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은 기쁨입니다. 성탄은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성탄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그러니 주님의 성탄을 함께 기뻐하면서, 소외된 낮은 곳을 바라봅시다! "떠오르는 별, 영원한 빛, 정의의 태양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어둠 속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소서."(복음 환호송) (~ 창세36,8) '마라나타!' ***기쁜성탄과새해에는더욱많은은혜와축복이있으시기를기도합니다.늘 베풀어어주신사랑과배려에감사드립니다.건강하시기를~ ~^~^~ ~♡♡♡ |
<주님 성탄 대축일>(12.25)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2,14) 하느님께서 인간(육)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나셨습니다."(티토2,11)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9,5) 그러니 우리 모두 함께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고 축하합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2,10-12)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께서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가장 누추한 곳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탄생의 기쁜 소식이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첫 번째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아주 깊은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 탄생의 큰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고,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못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었다면 주님께서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둠과 암흑 속에 있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그런 우리들을 부활시키시기 위해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모두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주님의 죽음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죽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신비'(역설)이며, 나도 죽어야 살 수 있다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9,1) (~ 창세38,8)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2.26)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 '성령 받기!' 오늘 복음(마태10,17-22)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박해를 각오하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 안으로 파견된 사도들이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제는 전례 등급으로 볼 때, '주님부활대축일' 다음으로 높은 등급에 놓여 있는 '주님성탄대축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가 함께 성탄을 축하하면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이 큰 기쁨을 팔일 동안 나눕니다.(성탄 팔일 축제) 그런데 오늘은 기쁨이 아니라 교회의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참으로 모순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 스테파노의 죽음이 신앙의 역설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계시하고 있고, 그 모범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 식탁 봉사를 위해 뽑힌 일곱 부제 중 한 명이었던 스테파노는 사도행전의 말씀인 오늘 독서가 전하고 있는 것처럼, '은총과 능력이 충만했고,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을 보았고, 예수님 말씀처럼 박해를 이겨냈고, 예수님을 닮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십니다."(7,56)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7,59-60) 믿는 이들이 행하는 모든 영적 행위(신앙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 이것의 최종 종착은 '성령 받기'입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이끄심에 나의 온 존재를 내어맡기는 삶'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을 보고, 예수님을 많이 닮은 신자가 됩시다! (~ 창세39,6)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믿는 이들이 행하는 모든 영적 행위(신앙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 이것의 최종 종착은 '성령 받기'입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이끄심에 나의 온 존재를 내어맡기는 삶'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을 보고, 예수님을 많이 닮은 신자가 됩시다!***'성령 받기!'*** 성탄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모두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주님의 죽음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죽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신비'(역설)이며, 나도 죽어야 살 수 있다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9,1)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27)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요한20,4) '사랑의 사도가 되자!' 오늘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는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한 첫 제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그의 형은 야고보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요한13,23;19,26;20,2;21,20)였습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고, 예수님의 주요 사건에 함께했습니다. 오늘 복음(요한20,2-8)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부활 사건을 알리는 '빈무덤 사건'을 예수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처음으로 목격합니다. 그리고 이를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 곧 요한 제자에게 알립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요한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는데, 이 모습이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제자의 모습,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 사랑을 받고 주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너로부터 주어지는 사랑을 잘 받아야 합니다. 이 사랑을 잘 받고,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을 잘 받는 사람이 사랑도 잘 나눕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1요한1,1.3)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먼저 받고, 지금도 말씀과 성체를 통해서 매일 받고 있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먼저 주어지는 사랑을 잘 받고, 이 사랑을 잘 나누는 사랑의 사도가 됩시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 창세40,23)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12.28)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2,16) 오늘은 헤로데의 '권력에 대한 탐욕과 적개심에 의해 죄 없는 아기들이 희생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마태2,13-18)은 헤로데의 분노를 피해 '아기 예수님과 그의 부모가 이집트로 피신하시는 모습'과 '헤로데가 아기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헤로데의 손에 의해 죽은 죄 없는 아기들의 희생은 아기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 순교는 유다인들의 탐욕과 적개심에 의해 희생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연결됩니다. 그 자체로 죄이면서, 다른 죄를 낳게 되는 칠죄종 중에서 '분노와 탐욕'이 얼마나 큰 희생과 아픔을 낳게되는 지,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을 통해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 영과 육의 죽음'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영이 먼저 죽게 되고, 영이 죽으면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상태의 몸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육의 죽음입니다. 오늘 독서(1요한1,5-2,2)에서 요한 사도는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1,8-10) '아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라는 말인가?'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 때문에' 죄인이고, '아직 이 완전한 사랑(완덕)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세상 안에서 드러낸 나의 분노와 탐욕으로 인해 희생된 죽음이 있습니다. 낙태아들, 또 다른 죽음들, 그리고 생태계의 파괴 등등 그래서 죄인이고, 죄인인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고, 죽으셨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창세42,9)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최장명] [오전 9:51] 죄를 짓게 되면 영이 먼저 죽게 되고, 영이 죽으면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상태의 몸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육의 죽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 때문에' 죄인이고, '아직 이 완전한 사랑(완덕)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고, 죽으셨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죽어도 죽지않는 삶을 살고픕니다. 아기예수를 우리눈으로 보게해주신 크나큰 사랑에 성탄 8일 축제기간 내내 에수님을 바라보며 닮고 사랑하겠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최장명] [오전 9:54] '죽음'에 대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無)'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멈추는 '완전 무(無)의 상태'가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메온처럼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이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시메온처럼 하느님 찬미가를 바치면서 죽을 것 같습니다. 이런 죽음이 바로 믿는 이들이 희망하는 '착한 죽음인 선종(善終)'을 준비합시다. |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12.29,목)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루카2,29) 착한 죽음을 준비하자! 오늘 복음(루카2,22-35)은 '예수님의 유년기 모습인 할례와 작명과 성전에 봉헌되시는 모습'과 '시메온의 노래와 예언'입니다. 오늘은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을 뵙고 기뻐하는 시메온의 모습을 묵상해 봅니다. 시메온은 성전에 봉헌되시는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2,29-32) 이 찬미가가 바로 '시메온의 노래'로, 시간경 기도인 성무일도 끝기도 때 바칩니다. 시메온의 노래가 끝나면 마침기도 후에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면서 끝기도를 마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밤을 편히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메온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뵈었으니 이제 편히 죽을 있다고 합니다. 가끔씩 나보다 먼저 떠나가는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죽음'에 대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無)'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멈추는 '완전 무(無)의 상태'가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체험되지 않은 가장 큰 고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메온처럼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이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시메온처럼 하느님 찬미가를 바치면서 죽을 것 같습니다. 이런 죽음이 바로 믿는 이들이 희망하는 '착한 죽음인 선종(善終)'입니다. (~ 창세44,3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12.30,금) -가정 성화 주간-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2,23) '성가정을 이루자!' 오늘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성가정'은 예수, 마리아, 요셉이 사셨던 가정입니다. '성가정'은 '하느님께서 가정의 중심으로 서 계신 가정'을 말합니다. '성가정'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가정의 중심'이요, '참 가장(家長)으로 계신 가정'을 말합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인 가정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정'은 '신앙과 사회화의 첫 자리'입니다. '인격 형성과 인간적 가치관을 배우는 첫 학교'이며, '사랑의 학교'입니다. 따라서 어머니 뱃속에서 시작되는 가정의 모습이 잘못되면, 이것이 그 사람의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평생 이어지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인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은 가정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고, 흔들리는 가정을 다시 일으켜 바로 세우자는 호소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 주간은 '가정 성화 주간'입니다. 한번 각자의 가정의 모습을 진지하게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서 계신 성가정을 이루고 있는지?' '내가 중심이 아닌 하느님과 네가 중심이 되는 성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고 있는지?' "저는 마태오의 종입니다." 이는 살아생전에 계실 때 저의 어머니(이정숙 사비나)가 아버지( 이종만 마태오)에게 드린 고백입니다. 어머니는 용인본당에서 있었던 성령세미나 후에 이 고백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가정에 평화가 왔고,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고 제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서로에게 종이 됩시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종이 됩시다! 그래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이루어 봅시다! (~ 창세47,1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아녜스! 보내주신 선물은 원장님이오시면개봉한다고아직먹지않고있어요.저도어제휴가에서돌아왔어요. ****휴가 잘 보내셨나요 울 환하게 웃으시는 멋진 고모님♡♡♡ 맘에 드시면 좋겠어요 .... 좋으신 분들과 함께 같은 공기와 해 달 별들과 바람을 같이 느끼는 행복과 감사 고마움 하느님사랑 이웃과 인생을 함께하는 삶 차암 보시기에 좋은 삶으로 기뻐 뛰노는 새해아침처럼 매일매일이 작은 기적이면 참 좋겠습니다. 지난 한해 감사드리고 다가올 한해도 감사드립니다. |
서로 서로에게 종이 됩시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종이 됩시다! 그래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이루어 봅시다!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2,23) 나자렛 사람 예수님 '성가정'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가정의 중심'이요, '참 가장(家長)으로 계신 가정'을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인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은 가정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고, 흔들리는 가정을 다시 일으켜 바로 세우자는 호소입니다. |
<성탄 팔일 축제 제7일>(12.31,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4) '하느님 감사!' 오늘 복음(요한1,1-18)은 '로고스 찬가'입니다. '로고스'는 '말씀'이란 뜻인데, 말씀에 관한 로고스 찬가는 이렇게 시작되고 또 이어집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1,1)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1,14)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1,16-17) 오늘은 2022년 임인년(壬寅年)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감사'입니다. 말씀이신 하느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한 해 동안 축복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찰'입니다. 언제나 한 해의 시작을 주님의 성탄 축제와 함께 시작하는데, 모두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다짐'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다시 태어나,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에는 지나가는 임인년보다 보다 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하나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2022년은 저에게 잊지 못할 다사다난했던 한 해입니다. 하느님 빽(힘)만 믿고 시작한 '성전 건축'이라는 큰 일이 있었고, 또 처음으로 '말씀필사'를 시작한 해였고, 그리고 또한 '복음묵상글'을 통해 계속해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던 뜻깊은 한 해,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모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함께, 오늘 복음인 로고스 찬가 안에서, 감사와 성찰과 다짐의 시간을 갖고, 기쁘게 새해를 맞이합시다! (~ 창세50,1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먼저 '감사'입니다. 말씀이신 하느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한 해 동안 축복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는 것 '성찰'입니다. 언제나 한 해의 시작을 주님의 성탄 축제와 함께 시작하는데, 모두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보는 것. '다짐'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다시 태어나,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에는 지나가는 임인년보다 보다 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하나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4) '로고스 찬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