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으로 가거라 - 칸탈라메사 추기경 - 1독서: 사도 5, 12-16 2독서: 묵시 1, 9-11.12-13 복음: 요한 20, 19-31 부활 둘째 주일 복음은 다락방에서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두 번 나타나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출현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숨을 내쉬며 말씀하시길, “성령을 받아라.” 파견되는 엄숙한 순간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사도들의 파견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올해 우리와 읽고 있는 루카 복음에서 두 제자는 부활하신 분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데, 성경을 설명하고 빵을 나누는 일화로 이는 예루살렘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파견의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엠마오는 복음서에서 나오는 장소 중에 정확하게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고대에 엠마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마을이 서너 개 있습니다. 아마도 이 또한 전체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상징적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엠마오는 이미 모든 곳에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길과 모든 방향에서 제자들과 동행하고 계십니다. 역사적 문제(시각)를 논하는 이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사도들의 파견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정말로 그분의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교회 공동체가 탄생한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연계성을 가지고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고요?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교회가 생겼다고요? 역사적 자료와는 달리 부정적으로 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합니다. 열두 사도의 선택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공동체에 자신의 생명을 바쳤고, 자신의 삶과 가르침이 계속될 것을 예견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각을 확장시켜주는 이 모든 비유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포도밭 일꾼들의 비유, 꼴찌가 첫째가 되는 비유, 다른 사람들은 제외되는데 동서에서 모여 아브라함의 식탁에 앉을 자와 같은 비유들을 생각해 봅시다. |
<부활 제2주일>(4.24) -하느님의 자비 주일-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20,22-23) '의심을 버리고 믿자!' 믿는 이들의 목적은 항상 오늘 부활하는 것이고, 마침내는 영원히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항상 오늘 들려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온 정신과 마음을 다해 들어야 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주간 첫날 저녁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시면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어주시며, "성령을 받아라." 이 성령을 받고 너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토마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20,25) 하고 말하는 토마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서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7.29)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제2독서를 통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묵시1,17-18) 의심을 버리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굳게 믿는 것! 의심을 버리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이신 주님을 굳게 믿는 것!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부활하는 길이고, 영원히 부활하는 길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믿고, 지금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실천합시다! |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4.25)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사명!'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축일을 맞이한 마르코 형제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사도가 선교 여행을 할 때 동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고, 네 복음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AD70년경) 마르코 복음을 기술한 분입니다. 오늘 복음(마르16,15-20)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복음선포'는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와 지금 여기에 있는 또 하나의 제자인 우리들에게 선포하신 '절대사명'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선포의 사명을 부여받은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나는) 복음선포의 절대사명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복음선포는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 독서(1베드5,5-14)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계십니다."(1베드5,5-7) '겸손의 덕'을 쌓고, '겸손의 옷'을 입으라고 권고합니다. '겸손의 덕'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완성시키는 '최고의 덕'(으뜸 덕)입니다.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서 한없이 나 자신을 낮추려고 애쓰면서, 겸손하게 말과 행동으로 세상에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복음 환호송) |
고모님 !! 선교분과장을 새로이 맡아 기도하며 찾은시 좋아서 보내봅니다 ****오늘의 노래****** ----------------------소화 데레사 나의 삶은 한순간 지나가는 나그네 내 목숨 나를 스쳐 사라지고 마는 것 아! 주님 당신은 아십니다. 이승에서 당신을 사랑하기엔 오늘 하루뿐임을. ------------------- 좋으네요 고모님 기도해주셔요 성녀데레사께 기도와 힘도 부탁해야겠어요 요즈음 열심히제법바쁘게 그러나 차분한기도와 함께 지낸답니다 고모님 싸랑싸랑싸랑해요 하트 쁑쁑 |
<부활 제2주간 화요일>(4.2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3,14-15) '믿는다는 것!'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 이것의 의미와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믿는 우리의 모습은 결코 완전하질 못합니다. 약함도 많아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악마(나쁜영)의 유혹에 자주 걸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에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오늘 독서(사도4,32-37)에서 언급되고 있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간직하고 있었던,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전부를 비우시고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는 '한마음 한뜻'입니다. 한마음 한뜻인 이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실행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것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용서와 화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너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기적'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기적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믿음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또한 '믿는다는 것'은 언제나 자기성소다운 삶을 사는 것이고, 자기성소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이고,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나 신자들 마음 안에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단순한 믿음'이 늘 자리잡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티모테아 고모수녀님 ----아녜스는 선교를잘하수있는성령의 은사가충만해요. 가정과본당의축복이입니다. 오늘 바오로서간말씀처럼겸손은최고의 덕이라고하셨지요.명심하시고,부활하셨음을전하시며,우리도매일새로운삶을살아야함을.그리고나누며 살고사랑을실천하는교회가되어야겠지요.기도하겠습니다. 고모님을 사랑하는 조카----하느님의 도우심없이ㅡ는 아무것도할 수없음을 아는 겸손 내틀에 넣어 판단하지 않는 겸손 겸손의 덕과함께 부활과 생명을 전하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감사감사해요 고모님 깊은사랑과 기쁨을 드립니다 아멘 !!! |
<부활 제2주간 수요일>(4.27)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하느님의 사랑법!' 오늘 복음(요한3,16-21)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 이야기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을 내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십자나무에 달리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법'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법'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사랑법'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법'은 '너를 위해 자기를 죽이는 사랑'입니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죽으셨으니,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는 사랑'입니다. '이 극진한 사랑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나를 구원하고 너와 우리 모두를 구원한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신 요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가지 않고 어둠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받고 있는 심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과 지옥'은 늘 우리 앞에 놓여 져 있습니다. 나의 삶이 지옥이 아닌 천국의 삶이 되게 하려면, 하느님처럼 나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는 네가 내 앞에서 죽기를 바랍니다. 내 앞에 와서 더 무릎 꿇고 빌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너를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서로가 내가 먼저 너를 위해 죽는 사랑'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하고, 그래서 지금 여기가 다시 천국이 되게 합시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2-13) |
[티모테아수녀] [오전 7:40] 오늘복음강론을보내주신수녀님께서년피정을떠나셔 8일간없습니다. 매일미사를보셔요. [최장명] [오전 8:00] 네 ♡♡♡ 고모님♡♡♡ |
그럼요 고모님 저두 고모님이계셔서 차암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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