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부활 제4주일> <부활 제4주일>(4.21) -성소 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10,11) 착한 목자! 오늘 복음(요한10,11-18)은 '착한 목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10,11) 부활 제4주일인 오늘은 '제61차 성소 주일'입니다. 성소 주일은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9,37-38)는 말씀에 따라 제정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聖召)'는 다양합니다. 가장 넓은 의미로는 '믿는 이들의 모든 자리가 성소'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에서 '특별성소, 곧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요즘 사제, 수도자, 선교사의 길을 가려고 하는 성소자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저출산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교회와 오늘 복음 안에서 특별성소가 처한 위기를 바라봅니다. 그 이유는?? 믿는 이들이 신앙의 본질인 부활의 기쁨을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별성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이 부활의 기쁨을 말과 행동으로 증거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야 할 부활의 기쁨'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너를 위해 내 것을 내놓는 것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내 것이 비워지는 기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특별성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의 약함, 곧 그들의 '개인주의'와 '정체성의 위기'와 '열의가 식어 있음'을 지적하십니다.(78항 참조)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닮은 사제, 수도자, 선교사들이 많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목자의 존재 이유와 사명'은 '너를 위해 죽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 탈출기 26,14)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4.22)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10,7) '영적인 문(門)!' 오늘 복음(요한10,1-10)은 '목자의 비유'입니다. 성소 주일이었던 어제 복음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드나드는 문(門)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을 밝히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10,7.9) 그리고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을 모두 도둑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10,10) 양 우리로 들어가는 방법은 둘입니다. 하나는 정문을 이용하고, 다른 하나는 개구멍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문으로 들어와 양들을 보살피고, 도둑이나 강도는 개구멍으로 들어와 양들을 훔칩니다. '영적인 문!'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문은 '영적인 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문'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문'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는 '회개의 문'이십니다. 예수님은 '용서와 화해의 문'이시고, '사랑의 문'이십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문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져 있고, 특히 이방인들에게까지 열려져 있는 문입니다. 오늘 독서(사도11,1-18)가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이렇게 말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사도11,18)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이러한 영적인 문을 자주 이용하고, 이 문을 자주 드나들도록 합시다! 그래서 날마다 다시 살아나고, 영원한 생명에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런 복된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탈출기 27,8) 마산교구 합천본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4.23)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10,27) '목자와 양!' 오늘 복음(요한10,22-30)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이고, 양들이 드나드는 구원의 문'이라고 이미 말씀하셨고, '예수님 당신이 메시아'시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유다인들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요한10,2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요한10,25-26)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결정적인 또 하나의 신원, 곧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완전한 드러남(계시)이신 메시아이심이 선포되는데도,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십자나무에 매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독서(사도11,19-26)는 이방인 지역인 안티오키아에 교회가 세워지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곳으로 파견된 예수님의 양인 바르나바의 믿음과 따름 때문이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11,24) 하느님 뜻에 순종하신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며, 하느님의 완전한 자기계시이신 예수님,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착한 양이 됩시다! (~ 탈출28,14)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예수님의 결정적인 또 하나의 신원, 곧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완전한 드러남(계시)이신 메시아이심이 선포되는데도,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십자나무에 매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의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11,24) 하느님 뜻에 순종하신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며, 하느님의 완전한 자기계시이신 예수님,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착한 양이 됩시다! |
제목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부활 제4주간 수요일>(4.24) "나는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요한12,47) '예수님의 바람!' 오늘 복음(요한12,44-50)은 '예수님의 말씀과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도 예수님의 신원에 관한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12,44-45)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라는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님의 신원이 다시금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빛이요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요한12,46-47) '하느님의 명령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애쓰십니다. 그러니 어둠 속을 헤매지 말고, 생명이며 빛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참제자들이 됩시다!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간절한 바람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단순하게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용서와 자비를 청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삶을 산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 내가 되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려 봅시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자라나 세상 안으로 널리 퍼져 나가게 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시며 기쁨'이십니다. (~ 탈출30,16)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4.25)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일상의 삶!' 오늘 복음(마르16,15-20ㄴ)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시고, 승천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십니다. '일상의 삶!' 복음 선포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일어나야 하고, 일상의 삶 자체가 복음 선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독서(1베드5,5ㄴ-14)는, '겸손과 깨어 있음'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권고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 권고가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가 선포해야 할 복음 선포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계십니다."(1베드5,5-7)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5,8-9ㄱ)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의 옷을 입읍시다!' '모든 근심 걱정을 하느님 아버지께 내맡깁시다!' '늘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악마(악령)와 싸워 이겨냅시다!' '교만'은 '모든 덕의 적'이며, '겸손'은 '모든 덕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이 '복음'이 되고, '복음 선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5,16-18) (~ 탈출32,29)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제목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4.2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요한14,1-6)의 제목은 '아버지께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떠나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 계신 곳에 우리도 함께 있게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14,4)고 말씀하시자, 의심의 사도인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14,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아버지 품'입니다. 곧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최종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예수님처럼 살다가려고 애를 씁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길을 몰라서, 그리고 길을 찾지 못해서 우리는 종종 방황을 합니다. 생명의 길인 진리가 무엇인지를 몰라 종종 죽음 길로 들어서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지옥의 상태를 체험하곤 합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지금 여기에서의 기쁨과 평화와 행복'입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가 기쁘지 않고 평화롭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돈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기쁜 소식'입니다. (~ 탈출 34,35)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제목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4.27)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14,9) '어디에 계시는가?' 오늘 복음(요한14,7-14)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아버지께 가는 길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요한14,7) 그러자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14,8) 하자,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요한14,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만 뵈오면 됩니다.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나는 그 예수님을 만나 뵙고 있는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성체 안에' 계십니다. '말씀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시고 하느님이신 성체와 말씀'은 늘 우리 가운데에 계십니다. '나는 성체와 말씀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지금 여기에서 만나 뵙고 있는가?' 온전한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해 성체를 바라보고, 몸과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서 성체를 받아모실 때만, 그리고 깨어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듣고 대할 때만, 우리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만나 뵈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뵙게 되면 너무 기쁩니다. 나의 영이 맑아집니다. 그러면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가정에서. 내가 머무는 삶의 자리에서. 이것이 곧 '기적'입니다. (~ 탈출 36,38)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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