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3.26)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11,26)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요한11,1-45)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친구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말씀하십니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요한11,4) 죽은 라자로의 다시 살아남을 통해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라자로가 죽자 그의 누이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11,21.32)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11,25-26)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 드리신 다음,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11,43) 우리의 신앙은 '다시 살아나는 신앙인 부활신앙이요 생명신앙'입니다. 이를 위해 성당엘 다니고, 믿음의 생활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무엇이 나를 다시 살리는가?'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에제37,14)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8,9.11)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단순하게 믿는 믿음'과 '그 믿음의 결과요 은총인 성령께서' 나를 다시 살리십니다. (~ 1열왕 18,40) |
<사순 제5주간 월요일>(3.27)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 '죄인인 주제에!' 오늘 복음(요한8,1-11)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요한8,4-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지 않고,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십니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 명쾌한 정답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갑니다. '왜, 떠나갔는가?' '왜, 나이 많은 사람부터 떠나갔는가?' 죄 때문이지요. 더 많이 살았으니, 죄도 더 많았기 때문이지요.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그렇게 떠나간 것입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8,10.11) 오늘 복음은 죄인이 죄인을 단죄할 수 없다는 말씀,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너를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왜, 죄인일까? 매일 기도도 잘하고, 미사도 자주 참례하고, 사랑 실천도 잘하고 있는데, 왜 내가 죄인이라는 말인가? 그것은 '완전한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과 죽음으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완전한 사랑과 하나가 되려고 매일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이 완전한 사랑(완덕)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 1열왕 19,20) 오늘 7시 진교성당에서 성령은혜의 밤이 활~~ 짝 열립니다 고모님 메마른 저희 영혼에 성령께서 내리셔서 일치와 사랑과 새로움으로 저희들을 다시 살리시고 또 살아가게 해주시며 예수님의 향기로 푹 물들면 참 좋겠습니다 . 고모님 생각하면 설레고 기쁘답니다 . 이런 기쁜소식도 전할 수있는 행복이 느므느므 행복하답니다 감사드립니다, ------ 성령은혜의 밤 --생각보다 많이 참석하지 않았지만 성령의 자비로움으로 크나큰 은총이 쏟아지는 것 그것이 모두 다인것 ! 아멘!!!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죽어도 죽지 않는 영이 살아있는 사람 성령 가득한 기쁨과 겸손함으로 예수님으로 저절로 예수님처럼 폭 물들어 염색되면 참 좋겠습니다. ---천상에 뿌린 씨 !!! ---올해는 천상농부가 되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동산바치(조경의 옛스러운 말) 역활도 행복하게 하며 에메랄드골드 와 에메랄드 그린을 삽목하고 키우며 대비하고 환경 살리는 큰일을 합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종인 황금소나무, 공작단풍, 산수유, 무궁화 외 기타등등 |
<사순 제5주간 화요일>(3.28)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8,28) '십자가를 바라보자!' 오늘 복음(요한8,21-30)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요?"(요한8,25) 하며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뒤에야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곧 '예수님이 메시아요 있는 나이신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더 정확히 말하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신 후에, 비로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진실 되게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후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합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예수님이 정말로 나를 살리시는 그리스도이신가?'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시고, 모세를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여정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힘들다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시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민수21,5) 그러자 주님께서 불 뱀들을 보내시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게 하십니다. 그래서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살려달라고 모세에게 간청하고, 모세는 주님께 간청합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의 중재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살리십니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민수21,8) 정성된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살아납시다! (~ 1열왕 20,30)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사순 제5주간 수요일>(3.29)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요한8,31) 오늘 복음(요한8,31-42)은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분 말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참후손임을 내세우며 예수님과 논쟁하는 유다인들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안에만 갇혀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요, 참예언자이심을 믿지 못합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8,31-32)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며 공부하는 이유, 성경을 통독하고 필사하는 이유는 '우리가 말씀 안에 머물기 위해서이고,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자유와 해방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과 삶으로 드러내신 계시의 핵심'입니다. 오늘 독서는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인데, 바빌론 유배, 곧 박해 때 세 형제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곳의 강한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강한 믿음이 주님을 배반하라는 임금의 요구를 단칼에 거져하게 하고, 그 벌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 던져졌는데도 죽지 않게 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박해하던 네브카드네자르 임금까지도 믿게 합니다. '타오르는 불가마 앞에서도 나의 믿음은 굳건할까?' '아주 작은 고통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는 나의 믿음은 아닌지?'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17,5) 믿음이 더해지는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자주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 머물러 봅시다! (~ 1열왕 21,14) |
<사순 제5주간 목요일>(3.30)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8,51) '죽음의 의미!' 오늘 복음(요한8,51-59)은 '아브라함 전부터 계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유다인들과의 갈등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활 전반부의 갈등이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율법, 곧 안식일 규정을 지키시지 않은 것에 대한 갈등'이었다면, 공생활 후반부의 갈등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논쟁'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요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다인들이,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8,58), 곧 '세상 창조 이전부터 있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죽음은 어떤 의미의 죽음일까? 그 죽음은, 때가 되면 모두가 반드시 죽는 보편적 죽음인 육체적 죽음,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에 대한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 말씀을 지키는 이는 영이 죽지 않고 살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영이 죽는 것이 진짜 죽음입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곧 내 마음의 창고 안에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영인 성령이 없으면,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 되고,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하는 '산송장과도 같은 사람'이 됩니다. '영이 살아있는 사람이 참으로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유다인들의 몰이해!' 유다인들은 아래에서 왔고, 세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위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나의 영을 살리기 위해서, 마침내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기쁘고 겸손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화이팅~ (~ 1열왕 21,29) '우리는 살기 위해서, 나의 영을 살리기 위해서, 마침내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기쁘고 겸손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영이 죽는 것이 진짜 죽음입니다.--내 마음의 창고 안에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영인 성령 '영이 살아있는 사람이 참으로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
<사순 제5주간 토요일>(4.1)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요한11,53) '걸림돌인 예수???' 오늘 복음(요한11,45-56)은 '최고 의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말씀'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표징(기적)을 보고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최고 의회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 합니다. '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걸림돌로 여길까?' '죄인들로 낙인찍힌 사회적 약자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그들을 자유와 해방의 기쁨으로 인도하셨는데, 그들은 왜, 못마땅해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제거해야만 할 정적(政敵)으로만 여기고 있을까?' '전통과 율법'이라는 틀 안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들을 구해 줄 메시아가 눈앞에 와 있는데도, 메시아를 메시아로 볼 수 없었고, 메시아로 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은 한낱 기적쟁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전통과 율법이라는 틀에 안주하면서, 그것을 지키고 그것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때문에 최고 의회는 가야파 대사제의 예언대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11,49-50) 가야파 대사제의 이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구하시기 위해, 모든 민족을 하나로 모으시기 위해 돌아가십니다. 그것도 온갖 수모와 처절한 짓밟힘을 당하시고 가장 치욕적인 벌인 십자 나무에 매달리십니다. 이 모습이 바로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믿고 있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결코 당하고 싶지 않은,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과 치욕을 기억하면서, 나의 아픔을 이겨냅시다! (~ 1열왕 22,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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