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9.11)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15,10) '오늘도 또 돌아가자!'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전해지는 말씀인 '루카복음 15장 1절에서 32절의 말씀'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 그리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가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복음 중에 복음', 곧 '기쁜소식 중에 기쁜소식'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나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우리들, 자주 죄의 늪으로 떨어지는 우리들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제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 그것은 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리라."(화답송) 그리고 '아버지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카15,21)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구원의 길'입니다. 내가 잘나거나 무엇을 잘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죠.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 극진한 사랑 앞에서 내가 무엇을 잘했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처럼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1,15-16)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그리고 자비이신 아버지께로 또 돌아가 나의 약함을 고백하고 다시 살아납시다! 그리고 모세의 간절한 중재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주님께 간절한 중재기도를 바칩시다!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주소서."(화답송)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24주간 월요일>(9.12)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7,9) '이방인의 믿음과 겸손!' 오늘 복음(루카7,1-10)은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백인대장'은 '사병 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던 로마장교'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백인대장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 이방인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면서 예수님께 큰 믿음과 겸손을 드러냅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7,6.7)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큰 믿음과 겸손을 보시고 크게 감탄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그리고 그의 아픈 종을 고쳐주십니다. '이방인'은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던 유다인들이 다른 민족을 가리켜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 이방인들은 유다인들부터 소외를 받았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들과 가까이하지도 않았고, 더 결정적으로는 이방인들을 구원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가까이 하시면서 그들을 구원에 포함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나도 이방인이지 않을까?? 생각과 말과 행위로 구세주 예수님을 잘 따르지 않는 이방인?? 매일 미사를 드릴 때마다, 성체를 받아모시기 직전에 우리도 백인대장의 믿음과 겸손을 드러냅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입으로만 드러내는 믿음과 겸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는 믿음과 겸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크게 칭찬받고, 아픈 영, 죄로 물들어 있는 영이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9.13)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7,14) '측은지심이신 예수님!' 오늘은 설교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루카7,11-17)은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의 '죽은 과부의 외아들을 다시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불쌍한 처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의 죽었던 외아들을 '말씀으로' 다시 살리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오늘 복음은 우리를 향한, 불쌍한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드러냅니다. 과부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나 간절한 청은 나오지 않고, 오직 불쌍한 사람을 가엾이 여기시는 '예수님의 측은지심' 만이 드러납니다. 측은지심이신 예수님께서 죽은 불쌍한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시자,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루카7,16) 그리고 예수님의 이 이야기, 곧 복음이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갑니다. 나인의 불쌍한 과부에게 측은지심이 되어주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의 측은지심'이 되어주십니다. 그 주님께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죽고 싶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외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1코린1,23-24/ 복음환호송) 당신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니 얼른 다시 일어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십자가 현양 축일>(9.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3,14) 우리의 본질인 십자가! 오늘은 우리의 본질인 십자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짊어지신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경배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요한3,13-17)에서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 나무에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십자 나무에 들어 올려지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님 기도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십자 나무에 들어 올려지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셨고, 그래서 하늘로 다시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민수21,9) 구약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구리 뱀은 예수님 십자가 사건의 예표로써,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몸을 가리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성당 중심에 커다란 십자가를 걸어두었고, 십자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가정을 가보면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또한 십자가를 걸어두었습니다. 이는 믿음의 영역에서 십자가가 가장 중심이 되는 영역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바로 이 십자가가 믿음의 본질이요, 믿는 이들의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본질인 십자가를 바라보고, 삽자가의 삶을 통해 날마다 다시 살아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15)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부속가) '고통의 어머니 마리아여!' 오늘은 아들 예수님의 고통에 온전히 함께하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날'입니다. 오늘 독서인 히브리서의 말씀이 전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5,7-9) 고통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순종의 길'에 끝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당신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나무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그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으실 때까지 끝까지 당신 아들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서 좋아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6-27)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십자나무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일곱 말씀인 '가상칠언'(루카23,34; 루카23,43; 요한19,26-27; 마태27,46; 요한19,28; 요한19,30; 루카23,46) 가운데에서 '세 번째 말씀'입니다. 아들 예수님과 어머니 성모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은 '고통과 수난의 길'이고, 또한 '부활과 생명에 이르는 결정적 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 길을 잘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9월은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잘 따라간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순교자 성월'입니다. 좀 힘들다고, 좀 불편하다고,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가던 길을 멈추거나 다른 길로 가지 말고, 끝까지 인내로써 그 길을 걸어가도록 합시다! "하느님,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아드님 곁에 서서, 성모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소서."(본기도) 이병우 루카 신부 |
**사랑하는아녜스! 장호결혼을축하드려요.결혼식에가지는못하지만기도하겠습니다.지금까지 코로나 아픈수녀님들이없었는데 외출하는수녀님들 통해많은수녀님들이코로나에걸려 비상상태이라 외출을금하였어요.가정공동체를위해기도하겠습니다.축복의날이되기를기도하며 ... 안녕 **네 고모님 감사드립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기도 축복 많이주셔요 최고의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트 쁑븅**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9.16)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8,3) '예루살렘 부인들!' 오늘 복음(루카8,1-3)을 보면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열두 제자와 함께 여자 제자들도 많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여자들,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마리아 등, 예수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던 여인들, 예수님을 만나 부활체험을 한 여자들이었고, 그들이 바로 '예루살렘 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열두 제자들과는 다르게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 시대나 오늘날 우리 시대나 할 것 없이 여자들이 하느님 구원 사업에 큰 몫(희생과 봉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매님들이 없는 교회의 모습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신앙공동체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많은 자매님들에게 큰 격려와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오늘은 로마 박해 시대 때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던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그를 열심히 도왔던 '성 치프리아노 주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뜻깊은 영명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독서(1코린15,12-20)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15,13) 죽음을 이기시고 되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믿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케리그마(kerygma)', 곧 '믿음의 핵심이요 본질'입니다. 우리도 이 케리그마를 굳게 믿으면서, 여자 제자들처럼 끝까지 충실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갑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연중 제24주간 토요일>(9.17)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 축일-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루카8,8) 오늘 복음(루카8,4-15)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좋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이 나의 삶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첫째로 해야 할 일은, '말씀을 잘 듣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간직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쉽게 악마에게 지고,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믿음의 힘으로부터 오는 '평화'가 마음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인생 걱정이나 거짓 평화를 가져다주는 재물이나 쾌락에 빠져 있으면, 지금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리지도 않고, 간직할 수도 없습니다. 연중 제24주간 토요일인 '9월17일' 오늘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1224년에 라베르나 경당에서 주님의 거룩한 다섯 상처인 오상(五傷)을 받으신 날'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五傷)이 주는 의미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합일(하나됨)'을 의미합니다. 곧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성 프란치스코의 단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단순성', 곧 '지금 여기에서 복음을 그대로 살려고 애쓰는 복음의 단순성'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가 복음으로 돌아가, 믿음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게 하는 것.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이제와 영원히 나를 살게 하는 길'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여, 하나가 되지 못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