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6.19)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루카9,17) '성체의 기적!' 오늘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11,24-25) 그래서 매일 사제의 손을 통해 거행되는 '성체성사(미사)'가 거행되고 있고,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현존'하시면서 이제와 영원히 우리를 살리는 '양식'이 되어 주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있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6,27)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7)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믿는 이유이며, 미사에 참석하는 근본이유이며 목적입니다. '성체의 기적!' 성체의 기적은, 매일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우리의 영적 양식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이시며, 합당한 자세로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모시고 '내가 변하는 기적'입니다. 곧 나도 너에게 먹히는 기적, 생명이 되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체를 받아 모시기에 합당한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몸과 마음이 주님께로 온전하게 돌아오는 '회개'입니다. 저도 이 회개를 위해 노력합니다. 지난 금요일로 4복음서 필사를 마쳤고, 지금은 사도행전 필사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미사를 온 정성을 다해 집전하고, 성체와 성혈을 받아모시고, 나도 예수님처럼 되는 성체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노력합시다! |
<연중 제12주간 월요일>(6.20)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7,1) 나의 구원과 너와 우리 모두의 구원에 직결되어 있는 첫째는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좋으면, 곧 내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 계시면 우리 안에서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내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면, 결코 너를 심판하거나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습니다. 너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험담을 하지 않습니다. 설령 부족한 모습을 보더라도 성모님처럼 마음에 간직합니다. 입으로 떠벌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니 너를 심판하거나, 너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은, 지금 내가 하느님 안에 있지 않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7,3.5) 오늘 독서인 열왕기 하권의 말씀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몰락,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거역했던 이스라엘의 몰락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2열왕17,14)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내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공동체가 함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present)이라는 선물(present)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오늘도 모두를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하느님 안에 머물면서, 너에 대한 심판과 험담을 멀리합시다! |
<연중 제12주간 수요일>(6.22)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마태7,15) '그들이 맺은 열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메시지(뜻)를 전하는 사람'이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마태7,15-20)은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7,18)고 하시면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7,20)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맺은 열매?' 그것은 바로 '예언자들의 행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실을 보면, 누가 참 예언자이고, 누가 거짓 예언자인지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지금 필사하고 있는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그때부터 참 예언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담대하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참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하느님의 힘이며 은총입니다. 믿는 이들은 모두 예언자들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실로 세상에 하느님을 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이슈나 문제 앞에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하느님과 하느님의 정의를 전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들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종종 찾아오는 '고통이나 이익 앞에서', 내가 하느님의 사람이고, 하느님을 전하는 참 예언자인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예언자'십니다. 시작부터 마침까지 하느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온전하게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 열매'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생각을 하고, 예수님의 말을 하고, 예수님의 행위를 하는, '참 예언자의 길'을 걸어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작부터 마침까지 하느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온전하게 드러내셨기 때문에 참예언자 이십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 열매'***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생각을 하고, 예수님의 말을 하고, 예수님의 행위를 하는, '참 예언자의 길'을 걸어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잡초는 없습니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00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종자은행을 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사의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제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답니다.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요.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가 타고난 자신 만의 아름다운 자질을 맘껏 펼치시어 "들풀"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이름 없는 들풀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에 주차요원으로 근무하는 분 중에서 인사도 잘하고 밝은 표정으로 근무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뭔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근무하는 분도 있습니다. 본인은 전직이 화려해 이런 곳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자리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감사하게 일하는 사람은 고귀한 분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자리에 앉았다 해도 잡초와 같아서 뽑힘을 당하는 분도 있습니다. 현재 자기가 있는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자리에 있던 꼭 필요한 분이 꼭 되시기 바랍니다. -인터넷 좋은 글- 저희 양보 소나무밭에 죽순이 매해 나온답니다 .늘 그 생각하며 잘라버린답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자리를 잘못잡은죄 안타깝고 슬프더라구요 우리는 옮겨갈 수있으니 자신의 자리에 자리잡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 |
늘 감사합니다 이렇게 모두 잘 있습니다. 다시 만날때까지 늘 함께 똘똘 뭉쳐 행복하게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23)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요한"(루카1,57.63) '선구자!' 오늘은 그리스도에 앞서 파견된 선구자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원래는 내일이지만, 내일이 '예수성심대축일'인 관계로 교회는 오늘로 이동시켜 지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의 구원자로 파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앞서 파견된 선구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마련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고,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는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 상태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구약에 예시된 메시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줄 강한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뒤에 오실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구원자)로 생각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런 그들에게 단호하게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사도13,2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구자!' 예수님의 구원 행위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 안에 세례자 요한과 같은 선구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도나도 선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실천하는 작은 사랑과 이런저런 이유로 냉담하고 있는 교우들과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노력하는 작은 복음화 활동들은 세례자 요한이 충실하게 지켜 낸 '또 하나의 선구자 사명'입니다. '또 하나의 선구자', '또 하나의 세례자 요한'이 많아져야 할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만의 잔치, 있는 이들과 잘하는 이들만의 잔치가 아닌, '모두의 잔치'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함께 최선을 다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6.24) -사제 성화의 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15,6) '회개하는 죄인이 되자!'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사제 성화의 날', 곧 이 땅에 많은 사제들이 스승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목을 할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사제들과 믿는 이들이 닮아야 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예수님 친히 이 세상에 드러내신 마음, 복음 안에 드러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예수님의 마음'은 '측은지심인 가엾은 마음'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약한 이들, 곧 가난한 이들, 병자들, 죄인들을 향해 있는 마음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되찾은 양의 비유)이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에제34,15-16) "우리가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로마5,6)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15,6) '되찾은 양의 비유' 안에 드러난 예수님의 마음, 곧 양 백 마리 가운데에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시는 마음, 그 양을 찾아 나서시고 찾은 다음 매우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만납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실 것이다."(루카15,7) 예수님을 더 기쁘게 해드리는 회개하는 죄인이 됩시다! ******* 예수님의 마음이 됩시다!*********** ?♂️ 날김 먹기 (꼭 보세요)? ?? 김은 뇌는 물론 머리 카락까지 새 것으로 만든다. 나이가 들면 뇌가 노화되어 기억력이 약해져서 건망증이 오는데 하루 김 한 장이 이를 되돌릴 수 있다. ?♂️ 뇌세포에 독소가 쌓여 뇌가 산성화되면 기억이 지워지고 인지력, 이해력 등이 떨어진다. ?♀️ 기억력저하는 대개 납이 몸속에 쌓여 납 중독으로 인해 생긴다. 뇌 세포에 기억을 기록하는 소자는 아연인데 인체가 납과 아연을 구별하지 못한다. ?♂️ 아연으로 기록한 것은 도장을 새긴 것과 같아서 오래 남지만 납으로 기록한 것은 마치 물에 쓴 것과 같아서 즉시 지워져서 없어져 버린다. ?♀️ 김과 파래를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은 식물성 유기 아연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런데 김이나 파래에 열을 가하면 아연을 비롯한 미네랄 성분이 날아가 버리거나 활성을 멈춘 불용성 무기물 상태로 변한다. ?♀️ 그래서 김이나 파래는 반드시 날것으로 먹어야 한다. 날 김을 하루 한 장씩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콩팥 기능도 좋아진다. 김에는 우수한 단백질과 칼슘, 철,마그네슘, 아연 같은 알칼리성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다. ?♂️ 정자의 주요 성분은 아연을 비롯한 알칼리성 물질로서 날 김이나 파래로 정을 길러주면 뇌와 신장과 머리칼은 물론 무병장수 한다. ?♀️ 하루 한 장 이상씩 1년만 꾸준히 먹으면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까맣게 바뀐다. ?♂️ 김을 굽든지 기름과 소금을 발라 조미하여 먹으면 효과가 없을 뿐더러 반대의 결과가 온다. 김은 파래가 많이 섞여 있는 돌김이 가장 좋다. ?♀️ 뇌 분야로만 말할 것 같으면 다시마나 감태나 매생이가 김과 파래를 따라 올수 없다. ?♂️ 날 김을 더 맛있고 효과 있게 먹을 방법은 김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 생수에 조선간장을 풀고 날김을 두어 장 찢어서 넣는다. 약콩으로 만든 간장 이라면 더 좋고, 역시 김가루라면 더 저렴하고 편리하다. 생수에 조선 간장을 풀고, 날김을 두어 장 찢어서 넣는다. 날 김과 조선간장의 조합은 김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친 몸을 풀고 활력을 일으켜 식욕이 없는 환자식으로도 좋다. ?♀️ 더구나 김과 파래는 암과 같은 종양도 가볍게 녹이는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거기다 조선 간장은 당뇨를 없애고 만 가지 해독작용을 한다. ?♂️ 식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을 때 뿐 아니라 김국을 매일 낮 식사 때마다 국 대신 만들어 드시면서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 "김" 명칭의 유래 ] "김"은 신라시대 부터 먹었다고 한다. 그때의 명칭은 "김"이 아니라 "해의"(海衣)라고 표현이 되어 있다고 한다. "김"을 양식 하였던 시기는 (조선실록)기록에 의하면 "김여익"(병자호란 의병 활동)이라는 사람이 인조 18년(1640 년)에 "광양 태인도" 에서 김을 처음 양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조 왕이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고 짓고 많은 백성들이 쉽게 부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도 신나게 즐겁고 행복한 하루 만드시기 바랍니다.^^ 6/25 노란백합 오늘은 흐드러지게 피어 더 예쁩니다.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25)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18,22) '사랑의 일치!' 오늘은 한국 교회가 한 마음으로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일치와 평화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지 72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전쟁은 안 됩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됩니다. 72년 전에 일어난 전쟁을 경험하신 분들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깊이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면 공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평화와 하느님 정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6.20(월)~24(금), 마산교구 사제단 피정이 마산가톨릭교육관에서 있었습니다. 영성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홍성남(마태오) 신부님께서 피정 강의 해 주셨습니다. '심리치료'는 내 안 깊은 곳(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나(내적자아.상처받은 아이)'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화가 나면 화를 참거나 마음속에 쌓아두지 말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고성방가나 욕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를 통해서 풀어내려고 애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이것이 내적 자아를 치료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에 하나를 더하면 더 잘 치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독서와 복음이 말하고 있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사랑'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하느님의 용서인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온전하게 믿고 받아들일 때, 온전한 내적치료도 가능하고, 너에 대한 용서도, 북한에 대한 용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4,32) 이병우 루카 신부 |
'미사의 은혜 > 연중시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제14주일>(7.3)예수님의 낙인(인호) (0) | 2022.07.04 |
---|---|
<연중 제13주일>(6.26) -교황주일- 연중 13주간 (0) | 2022.06.26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6.12) 연중 11주간 (0) | 2022.06.12 |
연중 제10주간 '율법의 완성과 양다리?' (0) | 2022.06.08 |
연중 제8주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십니까 Why do you notice the splinter in your brother’s eye? (0) | 2022.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