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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부활

부활 제3주일(생명주일)너,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계속 물으십니다.Do you love me? Jesus continues to ask each of us

부활 제3주일(생명주일)

Do you love me? Jesus continues to ask each of us
,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계속 물으십니다.
- 칸탈라메사 추기경 -

1독서: 사도 5,27-32.40-41
2독서: 묵시 5: 11-14
복음: 요한 21: 1-19

요한 복음을 읽어보면, 당초에는 20장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장은 아마도 사도 본인이나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그리스도 부활의 실재를 강조할 필요를 느껴 추가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다음 복음 구절에서 추론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참으로 육신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라고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말한 것은 이(참으로 육신으로 부활하신 것)를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구운 생선을 드시는 장면을 갑니다. 세 번을 물으십니다. “,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을 답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세 번의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세 번의 질문과 답 그리고 결론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효과적으로 의무를 부여하셨습니다. 가톨릭적 해석에 따르면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양 떼를 돌보는 임무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분께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에게 수장의 위치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 말씀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베드로가 목숨을 바쳐도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신 약속에 신실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은 세 번의 배신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다음 기회를 주십니다. 세 번, 네 번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한 번의 잘못으로 그분의 책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러는 중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주님의 신뢰와 용서는 베드로를 죽음을 불사하는 새롭고 강하고 신실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갈릴래이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교회의 시작의 순간에 그리스도의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대하는 방식을 배워, 한 번 실수한 사람들도 신뢰한다면 세상의 소외계층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우리 각자의 삶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틴은 이 복음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물으십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모든 제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교리와 경험의 집합만은 아닙니다. 이는 훨씬 친밀하고 심오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친교적 관계입니다. 그분께서 살아계신 동안에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믿습니까?”를 물으셨지 , 나를 사랑하느냐?”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수난과 죽음으로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증명하시고 나서야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답하게 하셨습니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들을 돌보아라.” 사랑의 대가를 본인이 받기를 원하시지 않고, 당신의 양 떼가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베드로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지만 수혜자는 아닙니다. 마치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 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해 주어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친밀하고 감상적인 사실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표현되어야 합니다.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사랑의 열매는 봉사이고, 봉사의 열매는 평화”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