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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은혜/연중시기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의 ‘예비자 교리’에서) “하느님 백성의 모임”인 교회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의 ‘예비자 교리’에서 (Cat. 18,23-25: PG 33,1043-1047)
 “하느님 백성의 모임”인 교회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의한 독서 10,1-11,6
바오로의 변호
제1독서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의한 독서---바오로의 변호
형제 여러분, 10,1 나 바오로는 온유하시고 관대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나는 여러분과 대면하고 있을 때에는 유순하지만 떨어져 있을 때에는 강경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2 나는 물론 우리를 보고 속된 생활을 한다고 헐뜯는 자들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가질 작정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만나서는 그와 같은 강경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되었으면 합니다. 3 비록 우리가 속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속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4 우리는 세속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느님의 강한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이론을 무찔러 버리고 5 하느님을 아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오만을 쳐부수며 어떠한 계략이든지 다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6 그리고 여러분이 완전히 순종하게 될 때에는 모든 불순종을 처벌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사실을 똑바로 보십시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자부한다면 우리도 그 사람 못지않게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서 자신을 다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8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위는 여러분을 망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여러분을 키워 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위를 내가 좀 지나치게 내세운다 해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9 나를 편지로만 여러분을 위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10 “바오로의 편지는 무게도 있고 단호하기도 하지만 막상 대해 보면 그는 약하기 짝이 없고 말하는 것도 별것이 아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11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우리가 떨어져 있을 때 편지로 써 보내는 말과, 함께 있을 때 하는 행동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12 우리는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 축에 끼어들거나 그들과 견주어 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만든 척도로 자기를 재고 자기가 세운 표준에다 자기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13 우리는 한도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내세우지 않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할 범위를 정해 주셨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가서 일하는 것도 그 범위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지 못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범위를 넘어서 무리하게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처음으로 여러분을 찾아간 사람은 바로 우리였습니다. 15 우리는 범위를 넘어서 남이 한 수고를 가지고 생색을 내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서 우리의 선교 사업이 여러분 사이에서 더욱 확장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맡은 범위를 넘지는 않겠습니다. 16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여러분의 고장 이외의 다른 여러 지방에서도 그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고 남이 자기 지역에서 이미 이루어놓은 일을 가로채 가지고 자랑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17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18 참으로 인정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11,1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꼭 참아 주십시오.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염려하시는 것처럼 나도 염려하는 나머지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순결한 처녀인 여러분을 오직 한 남편 그리스도에게 바치려고 정혼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3 내가 염려하는 것은 마치 하와가 뱀의 간사한 꾐에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미혹되어 생각이 변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순결을 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4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한 것과는 다른 예수를 전하고 여러분이 받은 성령과는 다른 것을 주며 또 전에 받아들인 것과는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데도 여러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니까 하는 말입니다. 5 나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6 나는 말재주는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지식이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여러 면에서 여러 가지로 이미 여러분에게 분명히 보여 드렸습니다.
제2독서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의 ‘예비자 교리’에서) “하느님 백성의 모임”인 교회
교회는 가톨릭 또는 보편적 교회라 합니다. 교회가 이런 명칭으로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교회는 땅 극변에서 극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산재해 있고, 보이는 것들이건 보이지 않는 것들이건, 천상적이건 지상적이건 간에 사람들이 알아야 할 모든 교리를 보편적으로 또 빠짐없이 가르치며 귀족이건 평민이건, 지식 있는 사람이건 지식 없는 사람이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올바른 예배를 바치게 합니다. 또 교회는 육신과 영혼으로 범할 수 있는 온갖 죄악을 보편적으로 치료해 주고 낫게 해주며 또한 말과 행동에서의 온갖 덕행과 모든 종류의 영적 은총의 선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교회는 가톨릭 또는 보편적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적절한 용어로 교회 즉 “백성의 모임”이라 합니다. 주님이 레위기에서 모세에게 “만남의 장막 문간으로 온 회중을 모아라.”고 말씀하신 대로 교회가 모든 삶을 불러 하나로 모으기 때문입니다. “모임”이라는 이 단어를 성서가 위의 이 인용에서, 즉 주인이 아론을 대사제로 임명하실 때 처음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신명기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을 나에게 불러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할 말이 있다. 백성은 땅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이 말을 따라 나를 경외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모세가 율법이 기록된 석판에 대해 말할 때 다시 교회 또는 백성의 모임이라는 말을 언급합니다. “주께서는 대회가 열렸던 날” 즉 백성의 큰 모임이 있던 날 “그 산 위의 불길 속에서 너희에게 내리신 열 조문을 먼젓번에 새기셨던 대로 그 판에 새겨 나에게 주셨다.” 이 말씀은 흡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던 날 교회로서 함께 모였습니다.” 시편 저자도 “큰 모임 가운데서 당신께 감사 드리고, 하고한 백성 가운데서 찬미 드리오리다.”라고 말합니다.

이보다 앞선 시편 작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축제의 모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주께 찬송 드려라.” 구세주께서는 이방인들로부터 둘째 교회,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에 대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유다에 있었던 교회가 배척당한 후에 이제 온 세계에 많은 그리스도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교회들에 대해 시편은 말해 줍니다.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 이 말씀은 예언자가 유다인들에게 한 다음 말과 합치됩니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나의 이름은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친다.” 이 거룩한 가톨릭 교회에 대해 사도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이고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인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주께 바라는 모든 이를 보호하시는 천주여, 당신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없사오니, 우리에게 자비를 풍성히 베푸시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섭리와 인도로 지금 현세의 사물을 사용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영원한 세상에 둘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