군인주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10)
오늘 복음(루카17,5-10)은 '믿음의 힘과 겸손하게 섬겨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17,5)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17,6)

사도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청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문제'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믿음만' 있어도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작은 믿음만 있어도 지금 여기에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온 정성을 다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하게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믿을 수만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많은 변화들(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 방식으로 서로 사랑하는 기적,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적, 다시 돌아오는 회개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믿음의 힘에 이어지는 말씀은 '겸손하게 섬겨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원'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주인이 아니라 종의 신분이고, 일을 하고 품삯을 요구하는 품꾼이 아니라 주인의 종이기 때문에, 주인의 분부를 다 마쳤다 하더라도 어떠한 요구를 할 수 없고,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믿음과 분명한 나의 신원 인식을 통해 날마다 크고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 봅시다!
오늘은 '군인주일'입니다. 나라와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애쓰는 군인들과 군 복음화를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나의 작은 사랑을 드러냅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진안리성지.
여우목 -이윤일 요한  103위 성인중 103번째 홍주 1840년  나중 서요셉 1년 박요한 다른곳에서 순교
한싥교우촌 회장님 38명 -문경관아 -심문 -상주 -이윤일 요한(양반 )공소회장 3개월  1달 3번 9번   여우사냥 길목 -만들어진 교우촌  30명 셰례받게함  착하게 삶 온화 탓할 일  하지않음  아멘 문경관하
마원성지---정도영 베드로 신부님 


<연중 제27주간 월요일>(10.3)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10,37)
'행동으로 사랑하자!'
오늘 복음(루카10,25-37)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합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러자 율법 교사가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십니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에리코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되었는데, 사제와 레위인은 그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큰 친절을 베풉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사제와 레위인처럼 나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이를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지?
사제와 사제 곁에서 봉사하던 레위인은 율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가장 큰 계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머리로만 사랑했지, 행동으로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제와 레위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았던 사마리아인은 '행동으로' 사랑했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은 말과 행동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합시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으로 사랑합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이병우 루카 신부---이뿌게 마음으로 꽉 차게 익어가면 참 좋겠습니다 
제목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10.4)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10,42)
'Alter Christus'
(또 하나의 그리스도)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인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 드릴 음식 준비로 분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마르타가 예수님께 다가가 바쁜 자기를 도우라고 동생 마리아에게 일러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이고,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은 무엇일까? 나의 구원에 필요한 한 가지, 내가 선택해야 할 좋은 몫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평화와 기쁨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고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구원에 필요한 한 가지에, 단순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신 분, 필요한 한 가지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좋은 몫으로 선택하신 분, 그래서 '또 하나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 라고 불리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사부축일을 맞이한 모든 프란치스칸 가족들과 오늘 영명축일 맞이한 모든 분들께 마음을 담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닮읍시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단순하고 철저하게 필요한 한 가지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좋은 몫으로 선택합시다!

"평화의 사도이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
*****오늘프란치스코영명축일이지요?
진심으로축하드립니다.

*****네 고모님  "으 음 ~~~걈샤합니당 울 고모님 " 울 떼고 ~~ 부끄부끄하면서 얼굴 빨개졌어요

<연중 제27주간 수요일>(10.5)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11,1)
'주님의 기도!'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 우리가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바치는 기도인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고, 하느님의 나라인 아버지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것과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나에게 잘못한 이를 내가 먼저 용서할 테니,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이 전하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 복음(일곱 개)과는 달리 '다섯 개의 청원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기도이고, 그래서 기도의 완전한 모범입니다. 이 완전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기도를 우리는 어떻게 바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천 여 년 전에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서 기도하는 법을 직접 가르쳐 주셨는데, 아직도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기도의 보편적 정의'는 '하느님과의 대화'인데, 나는 하느님과 어떻게 대화하고 있는가?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맨날 나의 육적인 필요만을 청하는 '유아틱한 대화만'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청하는 '성숙한 대화'를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대화할 때 너무 빨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대화하면 하느님께서 잘 알아들으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대화할 때에는 천천히 대화해야 하고,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마음인 담긴 대화가 아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담긴 솔직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런 대화, 그런 기도를 지금 여기에서 자주 바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7주간 목요일>(10.6)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11,9)
'믿음과 신뢰의 문제!'
오늘 복음(루카11,5-13)은 '끊임없이 간청하여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무엇인가를 간청한다는 것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넉넉하고 넘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없고, 그래서 청할 것도 없다."

과연 그럴까요?
세상 기준 안에서만 보면,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 안에서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꽤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죽음 저 너머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청할 것이 꽤나 많을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을 청하고 받고 하는 문제는 내가 청하는 것을 주시는 분께 대한 '믿음과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청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청하는 것을 주시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권한 밖의 일입니다.
나는 단지 청하는 것을 주시는 분께 대한 단순한 믿음과 신뢰를 드러낼 뿐입니다.

'왜 내가 청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가?' '왜 내가 청하는 것을 빨리 주시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내 권한 밖의 문제입니다. 나는 단순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청할 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청하는 것을 당장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내가 원하는 때에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드러내거나 짜증을 내면서 평화를 깨트리지 말고, 믿음과 신뢰 안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단순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공동체 안에 필요한 것을 간청하도록 합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나는 그것을 청하고 있는가? 또한 청하는 것을 주시는 분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드리고 있는가?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11,13)
이병우 루카 신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7)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11,20)
'나 자신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자!'
오늘 복음(루카11,15-26)은 '예수님과 베엘제불'과 '되돌아오는 악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베엘제불은 마귀의 우두머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에 들려 말을 못하는 이를 고쳐주시자, 군중 가운데에 몇 사람이 예수님께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당신께서는 베엘제불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고, 그런 구마기적이 일어나는 바로 그곳이 하느님의 나라다.' 라는 의미의 말씀과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구마기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인의 삶'은 너와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나를 무너트리려고 하는 '나쁜 영(마귀)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 편에 서서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우리의 전구자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은(10.7), 1571년 그리스도교 연합군이 이슬람 제국의 군대를 무찔러 승리한 날입니다. 이 승리가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의 힘입어 승리했다고 여겨진 것에 기인해서 만들어진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와 하느님의 손가락(힘)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과 마귀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화재 후 다시 복구된 노트르담의 세계적인 대성당.
심금을 울리는 음악소리와 웅장한 분위기는 오래 묵은 체증을 씻어 주네요. 몇번이고 또 듣고, 웅장한 모습을 보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연중 제27주간 토요일>(10.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8)
'참행복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1,27-28)은 짧은 복음으로, '참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참행복'은 육적인 관계 안에 있지 않고, '영적인 관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48.50)
저는 참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형제도 많고 누이도 많고 어머니도 많기 때문입니다. 2년 전에 나를 낳아 주신 육신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갈라3,22-29)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3,2-28)
'육적인 것에서 얻어지는 행복'은 이 세상 떠날 때에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행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행복'은 영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행복이며, 이제와 영원히 남아있게 됩니다.
성모님께서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이유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행복한 사람들이 됩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가 되어 주고, 누이가 되어 주고, 어머니가 되어 줍시다!  넵 !!!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