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우리가 지상에서 맺은 관계를 하늘나라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 친구 사이의 유대가 잊히지 않는 것처럼, 변형되고 영적으로 승화되어 지상에서의 제한적 관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장례예식의 서문에도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삶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일부인 결혼 또한 변형되는 것이지 무효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상의 결혼 생활에서 발생한 오해와 슬픔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죽어서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위로가 아니라 걱정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닙니다. 현세에서 영원으로 넘어가는 동안에 선만이 남고 악은 모두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은 사랑은 아마도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의 결점, 오해, 서로가 주고받은 슬픔은 모두 사라집니다. 게다가 믿음 안에 받아들인 슬픔은 영광이 됩니다. 많은 정말 많은 배우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결합을 할 때에만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지상에서는 누리지 못한 하나됨의 기쁨과 충만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될 것입니다. ---------고모님깨서 보내주시지 않아 작년 나해 복음묵상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10.31)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14,13) '누구를 위한 초대였고, 무엇을 위한 초대였는가?' 이태원에서 많은 이들을 초대했습니다. 초대의 주체가 누구이고, 누가 주관했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희생 앞에서 그 초대가 '누구를 위한 초대였고, 무엇을 위한 초대였는지?' 반문해 보게 됩니다. 전 세계가 똑같이 겪은 코로나 팬데믹! 그로 인해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고, 우리의 모든 일상을 잠시 멈추게 했던 그 코로나 팬데믹이 모든 인간에게 던진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고, 저는 그 메시지가 '우리가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인간만을 위한 탐욕과 욕심을 멈추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커다란 경고', 그 경고가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 인류에게 던진 메시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 책임 있는 분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그 초대에 응답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고, 일어나지도 않았을 참사였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납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 초대에 응답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에 합당한 대처를 하지 못한 대통령이나 정부나 정치인들과 같은 기성세대 책임 있는 분들의 불성실함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14,17) '누구를 위한 초대이고, 무엇을 위한 초대인가?'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초대에 응답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초대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먹고 마시기 위한 초대가 아니라, 나의 이익만을 위한 초대가 아니라, '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나눔의 초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영혼과 그 가족들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
<모든 성인 대축일>(11.1)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 '11월 위령성월의 첫 날'인 오늘은 하늘의 모든 성인들을 기억하는 '모든성인대축일'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 모두의 축일'입니다. 하늘의 모든 성인들의 숫자가 오늘 제1독서인 요한 묵시록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먼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뽑힌 144,000명의 숫자가 언급되고 있습니다.(묵시7,4 참조) 신천지는 이 숫자에 빠져있는 이단입니다. 요한 묵시록 7장 9절의 말씀, 곧 "그 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는 말씀을 간과한 이단입니다. 신천지 이단들이 간과한 이 숫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넘어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모든 성인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묵시7,14) 그리고 오늘 복음(마태5,1-12)이 전하고 있는 '참행복의 길을 걸어가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큰 상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천상 예루살렘에서 모든 성인들이 누리고 있는 '영원한 행복과 기쁨인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그것은 바로 '참행복의 길이신 예수님을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잘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찾고 깨닫고 실행하려고 애쓰는 하느님의 자녀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나를 찾아올 지 모를 '죽음, 저 너머의 세상에서 하늘의 모든 성인들과 함께 기뻐 즐거워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주님, 이태원 압사 사고로 숨진 불쌍한 영혼들을 받아 주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리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해 주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 |
<위령의 날>(11.2)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영원한 안식!' 오늘은 잠시 단련 받고 있는 '연옥의 영혼들이 가장 기뻐하는 날'인 '위령의 날'입니다. 교회는 오늘 죽은 모든 이들을 기억합니다.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 특히 연옥에서 단련 받고 있는 연옥 영혼들이 우리의 기도와 하느님의 자비로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청하면서 '위령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이 '지상교회'는 '천상교회'와 '연옥교회'와 소통합니다. 이 소통을 통해서 모두가 천상교회에서 함께 머물기를 희망하면서, 이 희망을 위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입을 것이다."(지혜3,4-5)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5,19) 그리고 오늘 복음(마태11,25-30)도 '의인들의 고통과 희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의인들'은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순종'이 지금 여기에서 겪는 '고통'입니다. 내 뜻대로, 내 좋을 대로 사는 것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 좋을 대로 사는 것으로의 방향 전환인 '회개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고, 순종인 회개는 어떠한 것을 내려놓고 포기해야 하는 아픔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후에 천상교회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고통을 이겨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이 세상을 떠나 당신 품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나의 죽음을 잘 준비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오늘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이 세상을 떠나 당신 품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나의 죽음을 잘 준비합시다!' **내동공원 묘원에서 함께 위령 미사 참여했습니다 엄마아빠 제대 바로 옆에 뿌려서 계"속 기도 드릴수 있어 좋아요 부산까지 가는 것이 힘들걸 아니까요 올해는 날씨가 따스해서 좋았답니다 . 고모님 느무 느무 사랑해욤 쀼잉뾰잉 좋은 가을바람 단풍 충분히 느껴보셔요 |
<연중 제31주간 목요일>(11.3)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15,7) '내가 살기 위한 회개!' 오늘 복음(루카15,1-10)은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비유를 통해서 '지금 여기에서 회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듭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그 모습을 두고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루카15,2) 예수님 주위에는 항상 '두 부류의 사람들', 곧 '따르는 사람들과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투덜거리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늘 방해했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같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던 '유다교 토박이들'이었습니다. '나는 투덜거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따르는 사람인가?' '회개는 방향 전환'인데, '투덜거리는 모습에서 따르는 모습으로의 방향 전환'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묵하게 실천하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 든 이유는 '지금 여기에서 살기위해서'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금 여기에서 죽지 않고 산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살기 위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모여듭니다. 그래서 미사참례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13,5)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나는 투덜거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따르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15,7) '내가 살기 위한 회개!' 오늘 복음(루카15,1-10)은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입니다 |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11.4)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루카16,8) 영리한 대처! 오늘 복음(루카16,1-8)은 '약은 집사의 비유'입니다. 네 복음서 전체 안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 바로 오늘 복음인 '약은 집사의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자기 멋대로 탕감해 주면서 주인 행세를 한 그 불의한 집사를 주인은 칭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히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은 더더욱이나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인 '약은 집사의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일까? 그것은 '영리한 대처'입니다. 우리가 세상 것에 대해 영리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것에 대해서도, 나의 구원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도 영리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16,8) 돈과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과 노력을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해 영리하게 대처하면서도, 하느님과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두고 소극적인 나는 아닌지? 나의 구원과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영리한 대처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필리3,18-19) 약은 집사의 비유 안에 머물면서 각자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복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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