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의 ‘예비자 교리’에서 | (Cat. 18,26-29: PG 33,1047-1050) |
교회는 또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의한 독서 | 11,7-29 |
거짓 사도들을 거슬러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의한 독서---거짓 사도들을 거슬러 |
형제 여러분, 7 여러분을 높이려고 내가 나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한 것이 죄가 된단 말입니까? 8 나는 다른 교회들이 주는 삯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에게 봉사했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교회들의 것을 빼앗아 여러분을 도운 셈입니다. 9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빈곤했지만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친 일이 없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공급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조금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또 앞으로도 그럴 작정입니다. 10 나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지니고 사는 사람으로서 확언합니다. 아카이아 지방에서는 나의 이 자랑스러운 일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 왜 내가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12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해 나가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랑할 구실을 찾는 자들에게 그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13 그런 자들은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여 먹는 일꾼이며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14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의 탈을 쓰고 나타나지 않습니까? 15 이렇게 사탄의 일꾼들이 정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나선다 해도 조금도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행실에 따라 그들의 최후가 결정될 것입니다. 16 거듭 말해 두지만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든 그런 사람으로 쳐주어도 좋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좀 자랑을 할 수 있겠습니다. 17 물론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주님의 명령을 받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렇게 장담하며 자랑하는 것은 내가 어리석어서 하는 짓입니다. 18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속된 것들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으니 나도 자랑해 보겠습니다. 19 그 어리석은 사람들을 그렇게도 잘 받아 주니 여러분은 어지간히도 똑똑합니다! 20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삼아도 그만, 잡아먹어도 그만, 착취해도 그만, 깔보아도 그만, 뺨을 쳐도 그만, 여러분은 그저 참아 주기만 하니 말입니다. 21 부끄럽게도 나는 너무 약해서 그런 짓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무슨 자랑을 한다면 나도 그와 똑같은 자랑을 해보겠습니다. 이것은 물론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라 치고 하는 말입니다.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까?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낫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습니다. 24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25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26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27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28 이런 일들을 제쳐 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29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
제2독서 |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의 ‘예비자 교리’에서)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
가톨릭 교회 - 이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의 고유한 이름입니다. 교회는 또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해 당신을 바치셨습니다.”라고 성서는 기록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자유인이고 우리의 어머니이신 천상 예루살렘의 모상과 그 모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자녀를 낳지 못했으나 이제는 대가족의 어머니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전의 교회를 거부하신 후 바오로가 말하는 대로 둘째 교회 곧 가톨릭 교회 안에 다음과 같은 직책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요 셋째는 가르치는 사람이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또 다음은 병 고치는 능력을 받은 사람, 남을 도와주는 사람, 지도하는 사람,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이 교회 안에 온갖 덕을 주셨습니다. 즉 지혜와 지식의 덕, 절제와 정의의 덕, 자비와 인간애의 덕, 그리고 박해에 굴하지 않는 인내심 등입니다. 이 교회는 좌우 손에 정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과 수치를 통하여 먼저 박해와 고통 중에 자신의 거룩한 순교자들에게 여러 겹의 다양한 인내심의 꽃으로 엮어 짠 월계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시대인 현재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왕들과 높은 계급의 사람들, 한마디로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합당한 영예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제국의 왕들에게는 자신의 권세와 국경에 한계가 있지만 거룩한 가톨릭 교회 홀로 온 세상을 통하여 무한한 권한을 누리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경계선으로 평화를 세우셨습니다.” 이 거룩한 가톨릭 교회 안에서 계명과 생활 관습으로 교육받은 우리는 하늘 나라를 차지하고 영원한 생명을 유산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매사를 견디어 내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작은 목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분투 노력하는 대상입니다. 이 때문에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 즉 죽은 이들의 부활을 가르친 다음(이에 대해 미리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분투 노력하는 대상인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제적이고 참된 생명은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 샘물처럼 모든 이에게 천상 은총의 선물을 부어 부시는 성부이십니다. 그분의 자비로써 우리 인간들에게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 약속되었습니다. |
마침기도 |
기도합시다 주께 바라는 모든 이를 보호하시는 천주여, 당신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없사오니, 우리에게 자비를 풍성히 베푸시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섭리와 인도로 지금 현세의 사물을 사용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영원한 세상에 둘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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