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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26주일>(9.25)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사랑의 나눔'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으로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연중 제26주일>(9.25)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영원한 생명!'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루카16,25)
그리스도인들은 왜 성당엘 다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첫 번째 성사인 세례성사예식 때 주례사제로부터 받는 질문과 세례자의 대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신앙을 청합니다."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믿겠다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지막 종착지'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다리 건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희망'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입니다.
두 사람의 처지가 여기(현세)와 저기(내세)에서 뒤바뀝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가 죽음 저 너머에서는 '영원한 벌'을 받고 있습니다. 반대로 먹을 것이 없어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워 있었던 라자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부자의 인색'과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1티모6,12.14)
오늘은 '세계 이주민과 난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그들이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말씀하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입니다. '나의 사랑과 나눔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나의 인색을 드러내지 말고, 그래서 영원한 벌을 받지 말고, '사랑의 나눔'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으로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아들장호결혼식은잘하셨지요.수고하셨습니다.좋은성가정을이루기위해서는축복을받을준비가되어야지요.기도합니다.부모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수고하셨어요.안녕~
♡♡♡

*****네 고모님♡♡♡ 고모님의 사랑♡♡♡은 큰 힘이 된답니다. 덕분에 장호결혼식은 잘 치렀답니다 날씨도 좋고 참 아름다웠답니다.  우리  주님께  감사드려요♡♡♡

<연중 제26주간 월요일>(9.26)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9,48)
'가장 작은 사람?'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곧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9,48) 그리고 이어서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9,50)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사람의 조건인 '가장 작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제와 어제(9.24-25) 마수걸이 모금을 하러 전북 완주에 있는 봉동성당을 다녀왔습니다. 8년 전에 산청 성심원에서 만나 형동생하기로 한 형님 신부님이 사목하는 본당입니다. 형님 신부님께서 적막강산(寂寞江山)을 좋아하셔서 그런지, 어린이에서부터 어른들까지 신자들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친절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은 이처럼 마음이 예쁜 사람들, 마음이 아름다운 미인(美人)들이지 않을까... 마음이 아름다운 미인은 또한 마음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아름다운 영인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드러나는 욥처럼 모든 것을 잃는 고통이 찾아와도 결코 믿음이 흔들지 않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기1,21)
저는 '가장 작은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묵상하셨는지요?
이병우 루카 신부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9.27)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루카9,53)
'예수님을 맞아들이자!'
오늘 복음(루카9,51-56)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말씀'입니다. 유다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으면서 구원에서 배제되어 이방인 취급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9,54)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주님으로 모시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주님의 삶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한 우리들입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 우리의 영과 육을 건강하게 하는 길이고, 죽음 저 너머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하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사마리아인들처럼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죽음의 길을 걸어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것은 주님의 뜻을 맞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뜻대로 내 좋을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섭리)에 불만과 불평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자살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죽음의 길에서 돌아서서 생명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십니다.
오늘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임을 깨닫고, 일생을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신, '모든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이신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과 빈첸시오 영적 가족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처럼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을 맞아들이면서 그분의 뒤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6주간 수요일>(9.28)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9,58)
'예수님을 따르려면!'
오늘 복음(루카9,57-62)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려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나를 따라라."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첫째와 셋째 사람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들이고,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서 부르신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니,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사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일인 죽은 이들의 장사와 가족 관계까지도 뒤로 하면서, 예수님을 첫째 자리에 놓고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

고난의 길 뒤에는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이미와 아직의 하느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뒤를 기쁘게 따라가려고 합니다.아멘!!!
♡ㅇ♡네 최장명 아기예수의 아네스 여기 있습니다 ♡ㅇ♡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14,17)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만 잘 기억해도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와 해방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그리스도)로 믿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이나 사물 또는 재물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도 함께 나누었지만, 고통 없는 기쁨 만을 찾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믿음인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고통 앞에서 쉽게 포기합니다.

오늘도 참되게 믿으면서 인내심을 갖고 예수님의 뒤를 잘 따라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9.30)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10,16)
'회개하지 않는 자들!'
오늘 복음(루카10,13-16)은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그리고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루카10,13.15)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신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 고을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하느님을 배척했습니다. 그 '배척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매일 아니 매순간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말씀으로', '성체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사제의 강론을 통해서도',
'형제자매들의 말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 모든 다가오심의 목적은 '나의 구원'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가오심의 내용은 신앙의 핵심이요, 믿음의 본질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배척하지 말고 이 사랑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루카복음 10장 16절'은 '제자들과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연대성', 곧 제자들을 배척하면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배척하면 하느님을 배척하는 것이라는 연대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혹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너를 배척하지는 않았는지?
날마다 하느님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양식으로 전해주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를 배척한 적은 없는지?

한번 각자의 모습을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잘 전해지도록, '대중 라틴말 성경'인 '불가타(Vulgata) 성경'을 우리에게 전해 준 '성 예모니모 사제 학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로니모 성인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10.1)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10,21c)
'하느님 아버지의 뜻!'
둘씩 짝지어 파견 되었던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루카10,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10,20)
믿는 이들의 희망이요 목적이요 기쁨은 '나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과 목적과 기쁨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내 뜻이 아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시월의 첫 날인 오늘은 '작은 꽃'(小花)이라고 불리는 '소화 데레사 성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15살의 나이로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서 결핵을 앓다가 23살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셨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수호자'로 불리는데,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12장과 13장을 읽고 이렇게 말합니다. "오 제 사랑이신 예수여!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 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자서전 中에서)
우리도 소화 데레사 성녀를 본받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고, 너에게 사랑이 되어줍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