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연중 제3주일 The historical truth of the Gospels 복음서의 역사적 진실 - 칸탈라메사 추기경 - 1독서: 느헤 8:2-4ㄱ.5-6.8-10 2독서: 1코린 12:12-30 복음: 루카 1:1-4; 4:14-21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에 기록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복음의 가르침이 확실한 근거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하여 ‘새롭게 모든 것을 명확하게 조사한 후’ 본인 스스로 목격한 사람들에게서 확인한 사실만을 기록하였음을 보증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복음서의 역사적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비판적 시각으로 이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기록은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3세기동안의 비판적 감각에 대한 강조는 과거에는 진리라고 믿었던 것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한 신중하고도 비판적인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필요성은 복음서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이 우리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을 세 단계로 요약해 보면,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생애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고대에서 사용한 몇 가지 전략이 있는데 이는 짧은 문장, 병력 및 대조적인 진술, 감각적인 반복, 이미지, 비유 등 이는 문장을 암기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제 복음 구절을 기억해 보십시오.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이러한 구절은 한 번 들으면 잘 잊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복음서를 직접 기록하지 않으셨다고 해서 복음서의 기록된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대인들은 종이에 글자를 새기기 어려웠기 때문에 마음에 새겼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사도들의 구두 설교 내용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 직후부터 그리스도의 생애와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였고, 청중의 서로 다른 요구와 상황을 고려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폭넓은 이해에 힘입어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였고, 청중의 상황에 따라 적용하였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약 30년 후부터 일부 제자들은 구두로 전해진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4복음서가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전해온 많은 말씀 중에 복음사가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그 당시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일부를 선택하였고, 다른 것은 요약하였으며,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새로운 필요에 따라 조정한 것은 사실을 나열하는 순서나 그 사실의 색상과 중요성에 영향을 주었지만, 근본적인 진리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복음사가들의 역사적 관심은 복음서가 얼마나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진술하였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루카는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대한 모든 정치적인 그리고 지리적인 사실을 제공하기까지 합니다(루카 3:1-2). 결론적으로 복음서는 진술된 사건에 대해 가능한 초연하고 중립적이어야 하는 현대적 의미의 역사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일어난 일의 본질을 우리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입니다. 하지만 복음서의 역사적 진리를 가장 설득력있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깊이 닿을 때마다 내면에서 경험하는 그 무엇입니다. 예전의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지금까지 이렇듯 힘을 가진 말씀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
<연중 제3주일>(1.23) -하느님의 말씀 주일-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4,21) 오늘은 '연중 제3주일'이자, '하느님의 말씀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의 머리말과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희년에 관한 규정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해를 지나 마흔 아홉 해가 된다.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레위25,8.10) 희년은 기쁨의 해입니다.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희년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희년의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바로 이 시간이 '기쁨'이 되어야 하고,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느헤미야기의 말씀은 에즈라 사제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서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읽어주자, 큰 감동을 받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전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해 오늘 복음 환호송과 히브리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시며 생명이시옵니다."(복음환호송)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4,12) 말씀은 하느님이십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제2독서는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고, 한 성령을 받아 마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지체들이라는 사도 바오로의 선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년과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서 있는 사람들이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완성을 위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가까이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1.24) -일치 주간-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3,29) '성령을 따라가자!' 율법 학자들이 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 악담을 퍼붓습니다.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3,28-29)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활동은 성령께서 하신 활동입니다. 때문에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드러낸 악담은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이고, 이는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부정하는 큰 죄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시는 성령께 내어 맡겨진 존재들, 성령께서 이끄심에 따라 움직여지는 존재들입니다. 이는 곧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선한 활동들은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시는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율법 학자들처럼 성령을 모독합니다. 입만 열면 너를 험담하거나 너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냅니다. 그것도 뒤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6,45) 성령께서 하시는 활동은 내 앞에 놓여진 악과 불의와 거짓에 맞서 저항하게 합니다. 그리고 선과 정의를 쫓아가게 하고, 긍정의 힘을 드러내게 합니다. 악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을 따라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1.25) -일치 주간-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내가 먼저 회개하자!'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모든 성인들 중에서 회심 축일을 지내는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유일합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회심(회개)이 인류 구원 역사 안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은 유다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박해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사도22,7.8.9.10)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하나니아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박해자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로 대변신' 합니다. 이름도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뀝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복음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절대사명'입니다. 복음 선포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는, '내가 먼저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이지만, 내가 먼저 복음이 되지 않으면 너를 주님께로 인도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화이팅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1.25) -일치 주간-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내가 먼저 회개하자!'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모든 성인들 중에서 회심 축일을 지내는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유일합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회심(회개)이 인류 구원 역사 안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은 유다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박해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사도22,7.8.9.10)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하나니아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박해자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로 대변신' 합니다. 이름도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뀝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복음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절대사명'입니다. 복음 선포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는, '내가 먼저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이지만, 내가 먼저 복음이 되지 않으면 너를 주님께로 인도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화이팅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
어디쯤왔을까? 그립고 위로가되는사람이되면 좋겠습니디 나스스로는 예수님께 사랑받고 사랑을 드리는 예수님의 연인(정배)이되고 싶습니다 희망이지만 ㅎ |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기념일>(1.26)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루카10,2) '그들만의 잔치...' 오늘은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사도의 제자요 선교 협력자인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의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10,2)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수확할 밭'은 어떤 밭을 의미할까? 지금 우리가 머무는 삶의 자리를 두고 하신 말씀인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 지상 대리자인 교황 프란치스코는 모든 복음 선포자들에게 전하는 권고문을 통해, 새로운 복음화의 장인 수확할 밭의 구체적인 세 분야에 대해 이렇게 천명하셨습니다. ('복음의 기쁨' 14항 참조) 첫째는 일반 사목 분야로, 성령의 불로 활력을 얻어 신자들의 마음이 불타오르게 하는 것. 둘째는 세례를 받았지만 세례의 요구대로 살지 않는 냉담 교우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또는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이에게 선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입니다."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 모두를 위한 잔치가 되도록 힘씁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정말 기적적인 사랑을 주시는 티모테아 고모님♡♡♡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시는 축일이신 티모테아고모님! 축일 축하드립니다 . 축일진심으로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
☧묵주반지와 문재인 디모테오 내 왼쪽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이 묵주 반지는 내게 종교 이전에 어머니다. 20년전 한창 변호사로 바쁠 때 어머니가 주셨다. 성당에 잘 안가니 복잡한 세상살이에 마음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을 게다. 부모님은 공산당에 가입하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난을 오셨다. 피난민 생활은 고생, 그 자체였다. 양말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맞자 어머니는 노점등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가난은 떠날줄을 몰랐다. 어느 날... 부산역에 암표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앞장 세우셨다. 거제에서 부산역까지 그 먼길을 갔는데 어머니는 바라만 보셨다. 날이 저물고... 끼니도 거른 채 다시 그 먼 길을 걸어 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훗날.. 까닭을 여쭈니 그저 웃으셨다. 아마도 자식 앞에서 작은 법이라도 어기는 모습 보일 수 없었기 때문 이리라. 비록 가난 했지만 가야 할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신 어머니. “어려울 때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라.” “아무리 힘들어도 가지 말아야 할길을 돌아보지 마라.” 나의 좌우명인 이 말은 어머니에게서 배운것이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묵주반지를 보며 그 가르침을 새긴다. ㅡ 문재인 ㅡ |
고모님 오늘 생일이신가요? 생일 추카추카합니다. 사랑하는 우리고모 생일 축하합니다.~~~ㅇ 태어나 주셔서 느무 감사합니다 <연중 제3주간 목요일>(1.27)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4,22) '등불의 비유!' 오늘 복음(마르4,21-25)은 '등불의 비유'입니다. 마르코 복음 4장은 네 비유, 곧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등불의 비유,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비유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있습니다. 등불은 빛이며 어둠을 밝혀줍니다. 등불의 비유에서 등불은 빛이신 예수님, 세상을 밝히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첫째는 등불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과 예수님께로 나아가면 갈 수록 한없이 약하고 어두운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은총'인데. 둘째는 등불이신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삶으로 세상에 드러내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포기해서는 안 되고, 인내심을 가지고 등불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언젠가는 나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 때가 바로 하느님 앞에 마주서게 되는 '심판의 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부터 등불이시며 빛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가, 숨겨져 있는 나의 모습과 어두운 나의 모습을 하느님 자비 앞에 드러내 놓도록 합시다! 그래서 나도 세상을 밝게 비추는 '또 하나의 빛이요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마르4,21) 오늘(1.27)은 '성녀 안젤라를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모든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1.28)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에 비길까?"(마르4,26.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두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느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느님의 나라가 처음에는 비록 미미하고 작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나 마지막 때에는 엄청난 결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비유는 씨앗이 저절로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고 했지만, 뿌려진 씨앗은 결코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햇빛과 비가 있어야 하고, 적당한 영양분도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조용한 가운데에서 성장하고, 많은 것들이 함께 작용해서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8,28)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해서 성숙에로 나아갑니다. 오늘 독서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인 '밧 세바'를 탐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야까지 죽이는 모습을 전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자가 범한 이 큰 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나탄을 보내어 그의 잘못을 꾸짖게 하고, 다윗은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51편'이 전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회개와 용서를 받아들이시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작은 것에 민감하고, 작은 것에 충실 합시다! 다양성과 다름을 하느님의 선으로 바라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꽃이 너무 예뻐요. 하늘이 주신것 많아서 감격스럽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감미로운 추억은 저를 아낌없는 사랑을 많이 받은 감미로운 사람으로 느끼게 해 준답니다. 행복을 느낄때. 지금 ♡고모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검은 호랑이처럼 용맹정진하여 사랑을 올려드리고 싶습니다 ㅎ |
<연중 제3주간 토요일>(1.29)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4,39)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는 도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자, 제자들이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합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오늘 우리는 거센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바람과 호수까지도 복종시키시는 예수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거센 풍랑!'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종종 거센 풍랑을 만납니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위기문제와 기아와 난민문제, 코로나 팬데믹 등 지금 인류가 마주한 거센 풍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거센 풍랑들이 있습니다. 곧 남북의 분단이라는 풍랑, 이념논쟁과 지역 갈등이라는 풍랑,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너와 내가 격하게 갈라져 있는 거센 풍랑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 속에서 만나고 있는 크고 작은 풍랑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거센 풍랑들을 가라앉히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어야만, 이러한 거센 풍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시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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