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12.17) -자선주일-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요한1,8) '증언의 삶인 자선!' 오늘 복음(요한1,6-8.19-28)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입니다. 그는 빛을 증언하러 왔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었고,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입니다. 유다인들이 사람을 보내어 빛을 증언하러 온 요한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요한1,19.23) 요한은 이 물음에 서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1,20) 하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0.23.26-27) 유다인들은 요한을 두고 '그가 혹시 자신들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오늘은 '자선주일'입니다. '자선(慈善)'은 '남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고 도와주는 행위요, 사랑의 행위(慈)이고 착한 행위(善)로써,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자선은 가엾은 마음으로 가득하셨던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을 베풀러 오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으로 당신의 자선을 완성하십니다. 자선을 베풀러 오시는 주님의 구체적인 모습이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인 오늘 제1독서의 말씀, 이사야서 61장 1절에서 2절의 말씀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선이 되고, 그래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합시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토빗12,8) (~ 마태18,3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12월 18일>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1,20) '나는?' 오늘 복음(마태1,18-24)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초점은 '요셉'입니다. 반면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에서는 '마리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 그는 법대로 사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약혼한 상태에서 잉태를 했다는 것은 율법에서 결코 허용되지 않는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혼인해야 만이 합방이 허락되는 당시 법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요셉은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1,20-21)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하느님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잘것 없어보이는 요셉과 마리아를 선택하셔서 당신 구원 사업의 결정적 도구로 쓰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메시아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십니다.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를 꽃피우시기 위해 이 땅 위에 내려오십니다. 이렇게 묵상하고 나니, 더 많은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하느님 구원 사업의 도구로 잘 쓰여지고 있는지?' '임마누엘이신 구세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안에서 해방의 삶을 살고 있는지?'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 (~ 마태 20,3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12월 19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1,13) '협조자들!' 오늘 복음(루카1,5-25)은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를 묵상하면서 '예수님 탄생에 앞서 파견된 협조자들'과 '하느님 구원 사업에 필요했던 협조자들'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 곧 인성(人性)을 지니신 모습으로 오시기 위해서 필요했던 '협조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님을 낳으실 모태로 선택된 '나자렛 처녀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남편 '의로운 요셉'이고, 마리아를 낳으신 부모 '요아킴과 안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앞서 파견되어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닦으러 온 '세례자 요한'이며, 그의 부모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판관13,2-7.24-25)에 나오는 '삼손'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많은 판관들', 그리고 '예언자들', '열두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 구원 사업의 협조자들'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했고, 하느님 구원 사업의 충실한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16,7) 이렇게 이사이의 아들 여덟 명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막내 '다윗'이 하느님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뽑힙니다. 이렇듯이,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당신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부르셨고, 지금도 부르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16)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 부르심에 당당하게 "예!"라고 응답하고, 해야 할 일에 기쁘게 충실합시다! (~ 마태 21,4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12월 20일>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1) '돌아와라!' 오늘 복음(루카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어제는 예수님에 앞서 파견되는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를 들었는데,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듣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전례표를 보면 '대림 제3주간 월요일'이라고 하지 않고 12월 18일이라고 하고, 12월 19일, 12월 20일, ... 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의 의미는 바로 '주님의 성탄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성탄이 임박한 이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청소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구유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는 주님께서 내 마음 안에서 탄생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즘 '판공성사'로 바쁩니다. 월요일에는 거창본당, 어제는 함양성당, 오늘은 울 본당인 합천본당에 판공성사가 있는 날입니다. 다른 본당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이 은총의 시간에 감사드리면서, 모두가 판공성사를 잘 보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성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이유를 묻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15,11-32)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돌아와라!" 고해소에 들어가기까지가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모든 허물을 탕감해 주십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자매님(형제님)의 모든 허물들을 다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기쁘게 새출발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성탄도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마태 23,2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12월 21일>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1,42) '기쁨의 찬가(1)' 오늘 복음(루카1,39-45)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입은 두 여인이 만납니다. 주님의 어머니로 간택된 마리아가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갑니다. 그곳은 나자렛에서 무려 100키로나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인 카렘'(Ein Karem)이라는 곳입니다. 그곳에 있는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합니다. 마리아의 인사를 받은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엘리사벳의 찬가!'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1,42-45) 이 찬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이를 잉태한 엘리사벳의 기쁨에 더해진 큰 '기쁨의 찬가'입니다. 위험하고도 먼 길을 달려오신 주님의 어머니의 방문을 받고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쁨은 하느님의 은총이자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나누어져야 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우리의 죄'는 '지금 여기에서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기쁨을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죄를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내어드리고 다시 기뻐합시다!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성탄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 마태 26,7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12월 22일>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1,48b) '기쁨의 찬가(2)' 오늘 복음(루카1,46-56)은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엘리사벳의 칭송을 들은 마리아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쁨의 찬가', 곧 '성모의 노래인 마니피캇(Magnificat)'입니다. 이 찬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1,46) 또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1,51-53) 마리아의 이 찬가는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마리아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믿고, 이런 예수님을 닮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의 관심과 마음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주님의 성탄이 임박한 이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약속한 것을 잘 지켰는지에 대한 성찰입니다. 오늘 독서(1사무1,24-28)는 '주님과의 약속을 지켜낸 한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한나는 자신의 비천한 처지를 굽어보시어 아들 하나만 허락해 달라고 청하면서, 그렇게 해 주시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다고 주님께 약속합니다.(1사무1,11 참조) 주님께서는 한나의 그 간절한 청을 들어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한나는 주님께 약속한 것을 그대로 지킵니다. 그리고 노래합니다. 이 '한나의 노래(1사무2,1-10)'가 마니피캇의 원조입니다. 은총을 청하고, 받은 은총에 감사합시다! (~ 마태 28,2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12월 23일>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요한."(루카1,57.63) '세례자 요한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57-66)은 '세례자 요한의 출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예고한 대로 예수님 탄생에 앞서 세례자 요한이 출생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알려준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이렇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1,16-18) 세례자 요한에게 주어진 이 사명이 구약성경의 끝말씀인 오늘 독서(말라3,1-4.23-24)에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使者)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3,1.23-24) 며칠 전 본당 판공이 있는 날, 저도 수도회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성찰과 고백을 통해서 마음을 다잡은 것은 '지나친 열정(욕심)을 모두 내려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울 본당을 보면 성탄을 앞두고 세례자 요한의 일을 열심히 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쉬는 교우들과 아픈 이들, 그리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인도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쁩니다. '쉬는 교우들, 영적 육적으로 아픈 이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들!' 변함없이 이들에게로 저의 마음이 향해 있기를 주님께 간청드리면서, 이들에게로 향해 있는 사목에 더 충실할 것을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루카21,28) (~ 마르 3,35)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대림 제4주일>(12.24)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1) 믿음의 순종! 오늘 복음(루카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엄청난 소식이 나자렛 처녀 마리아에게 전해집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1,34) 처녀가 아기를 잉태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었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일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처녀 마리아가 믿음의 순종으로 이 죽음을, 이 엄청난 일을 받아들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5-37)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순종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의 순종으로 마리아를 통해서 주님께서 탄생하십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여인인 '주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 예언자와 나탄 예언자 등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예고된 메시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십니다. 지금 우리 안에도 두려운 일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 조건없이 너를 용서하고 너와 화해하는 일, 치열한 세상 가치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 등등. 바로 이러한 일들이 믿음의 순종 없이는 할 수 없는 두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아닐까요? 믿음의 순종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 마르 4,4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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