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3.19) -성 요셉 대축일-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9,13) '고통의 신학!' 오늘 복음(요한9,1-41)은 '태생 소경에 대한 말씀'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는 말씀'입니다. '고통의 의미를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태생 소경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9,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9,3)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고통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도 포기하고, 더 나아가 너의 생명까지도 빼앗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오늘 복음이 다가왔습니다. 참으로 힘들지만, 우리 안에 겨자씨 한 알 만 한 믿음이 있으면 그 고통을 넘어갑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부활합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라고 묵상했습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 죽음과 부활의 역사, 고통과 기쁨의 역사, 불순종과 순종의 역사는 어제까지 늘 그래 왔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에서 벗어나 아주 넓은 시각, 우주적 시각 안에서 보면,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부활과 기쁨과 순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물 안에만 갇혀 있지 말고, 죄에만 갇혀 있지 말고, 인내로써 죽음과 고통과 불순종을 이겨내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와 죽음과 고통과 불순종에 갇혀 있는 사람이 참으로 눈이 먼 사람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에페5,8) (~ 1열왕 12,1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3.20)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1,24) '의로운 사람이 되자!' 오늘은 '성가정의 수호자'요,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인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어제가 본 대축일이었는데, 어제가 주일이어서 오늘로 이동해 지냅니다. 먼저 영명축일을 맞이한 많은 요셉 형제님들과 요셉피나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마태1,16.18-21.24)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약혼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게 되었고 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 곧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답게 남모르게 조용히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1,20)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의로운 사람답게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합니다. 주님의 뜻을 잘 따른 의로운 요셉 성인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의 뜻을 그대로 실행하는 '의로운 사람'이 됩시다! 신자들은 종종 말합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많이 서운해 하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14,9)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에 집중하고,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 죽음과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을 자주 바라보며 묵상합니다. 복음을 그대로 실행하는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 1열왕 12,33) |
<사순 제4주간 화요일>(3.21)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5,8) 오늘 복음(요한5,1-16)은 '예수님께서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신 말씀'입니다. 벳자타 못 가에 있는 주랑 안에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습니다. 그들은 벳자타 못의 물이 출렁거릴 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못의 물이 출렁거릴 때 맨 먼저 못으로 들어가는 이가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참으로 불쌍한 병자가 있습니다.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라는 그의 말로 보아, 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불구자였습니다. 그런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셔서 손을 내미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5,6)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5,8) 그러자 벳자타 못 가의 병자는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갑니다. '말씀에 대한 무조건적인 그의 신뢰(믿음)'가 놀라운 치유를 가져옵니다. '서른여덟 해 동안이라는 긴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그의 인내심'이 놀라운 치유를 가져옵니다.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일어난 40대 부모와 자녀들 3명이 함께 숨진 사건에 그 바탕에는 엄청난 힘듦과 고통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부모(아버지)가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믿는 이들은 어떻게 그 힘듦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가?' 우리를(나를) 살리시려고 스스로 힘듦과 고통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온갖 수난과 모함을 받으시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하느님이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믿음, 작은 믿음만 있으면, 힘듦과 고통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멘. (~ 1열왕 14,20) |
<사순 제4주간 수요일>(3.22)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요한5,18) '왜, 정의를 죽이려고 하는가?' 오늘 복음(요한5,17-30)은 '예수님의 권한, 예수님의 신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들이 생명처럼 여기고 있었던 율법을 파괴하고 있다(안식일 규정을 어김)고 여겼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씌운 죄는 '율법 파괴죄와 신성 모독죄'입니다.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들 손에 의해 돌아가십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도 유다인들처럼 예수님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 죽이려고 하지 않는가?'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앞선 시대에 수많은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일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었고, '불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파견된 많은 예언자들이 고통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십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시는 분, 불의 앞에서 항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죄'입니다. '오늘날의 예언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사제들, 특히 깨어있는 사제들이 아닐까요?' '사제들은 이 세상에 파견된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정의를 바로 잡고,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에 선포하는 일'입니다. '사제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예수님을 닮은 사제들을 죽이지 맙시다!' (~ 1열왕 15,8) |
<사순 제4주간 목요일>(3.23)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요한5,35.36) '더 큰 증언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오늘 복음(요한5,31-47)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증언'이라는 말이 무려 '열두 번(12회)' 언급되고 있습니다. 증언(證言)이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사실을 말로 증명하는 것'인데, 이를 신앙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면, '하느님의 계시', '하느님의 드러남'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일들이 바로 그것이며, 그 일들의 정점(程點)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구약과 신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며, 따라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는 책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5,39) 우리도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나의 죽음과 부활로, 너와 세상에 증언(드러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육화(탄생)와 땀(공생활)과 수난과 죽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결정적 중재'가 되었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예수님의 결정적 자기희생(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우리도 너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너와 세상의 구원을 위한 '증언자'가 되고, '중재자'가 됩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 (~ 1열왕 16,7) |
증언(證言)-- '하느님의 계시', '하느님의 드러남' 구약과 신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나의 죽음과 부활로, 너와 세상에 증언(드러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육화(탄생)와 땀(공생활)과 수난과 죽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결정적 중재'가 되었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예수님의 결정적 자기희생(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 |
<사순 제4주간 금요일>(3.24)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7,30) '예수님의 때!' 오늘 복음(요한7,1-2.10.25-30)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러 오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그 때(kairos)에 관한 말씀'입니다. 전례적 시간으로 오늘은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주님의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때'는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돌아가시는 때'입니다. '악인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는 때'이며, '십자가 수난의 때'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요한7,26)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 예수님의 죽음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악인들의 마음을 지혜서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지혜2,19-20)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가?' 참으로 혼란스럽지만, 그 죽음이 우리의 인간성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일'이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인간성 안에 갇혀 있으면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성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바라보고,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 '예수님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오늘도 나의 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살리는 일에 적극 동참합시다! (~ 1열왕 17,1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25)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1) '우리도 도구가 되자!' 오늘 복음(루카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사실을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삶 속으로 보내주십니다. 그 이유는 오늘 2독서(히브10,4-10)가 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주시기 위함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이 '뜻' 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10,7.10)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 결정적 도구,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도구가 되신 분'이 바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처녀인 '마리아'입니다.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소식(영보.領報)'을 마리아에게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릴 것이다."(루카1,30-32) 마리아는 이 엄청난 소식을 받아들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에 적극 동참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주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처럼, '하느님 구원 계획에 도구요 협조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이 부르심, 이 뜻에 우리도 마리아처럼 순종합시다!' (~ 1열왕 18,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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