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사이
친밀한 사이가 되려면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친밀함이란 멋진 극장에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는 것과 같다. 특별하게 차려입어야 귀한 시간이 더욱 특별해진다. 친밀함을 공유하는 관계는 일반적 기준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상대가 나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한다면 어떻게 내가 그 사람과 친밀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 중에서 - * 친밀한 사이는 가슴이 가까운 사이입니다. 머리로 하는 논리와 분석과 평가가 아닌 따스한 가슴으로 소통을 하는 사이입니다. '~~이기 때문에' 친밀한 것이 아니고, '~~임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사이입니다. 물질의 차원만이 아닌, 영과 혼이 통하는 사이입니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인생길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이일수록 귀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넘치는 생각과 감정 때문에 골치 아픈 당신을 위한 세상살이 심리학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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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머릿속은 복잡해 죽겠는데 왜 마음은 공허할까?” 넘치는 생각과 감정 때문에 삶이 버거운 사람들을 위한 책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생각과 넘치는 감정 때문에 한시도 편히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각은 또 얼마나 예민한지 사소한 변화도 잘 알아차리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이런 탓에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자기가 실수했거나 남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30년 경력의 심리 치료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에서 정신적 과잉 활동인(신경비전형인)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다뤄 호평을 받았던 크리스텔 프티콜랭이 이번 책에서 자신 역시 정신적 과잉 활동인임을 고백한다. 이들이 처한 상황과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신경비전형인들의 세상살이에 힘을 보태고자 이 책을 써 내려갔다. 어떻게 하면 요령 있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관점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세상이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다 혼자 상처받는 대신 먼저 이 세상을 좀 더 이해해 보자”고.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놓치고 있는 사회의 암묵적 규칙과 함의를 설명하고, 이들의 실언이나 실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부터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구체적인 대화법까지 알려 준다.********** 나를 아끼고 지키되 조금 더 현명하게 세상 사는 방법이 필요할 때, 이 책이 그 방향을 알려 주는 심리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
저자(글) 크리스텔 프티콜랭프랑스의 심리 치료 전문가이자 강연가. 교류분석, 신경 언어 프로그래밍, 에릭슨 최면 요법, 프랭크 패럴리의 도발 치료 등을 공부하고 특히 정신적 과잉 활동과 심리 조종 메커니즘에 관한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활발한 강연 및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30년간 심리 치료 전문가로 활동하며 인간관계, 자기 계발을 주제로 사람들과 소통해 왔으며, 심리적 균형 감각이 필요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베스트셀러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를 비롯해 《당신은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하군요》 《나는 왜 네가 힘들까》 《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할까》 등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는 넘치는 생각과 감정 때문에 삶이 복잡한 사람들에게 ‘나다움을 지키면서 현명하게 세상 사는 법’을 알려 주는 심리 나침반 같은 책이다. |
번역 이세진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당신은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하군요》 《나는 왜 네가 힘들까》 《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음악의 시학》 《아노말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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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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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시작하며
나를 찾아오는 내담자들은 주로 자기가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아주 예민하고 반항적이며 사회성이 부족하다. 한편으론 창의적이고 감정이입을 잘하고 정이 많은 편이다. 또 남들에게 호의적이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든가, 남의 일에 너무 신경을 쓴다든가, 남들을 선동한다는 비난을 자주 듣는다. 그들은 수시로 ‘동화 속에서 사는 사람’ 취급을 당하며 그들의 친절은 어리석음으로, 과민성은 연약함으로 동일시된다. (중략)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머릿속이 복잡하게 과열되는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일반 사고인’도 사유의 방식이 일반적 규칙 체계에 맞는다는 의미밖에 없다. 반면,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은 이 규칙 체계에 명백히 맞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서나 밖으로 삐져나온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은 이러한 암묵적인 규칙 체계, 즉 사회의 코드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들은 자주 불편함, 어색함, 다른 사람들과의 괴리감을 느끼지만 그 이유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도 자기가 실수를 하거나, 남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어색하게 한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참 피곤하고 사기 꺾이는 일이다.(11~13쪽) 1장 알맹이 없는 대화의 존재 이유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은 무해하지만 알맹이 없는 대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경향이 있다. 그들 딴에는 인생의 끝, 환경, 엘리트 계층의 부패 등에 대해서 ‘진짜’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보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편안하게 바비큐를 즐기려고 온 손님들 입장에선, 진지한 주제에 이렇게 혼자 흥분하는 사람은 귀찮기만 하다. 내 경우, 누가 내 직업을 먼저 물어보더라도 너무 곧이곧대로 답하기 시작하면 그날 모임 내내 분위기가 얼어붙는다는 걸 안다. 상대의 측은지심을 악용하여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사람, 즉 심리 조종자와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불행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임은 내가 모든 손님에게 무료로 상담해 주는 시간 비슷하게 흘러간다. 누구나 자기 삶을 갉아 먹는 심리 조종자를 적어도 한 명쯤은 알고 있기 마련이니까. 결국 나는 놀러 간 자리에서 일만 하다 온다! 상황이 왜 그렇게 되는지 내가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지금은 질문을 받으면 슬쩍 회피하면서 화제를 바꾼다. “아, 오늘 저녁은 일 생각 하기 싫어요! 다 내려놓고 놀러 왔어요.” 회계 일을 하는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그냥 회계 일 한다고 해! 그러면 아무도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아!” 글쎄, 아직 시험해 보지는 않았다.(29~30쪽) 2장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걸까? 기업 내에서 이러한 양상은 뚜렷하게 관찰된다. 문제없는 부서는 뺀질이 집합소 취급을 받는다. 문제를 한 보따리 안고 해결을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 부서는 진지하고 일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듣는다. 부서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일 더미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기를 쓰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게 되니까. 여러분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문제는 좋아해도 문제를 만드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문제는 속에만 담아 두고 주위만 휘젓곤 한다.(57쪽) 문제없는 완벽한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가 모두에게 얼마나 피곤한 지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집요한 추적과 격퇴, 시도 때도 없는 지적질은 일반 사고인들에게 결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이 불완전하고 언제나 문제가 널려 있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관여하지 말라고 요구할 만도 하다. 때로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제안하는 대안이 시간, 에너지, 비용 면에서 너무 큰 지출을 요구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제로 리스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때로는 다리가 무너지기를 기다렸다가 아예 새로 짓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숨겨진 정치적·재정적 목표가 집단의 이익을 이긴다. 인간사라는 것이 그렇다. 정말이지, 아인슈타인이 옳은 말을 했다. “세상에 문제가 넘쳐나는 이유는 문제에도 대체 불가능한 사회적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망각하고 있다. 물리학적 법칙에 따라 쇠는 녹슬고, 나무는 썩고, 커피는 차게 식는다.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고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한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한 다른 문제들에 파묻혀 사라지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수백만 년 전부터 그랬다.(68~69쪽) 3장 가상의 바나나를 두고 싸우는 원숭이들 4만 5000여 년 전에 이른바 ‘인지 혁명’이 일어났다. 인간이 추상적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개념의 형태로 사유하고 사건의 결과를 예측하고 가설을 세우고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다양한 전개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바나나를 두고 다툴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그 후로 잠시도 쉬지 않고 점점 더 추상적인 세계에 정신적으로 틀어박혔다. 알맹이도 없는 가설을 두고 다투는 사람들을 잠시 관찰해 보라. 축구 경기의 결과 예측, 장차 있을 내각 개편, 아직 입후보 명단도 나오지 않았는데 선거 결과를 두고 열을 올리는 광경…….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바나나를 두고 싸우는 옛날의 그 원숭이들이다. 안타깝게도 추상과 예측 능력이 인간에게 알려 준 것은, 나는 연약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엄청난 겁쟁이가 되었다. 추상적 사유로 가득 찬 거대한 뇌 속에서 공포는 부풀어 올라 창의성을 침식했다.(74~75쪽) 4장 불안을 마주하거나 회피하거나 때로는 여러분의 자연스러운 호의가 정반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여러분을 더욱 밉상으로 만든다. 정신 바짝 차리고 상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단속하라. 아무하고 죽음을 대화의 주제로 삼지 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정말로 금기시되는 단어다. 기슬렌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됐어요. 상담 이후에 친구 한 명과 오랫동안 통화를 했어요. 분위기 좋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기 직전에, 제가 무척 좋아했던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털어놓았어요.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당황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녀는 으레 하는 애도의 말을 건네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친구의 그런 반응이 내 마음을 몰라서 그런 거라고 혼자 넘겨짚고 상처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친구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불편해해서 그러는구나, 하고 이해했어요.”(114~115쪽) 5장 건드리면 안 되는 이야기도 있다 집단 이야기의 건립 신화 중 하나를 건드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대화 상대가 이성을 잃고 발끈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알 수 있다. 상대는 마치 이단 종파의 신도가 외워서 하는 말처럼 너무나 빤한 이야기를 염불 외듯 늘어놓을 것이다. 그런 일을 얼마나 많이 겪어 봤는가? 이제 여러분은 메커니즘을 파악했기 때문에 집단의 이야기를 반박하거나 모순을 지적해서 상대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다. 공격적 반응은 더 이상 물고 늘어지면 안 된다는 신호다! 일반 사고인들은 그 점을 잘 안다. 집단의 이야기 속에 머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비판을 좀 할 수는 있다. 비판도 시간을 죽이는 수다의 일부다. 그렇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161~162쪽) 6장 인생은 거대한 모노폴리 판 여러분은 정의감이 투철하고 진실을 중시하기 때문에 성가신 일에 휘말리기 쉽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진실이라고 해서 말해도 다 좋은 건 아니다.” “사람들은 쓰라린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말을 더 좋아한다.” 격언들은 진실을 말할 때 따르는 위험을 잊지 않고 경고한다. 하지만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침묵을 지킬 줄 모르고 너무 자주 진실의 함정에 빠져든다. 내담자 마리엘렌이 그 함정의 메커니즘을 밝혀 주었다. 그녀는 내게 설명했다. “저는 사람들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누가 거짓말을 하면 대개 알 수 있어요. 가령, 우리 집 커튼이 참 멋있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 저는 바로 알아차려요. 그 사람이 좋아하지도 않는 걸 좋아하는 척 거짓말하는 게 기분 나빠요. 차라리 자기 인테리어 감각하고는 좀 안 맞는다고 얘기하는 게 나아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솔직한 태도는 외려 호감 가잖아요. 그런데 역으로, 다른 사람들도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알아차릴 테니 제가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 다 알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 기분을 생각해서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거예요.” 내가 결론을 내렸다. “거짓말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다 보니 커튼이 흉하다는 말을 대놓고 하게 됐군요!” 우리는 함께 킬킬대고 웃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의 함정은 실제로 이런 것이다.(219~220쪽) 7장 선 없는 인간의 선 찾기 연습 여러분이 나를 붙잡고 씁쓸하게 털어놓은 게 한두 번인가. “회사 사람들은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꼭 저를 찾아와요. 하지만 이제 됐다 싶으면 바로 달아나 버리죠.” 자,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일반 사고인은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랬다는 건 정말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때를 틈타 별의별 얘기를 다 들었다. 이제 그 사람은 자기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아는 여러분이 두렵다. 여러분이 지닌 일종의 산파술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바닥까지 보여 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다가 여러분은 이미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아는 데 더 알기 위해 그를 다시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로 돌려놓으려 든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반갑다고 달려드는 즉각적 친밀함은 덧없는 것, 일반 사고인들이 거추장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이런 일이 있거든 좀 더 신중하고 편안하게 굴고 매달리지 말라. 상대에게 믿고 털어놔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상대가 한 말은 두 사람만의 비밀로 남겨 두라. 그러면 상대는 안심하고 나중에 여러분과 마주쳐도 덜 거북해할 것이다.(253~254쪽) 8장 오해와 이해 사이를 살아가는 법 여러 저자가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의 만성 우울증을 지적하고 너무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것도 불행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우리가 허구한 날 우는소리를 한다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오해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실존적 불안을 용기 있게 마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 부분을 일반 사고인들은 못마땅하게 여기고 천성이 우울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한다. 죽음 불안, 인생의 의미, 그딴 걸 왜 정면으로 붙잡고 늘어지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평가는 단단히 잘못됐다. 실존적 불안을 회피하는 것보다는 용기를 내어 직시하는 편이 훨씬 더 정신적으로 건강한 태도라고 하지 않는가. (중략)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의 특기다. 그런데 일반 사고인들은 건강한 정신 상태를 안정적이고 기복 없는 기분과 동일시한다. 그게 문제다. 그들은 그들만의 기준대로 용인할 수 있는 정도를 정해 놓고 그걸 넘어가는 사람은 문제 있다는 식으로 판단한다.(272~273쪽) 나는 상담을 하면서 여러분이 불러일으킨 부정적 반응과 푸대접을 상기시킬 때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놀라는 모습을 이골이 나도록 보았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지만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충돌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여러분 각자의 내면에는 시라노, 인간 혐오자, 돈키호테가 조금씩 있을 것이다. 이 인물들처럼 부러지기 전까지는 굽히지 않는다. 진실, 완벽주의, 올곧음에 목말라 있기에 대쪽 같이 굴고 자발적 예속의 코드와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렇다, 여러분은 무릎을 꿇으면 피할 수 있는 총알을 그냥 서서 맞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도발하려는 의도는 없다. 어디서 실수했는지 이해하기 위한 건설적 피드백이 부족할 뿐.(284쪽) |
출판사 서평《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작가 강력 추천
생각 과다, 감정 과잉, 감각 과민… 모든 게 넘치는 당신에게 필요한 ‘적당히 요령 있게’ 세상 사는 법 심리 상담실을 찾는 내담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한다. 이들은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생각이 떠올라 애초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잊기 일쑤인 데다, 사람들의 사소한 말투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릴 만큼 예민한 감각 탓에 늘 피곤하다. 전체 인구의 15~30퍼센트를 차지하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신경비전형인)들은 일반 사고인(신경전형인)들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 자주 실수를 저지르고 오해를 산다. 그렇다고 이들이 결함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감각 과민증’과 가지를 치며 뻗어 나가는 ‘복잡한 사고방식’이라는 신경학적 특수성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쉴 새 없는 생각, 넘치는 감정,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인 신경비전형인들은 한편으론 창의적이고 정이 많으며 예리한 안목을 지녔다. 하지만 다름을 나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 틈에서 이들의 장점은 퇴색되고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로 규정된다. 프로불편러, 엄근진, 유별난 관종…. 이 책의 저자이자 30년 경력의 심리 치료 전문가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자신 역시 정신적 과잉 활동인임을 밝히며, 전문 지식과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요령 있게 세상 사는 법’을 알려 준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오해와 이해 사이를 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신경 언어 프로그래밍에서 말하는 소통은 ‘타자를 그 사람의 세계 모형 안에서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만남을 책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제안한다. 어떤 친밀함은 때론 독이다: 나만의 관계 틀 만들기 로맹은 대출 상담을 하러 간 은행에서 여직원 책상에 놓인 사막 사진에 눈길이 갔다. 무슨 사진이냐고 말을 건넨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이들은 야생의 자연을 걷고 모험하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쾌한 대화 끝에 꿈이 일치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둘 다 시베리아에 가서 샤먼을 직접 만나볼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로맹은 이미 내년 여름 친구들과 꿈을 실현할 계획도 세워 두고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함께 여행을 가겠냐고 물었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의 대화는 자주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그들은 아마 은행 직원이 기쁘게 제안을 수락하고 로맹의 무리와 근사한 여행을 하겠거니 예상한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한다 해도 낯선 사람과의 여행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현실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가는 ‘선 넘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다. 대출 상담이라는 애초의 목적은 잊은 채 친밀함의 문을 너무 쉽게 연 로맹처럼,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골치 아픈 일을 초래하거나 혼자 기대하고 상처받는 일이 많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 때 이들을 찾아가지만 괜찮아졌다 싶으면 달아나 버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들은 누군가 힘든 사정을 자신에게 이야기하면 친밀함의 틈이 금세 열려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고 상대가 속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바닥까지 보여 주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얼른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자 이들로부터 멀어지려는 시그널을 보인다. 그동안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고 믿었을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상대의 이런 태도에 상처받는다. 친밀함은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만 선 없는 친밀함은 독이 될 수 있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친밀함의 틈이 열린다 해도 그 틈을 금세 메우지 않아야 한다. 즉각적으로 마음을 내어주지 말고, 나만의 ‘관계 틀’을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틀을 나를 옥죄는 굴레나 칸막이가 아니라, 나를 곧게 세우는 관계의 뼈대로 삼는 것이다. 진실의 함정: 쓰라린 진실 vs. 달콤한 거짓 “사람들은 쓰라린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말을 더 좋아한다.” 진실을 중요시하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저는 누가 거짓말을 하면 대개 알 수 있어요. (…) 다른 사람들도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알아차릴 테니 제가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 다 알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 기분을 생각해서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거예요.” (본문 220쪽)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실을 추구하려다 그만, 진실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마리엘렌은 최근 한 집들이에서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커튼이 어떻냐는 물음에 별로라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은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진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정보를 사실에 비추어 판단하는 반면, 일반 사고인은 정보가 일으킨 풍파와 분란을 더 크게 본다. 그래서 현재 상황과 분위기에서 해야 하는 말을 하는 편이다. 설령 그게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뿐만 아니라, 선택지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물어본다든가, 조언을 가장한 은근한 명령 같은 것들도 일반 사고인들의 주특기다. 모든 것이 코드화되어 있는 셈이다. 사회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모노폴리’ 판이다. 게임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고, 참여한 이상 일단 그 규칙을 수용해야만 한다. 아무리 임의적인 규칙이라 한들,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게임을 진행할 수가 없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다. 혹시 마리엘렌과 같은 상황에서 꼭 진실을 말해야겠거든 창의력을 발휘하자. 거짓말은 아니면서도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표현을 찾아보는 것이다. 커튼 자체는 그냥 그렇지만 인테리어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 같아서 좋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선택은 나에게 달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단 이 사회의 코드를 수용하면 진실의 함정에 발이 빠지는 사태를 지금보다는 줄일 수 있다. 지나친 무거움은 가벼움만 못하다: 불안을 마주하거나 회피하거나 인간은 추상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인과 관계를 수립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하지만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자신이 연약한 존재이고 사방은 위험천만한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실존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 불안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강력한 방어 기제를 마련했다. 수다를 떨고, 욕구를 채울 무언가를 찾아다니며 불안을 잠재우려 애쓴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속도 모르고 실존적 불안의 심연을 마주하기를 요구한다.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을 억지로 낭떠러지 끝까지 끌고 가서 저 아래를 굽어보라고 한다면 어떨까?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은 이러한 태도 때문에 미움을 산다. “저는요, 내용도 없이 그저 말하기 위해 떠드는 걸 잘 못 해요. 지겨워 못 참겠어요. 대화 도중에 막 소리를 질러 버리고 싶다니까요.” 이들은 무해하지만 알맹이 없는 대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경향이 있다. 죽음, 실존과 같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대화만이 ‘대화다운 대화’라고 생각한다. 철학자들 대다수는 실존적 불안을 마주하는 이런 태도가 불안 치료 효과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기분 전환으로의 도피가 훨씬 더 흔한 선택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택할 뿐. 그래서 심리 치료 전문가들도 자신들이 찾은 해결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권하는 야만적인 치료는 하지 않는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건드리는 대화라고 해서 우리를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건 아니다. 한편으론 그런 대화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나를 드러낼수록 불리한 상황에서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버렸다고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사람은 왠지 먼저 말을 걸기 부담스러워 피하게 되기도 한다. 시시콜콜한 잡담이 무가치해 보여도 실은 이 무해한 대화 속에서 불안을 잠시나마 잊고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이런 사소한 순간이 아니던가. 따로 또 같이: 신경다양성을 회복하는 길 됭케르크는 1658년 6월 25일에 그야말로 미친 하루를 보냈다. 이 도시는 그날 아침에는 스페인령이었다가 정오에는 프랑스령, 저녁에는 영국령이었다. 국경을 한 발짝만 넘어가면 다른 나라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마을 중간을 지나는 국경으로 인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 주민이 전혀 다른 법을 따라 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상의 선이 전쟁의 결과로 언제든 변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그만큼 판단의 기준이라는 것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이고, 임의적이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닌 이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감정을 흡수한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타기는 이들의 특기다. 그런데 일반 사고인들은 건강한 정신 상태를 ‘안정적이고 기복 없는 기분’과 동일시한다. 용인할 수 있는 기준을 임의로 정해 놓고 그걸 넘어가는 사람은 문제 있다는 식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받고 인정받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방울새처럼 명랑하며 유머 감각과 열성이 넘친다”고 저자는 말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들은 사슬에 묶인 채 어두운 동굴 속에 살고 있고 동굴 바깥의 빛은 그들의 등 뒤에만 비친다. 그리고 동굴 벽에 비치는 자신의 그림자가 생의 전부라고 믿는다. 동굴 속 죄수 하나가 족쇄에서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갔다 오더라도 동굴 안의 사람들은 바깥 이야기를 믿지 않고 어둠 속에서 사는 편을 택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서로 다른 동굴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어느 쪽이 더 괜찮은 삶이라 말할 수 있나?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각자의 동굴을 짊어진 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활엽수와 침엽수처럼 성장 조건이 각기 다른 수종들을 한데 심으면 어느 한 종이 다른 종을 보호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에 병이 들면 다른 나무들도 한꺼번에 병 들고 마는 대규모 단일림보다 혼합림이 결국에는 더 오래 가고 생산적이다. 생명에는 생물다양성이 있듯이 인류에게는 신경다양성이 있다. 나 자신의 가치를 알고 이 사회가 내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작동 원리를 익힌다면 다른 우리가 함께하는 삶이 조금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저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경다양성을 회복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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