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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연중 제16주일>(7.17) -농민주일-


<연중 제16주일>(7.17) -농민주일-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카10,39)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7월 셋째 주일인 오늘은 '스물여덟 번째 맞이하는 농민주일'입니다. 농민들의 땀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특히 지구공동체와 어머니이신 땅을 살리고, 우리의 몸도 살리기 위해 자연 친환경농법인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의 수고와 땀을 기억하고, 그 소중한 땀의 결실들을 많이 애용할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
곧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농업이 살아나야 합니다.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농촌 공동체를 살려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농산물을 애용해야 하고, 특히 생태계와 우리 몸을 살리는 유기농산물, 생명농산물들을 애용해야 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15,1)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생명농업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잘 보전할 것을 바라십니다.

오늘 복음(루카10,38-42)은 마르타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들인 말씀입니다. 귀한 손님께서 자기 집을 방문해 주셨으니, 마르타는 맛나는 음식 대접을 위해 분주합니다. 하지만 그의 동생 마리아는 바쁜 언니를 돕지 않고, 예수님 발치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르타가 불만을 드러내자,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마리아처럼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르타처럼 행동으로 실천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생명의 말씀을 먼저 듣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행동으로 동참합시다!
이것이 '농민주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복음환호송)

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16주간 월요일>(7.18)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마태12,39)
'십자가 표징의 예표인 요나의 표징!'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표징을 요구하는 그들을 두고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 라고 하시면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마태12,40)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악하고 절개 없는 사람들(세대)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 있는 표징을 요구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과 당신의 십자가(죽음) 표징을 언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시기까지 사흘 동안 땅속에 있었던 표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신 표징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는 '이 표징 밖에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처럼 우리도 주님께 표징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게 어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복음은 그런 우리에게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표징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미카6,1-4.6-8)는 그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6,8)
그것은 곧 '회개'입니다.
'내가 죽는 회개'입니다.
'그것도 오늘(지금)!'
그런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6,8) '내가 죽는 회개'입니다.
'그것도 오늘*******(지금부터)!'*****************
오늘이그런 날이 되었으면 차암 좋겠습니다.

<연중 제16주간 화요일>(7.19)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형제들이냐?"(마태12,4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과 만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가 예수님께 이런 사실을 알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르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49)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쓴 소리로 들려오기도 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관계를 혈연관계를 훨씬 뛰어넘는 관계로 확장해 주십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어머니요 형제요 누이가 되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오늘 다시 태어난 이들이 모두,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깊이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혈연관계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내 어머니요 형제요 누이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마음 안에서 보면 그들에게 나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먼저 서로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이 뜻을 실행하려고 애쓰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이들이 바로 나의 어머니요 형제요 누이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합시다!

"저에게도 어머니요 형제요 누이들이 되어 주십시오."
소박한 저의 복음묵상글을 받아보시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려고 애쓰고 있는 여러분들은 저의 어머니요 형제요 누이들입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들을 늘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저두요  울 이병우 루카 신부님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7.20)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좋은 땅에 떨어졌다."(마태13,1-9 참조)
'내 마음의 밭?'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비유에서 말씀하시는 '씨'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말씀이라는 씨앗이 떨어지는 '땅'은 '마음의 밭'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 마음의 밭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고, 이것이 너와 세상이라는 또 다른 밭으로 전해져서 더 큰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는 '내 마음의 밭'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의 밭이 비유에서 말하는 길이거나 돌밭이거나 가시덤불 같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좋은 땅의 모습이면 백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내 마음의 밭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믿는 이들이 행하는 '영적인 행위들',
곧 미사 참례나 말씀 필사나 묵상이나 기도 등은
내 마음의 밭을 잘 가꾸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백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는 바로 '성령의 열매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것처럼 좋은 것이 어디 또 있을까?
내 마음의 상태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로 가득하다면, 이것이 바로 말씀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 곧 기원전 536년 남유다 왕국이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완전히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본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전한 주님의 말씀은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과 유배의 삶'은 이를 외면한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늘 나의 첫째 자리에 주님께서 머무실 수 있도록, 그래서 멸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백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는 바로 '성령의 열매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늘 나의 첫째 자리에 주님께서 머무실 수 있도록, ***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처럼 좋은 것이 어디 또 있을까? 평화방송미사중 신부님강론--신앙인이기전에 좋은사람이되고 좋은인품위에 신앙 신비 은총이 쌓인 사랑이 차오르면 좋겠습니다.

<연중 제16주간 목요일>(7.21)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마태13,15)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13,11.13)
'비유'는 알아듣기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역할도 하지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역할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허락된 이들에게만 하늘 나라의 신비를 전달하기 위해서 비유가 사용되었다고 전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7,6)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처럼, 마음이 무디고 제대로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린 사람들, 메시아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는 않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당신을 잘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13,16)
열려져 있는 마음이 이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어떠한 틀에 갇혀 있는 사람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 그들이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비유로 밖에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부수고, 나와 다른 너와 주님을 받아들이는 행복한 신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1코린6,14)
이병우 루카 신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7.22)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20,15)
'애타게 주님을 찾자!'
오늘은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8,2) 라고 소개되고 있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일곱 마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큰 고통과 시련 속에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아마도 죽고 싶었을 마음이었고, 또한 그 큰 고통과 시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인 '아가서의 말씀'처럼 자신을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을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아가3,2)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 큰 고통과 시련에서 해방됩니다. 그리고 끝까지 충실하게 예수님과 함께합니다. 예수님께 큰 사랑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제자요, 협조자요, 봉사자가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나는 영광을 누립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20,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물으십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20,18)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나의 구원자요 해방자이신 주님을 끊임없이 찾고, 그래서 주님을 만나 크고 작은 고통과 시련에서 해방되어, 너와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는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화답송)
이병우 루카 신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 김 마르가리타

삶을 묶고
희망을 묶고
절망의 늪에서
묶인 사슬을
풀어주신 분

스승이었고
해방자였던 분
그분을 찿고
애타게
찿고
또 찿아
헤맨다

텅빈 무덤에서
울부짖으며
그분
사랑하는 그 분
찿고
또 찿는다

마리아야!
나를
나를 아시고
나를부르신다

랍뽀니!
애타게 찿던 그분
그분께서
나를부르시네

나를
나를부르시네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 진날
기쁘고
기뻐
온 동네에 외친다

이제
부활의 증인되어
부활하신 그 분을
소리 높혀
불러본다

온갖 족쇄에 족쇄에 묶인
나를
풀어주신 그 분 음성에
기쁨의 찬가
부르며
내가 살아간다





<연중 제16주간 토요일>(7.23)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13,30)
'회개의 가능성!'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마태13,24)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오늘 복음은, 제목이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밀 가운데에서 함께 자란 가라지는 원수가 뿌려놓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입니다.

우리와 세상이 생각하는 것은 밀 가운데에 있는 가라지를 지금 당장 뽑아내는 것인데, 예수님의 생각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 너무 달라서 의아한 마음마저 갖게 합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사도 바오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1코린11,19)
오늘 복음에서 비유로 등장하는 '밀'은 '의인'을, 그리고 '가라지'는 '악인'을 지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이 함께 공존하도록 내버려 두시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가 '회개의 가능성 때문이 아닐까???'
다음의 예수님 말씀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10,31)

이는 밀이 가라지가 되고, 가라지가 밀이 될 가능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늘 깨어 끝까지 밀의 모습인 의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가라지의 모습인 꼴찌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절기(節氣)로 대서(大暑)입니다.
장마와 함께 더위가 극에 달하는 시기입니다.
이 대서(大暑)가 이 대서(大恕)였으면, 곧 서로가 크게 용서함으로써 더위도 이겨내고, 그리고 지금 첫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